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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서양문화와 불교-㊹ 북아메리카 골드러시 때, 중국인 이민 불교사원 샌프란시스코에 출현
초창기 중국인 이민들, 불교 유교 도교 함께 신봉, 일본 정토진종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진출
기사입력: 2021/10/25 [09:09]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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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중국인 이민들, 불교 유교 도교 함께 신봉, 일본 정토진종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진출

 

오늘날 미국불교는 엄청난 파급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사실상, 불교 학술적으로는 세계불교를 리드해 가고 있다. 순수 미국인들에 의한 불교는 점점 그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아시아계 이민들의 불교는 각 나라별로 사원이 있으며 소속된 승려들이 활발하게 신행 포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불교 학술적으로는 1979년부터 발행해 오고 있는 국제불교학회지(JIABS:The Journal of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는 그 권위와 위상은 세계 최고 수준급에 있다. 기고자들의 학술적 내용과 질에 있어서 그 어떤 세계불교학술지도 이 학회지에 실린 논문들을 능가할 수 없다는 평판을 듣고 있다. 여기에 기고된 논문들은 2중 심사제도라는 관문을 통과해서 게재되고 있다.

▲ 1850년 캘리포니아에서 사광(砂鑛, Placer deposit)을 채굴하는 광부들.  

 

동호인들끼리 적당한 심사제도에 의해서 실리는 학술지가 아니다. 1979년 이래 불교관련 한국인 필자는 수십 년간 단 한명(대한민국 학술원회원)에 불과했고, 최근에 한 소장 불교학자의 논문이 겨우 실렸을 정도이다. 여기서 이 학술지의 권위를 더 이상 논하지 않겠다. 소수 동호인 학자들끼리 적당히 게재해주는 그런 학술지가 아니라는 점만 강조해 두고자 한다.

 

북미 불교를 소개하면서 웬 금광이야기냐 할지 모르겠지만, 북아메리카 불교를 논하는데 있어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바로 골드러시이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California Gold Rush, 1848~1855)는 당시 캘리포니아 준주 콜로마의 슈터 밀에서 제임스 W. 마셜이 1848124일 금을 발견함으로 촉발된 사건이다. 황금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이내 확산되어 미국의 각지, 그리고 해외에서 남녀노소를 비롯한 약 30만 명의 인구가 캘리포니아에 유입되었다.

 

초기 채굴자들 중 1849년에 캘리포니아로 향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연도를 따서 포티나이너스라고 불렸다. 그들은 배, 또는 마차로 대륙을 횡단했지만 여행 도중에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새롭게 도착한 사람들 대부분이 미국인이었지만 이 골드러시는 라틴아메리카,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및 아시아 등지의 사람들도 유입되었다.

 

중국인들도 이 무렵 대거 몰려들었다. 1851년에 이르면 25천명의 중국인들이 캘리포니아에서 일을 했으며, 대부분은 골드러시 지역과 그 주변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 집단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그들은 미국 전역에 걸쳐 차이나타운이라 불리는 커다란 민족 지구를 형성했다.

▲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잇는 베이 브릿지를 배경으로 잭슨 스트리트를 따라 늘어서 있는 차이나타운.   

 

아시아 대부분의 이민사회가 그렇듯이 중국인들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종교와 함께 미국에 오게 된 것이다. 북미에 도착한 최초의 불교도는 1848년 골드러시 때 서부 해안으로 이주한 중국인이었고, 1875년까지 샌프란시스코에는 8개의 중국사원이 있었으며 서부 해안을 따라 더 많은 작은 사원들이 있었다. 중국 불자들은 조상숭배의 유교,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도교, 기복성의 정토 불교를 혼합하여 신행 활동을 실천했다. 거의 동시에 일본에서 이민자들이 하와이 농장과 중부 캘리포니아 농장에 노동자로 도착하기 시작했다. 일본 이민자들도 1893년에 최초의 조도 신슈(정토진종) 승려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북미 불교 전교부를 공식적으로 설립했으며 1899년에는 미국불교단(米國佛敎團, Buddhist Churches of America)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미국불교단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요 불교 제도 형태이다. 이 조직은 이민자들이 일본 문화와 언어 및 종교를 보존하는 방법을 제공했다.

▲ 샌프란시스코의 골든게이트(금문교) 주변에 있는 일본 차 정원(Tea Garden).  

 

아시아 이민자들은 1850년대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 광부로 일하기 위해서 도착됐고, 1962년 이민법 이후 아시아 이민자들의 새로운 유입과 인도차이나에서 온 난민들의 결과로 노인 이민자 인구가 증가하기도 했다. 광업은 또한 중국 이민자들을 호주(1848)와 뉴질랜드(1863)로 이끌어 오세아니아에 중국인 이민자가 형성되는 계기가 됐다.

 

이런 가운데 미국인들은 점점 더 불교와 동양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미국 초월주의 사상가들은 불교를 포함한 동양 종교에 관심이 있었지만 결코 개종은 아니었다.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힌두교와 불교가 초월주의와 비슷하다고 간주하면서 불교와 동양사상에 관한 많은 글을 썼다.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이기도 했던 에머슨은 7대에 걸쳐서 성직(聖職)을 이어온 개신교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8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고학으로 하버드 대학 신학부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1829년 반 삼위일체적 개신교회인 유니테리언 보스턴 제2교회의 목사가 되었으나, 에머슨의 자유스런 입장에 대해 교회가 반발하여 1832년 사임하였다.

▲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랠프 월도 에머슨. 

  

그 후 유럽으로 건너가 활동하다가 1835년 귀국하였다. 에머슨은 동양 사상에 밝아 청교도의 기독교적 인생관을 비판하는데, 편협한 종교적 독단이나 형식주의를 배척하고, 자신을 신뢰하며 인간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적 사상을 주장하여, 자연과 신과 인간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돌아간다는 범신론적인 초월주의 철학 입장에 섰다. 그는 세속을 싫어하고 구애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사색을 쌓아 '문학적 철인'이라고 추앙받기도 하였으며, 그의 이상주의는 젊은 미국의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 법화경을 영역한 소로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0)는 미국의 철학자·시인·수필가이다. 그는 프랑스어 판 법화경을 영역하기도 했다. 소로는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나 콩코드에서 죽었다. 하버드 대학 졸업 후, 가업인 연필 제조업, 교사, 측량 업무 등에 종사했지만 평생 일정한 직업에 정착하지 않고 곧 학업에 매진했다. '자연'의 저자인 초월주의자 랄프 왈도 에머슨 등과 친분을 맺었다.

 

자비 출판한 첫 작품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 1849)은 젊어서 세상을 떠난 형과 선상 여행을 정리한 수필로 당시의 사회에서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표작 월든-숲속의 생활(1854)22개월에 걸친 숲에서 혼자 기록을 정리한 것이며, 그 사상은 이후 시대의 시인과 작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소로우의 사후 메인의 숲(The Maine Woods, 1864)케이프 콧(Cape Cod, 1865) 등의 여행기와 자연을 쓴 에세이, 일기, 서간집 등 수많은 작품이 출판되었다. 소로우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주제로 한 것이 많고, 자연 문학(Nature writing)의 계보에 자리매김 된다.

 

그의 일생은 물욕과 인습의 사회 및 국가에 항거해서 자연과 인생의 진실에 관한 파악에 바쳐진 과감하고 성스러운 실험의 연속이었다.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항의하기 위해 홀로 월든의 숲에서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기도 했으며, 인두세 납부 거부로 투옥도 당했고, 후에는 노예 해방 운동에 헌신하였다. 그의 그러한 정신은 시민 불복종으로 이어진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독립 운동과 킹 목사의 시민권 운동 등에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 에머슨과 함께 위대한 초월주의 철학자이며 미국 르네상스의 원천이었다. 그는 또한 자연과학자이기도 하며 주요 저작으로는 월든》 《시민 불복종이 있다.

▲ 소로우가 기거했던 오두막 집 모형.  

 

에머슨이나 소로처럼 불교나 동양사상에 심취했던 분들의 초월주의란 무엇인가. 이들은 왜 동양사상에 심취했었는지를 상상해 본다면, 그것은 동양식으로 말한다면 구도의 열정이었으며 진리추구의 출가자들이었다. 초월주의는 특히 동양종교가운데 불교가 미국에 정착하는데 기여했으며, 불교의 논리적 사변적 철학체계가 이들에게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 하바드대 신학교.   

 

초월주의(超越主義, Transcendentalism)1830년대부터 1840년대 본격화된 산업혁명과 근대국가로 나아가는 미국의 전환기를 배경으로 미국의 사상가들이 주장한 이상주의적 관념론의 사상개혁운동이다. 초월주의란 직관적 지식과 인간과 자연에 내재하는 선함 및 인간이 양도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망라하는 관념주의의 한 형태이다. 사회와 단체들이 개인의 순수성을 타락시켰으므로, 인간은 자존(self-reliant)’하고 독립적일 때에만 가장 최선일 수 있다는 사상이다. 초월주의는 주관적 직관이 객관적 실험주의보다 중요하다. 이 사상을 선호하는 자들은 개인들이 별로 관심과 과거의 선생이 없어도 스스로 기초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지성주의와 영성에 대한 일반적인 상태에 대한 반응에 의해 생기게 되었다. 하버드대학교 신학교에서 가르친 유니테리언 학풍의 교리에서 발견된다. 초월주의는 영국과 독일의 낭만주의에서 부터 나왔으며, 성경적 비판과 데이비드 흄의 회의주의에 대한 비판에서도 나왔다. 데이비드 흄(17111776)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며 역사가이다. 서양 철학과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에 관련된 대표적 인물이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이웃종교 평화대사 위촉 세미나 행사에 참석(앞줄 왼쪽 네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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