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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장미

신민형 | 기사입력 2021/10/31 [23:22]
하늘소풍길 단상

늦가을 장미

하늘소풍길 단상

신민형 | 입력 : 2021/10/31 [23:22]

 

 

단풍 물들고 낙엽 쌓이기 시작한 10월 마지막 날에 5월의 장미를 바라보는 마음이 단순하지 않다.

 

광교역 2번 출구서 나와 광교산 올라가는 개울길에는 계절의 여왕 5월부터 피기 시작해 흐드러지게 여름을 장식했던 꽃의 여왕의 잔재가 남아 있다.

 

늦가을 장미가 O.헨리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처럼 삶의 의지와 희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외롭고 누추하게 늙어감을 연상시키는 걸까.

 

어제 투병생활을 하다 세상 떠난 동창의 부음을 받은 탓일까. 전자의 밝은 마음보다 후자의 어두운 마음이 앞선다.

 

그제까지의 등산길에서는 분명 늦가을 장미가 외롭다거나 누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도하고 끈기있는 모습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는 듯 해서 좋았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 들으며 파란하늘 유유자적 감상하는 장미와 나의 일체감을 느꼈다. 있는 그대로가 만족스러웠다. 허황된 희망과 쓸데없는 걱정, 회한과 투정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아닌게아니라 지난 여름 나의 마음을 기록한 단상 이후 나는 이미 뜸해진 단상 기록을 중단했다. 보는 거 마다 편하고 즐거워 새삼 그를 기록할 필요가 없었다. 기록 대신 기쁘게 음미하며 살 수 있었다. 실상 내가 10여년 해왔던 하늘소풍길 단상기록이 고통과 갈등에서 헤어나오려는 발버둥 아니었던가.

 

단상 기록을 그만 두고 주어지고, 보여지는 것들 기쁘게 음미하며 사니 화두를 잡고 생각하는 것조차 시들해졌다. 뭔가 관심 갖고 들여다 보거나 내 주장을 펼치는 것도 무의미해졌다.

 

이분() 저분()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인거 같은데 편을 나누어 아우성치는 정치판 도박 게임을 보거나 가담하는 일도 시큰둥해졌다. 잘난 척, 의역한 척 중도(中道)를 강조하던 것도 벗어난 것이다. ‘양 극단은 물론 중도마저 버린다는 태고보우 선사의 말대로 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친구의 부음을 받고 늦가을 장미를 보는 마음은 불편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극복하려고 다시 기록을 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아니겠는가.

친구가 육체의 고통을 벗어나 영면한 것을 편안하게 바라보자. 내가 늙어가며 병들어 가는 것도 영면으로 가는 길이라고 느끼자.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꽃 피우다가 힘들어지면 편안하게 잠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내가 주변에 누추하거나 외롭다고 보이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이기 전에 영면하게 되는 것이라 믿자. 

 

내일 산책길에서 다시 11월의 장미를 만나면 삶의 의지와 희망를 재발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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