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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타도’ 文革이 오히려 유교 부활시켜

윤휘탁 | 기사입력 2013/07/16 [13:27]
윤휘탁 교수,“개인 우상화와 함께 조상숭배 요소 강화”

‘유교 타도’ 文革이 오히려 유교 부활시켜

윤휘탁 교수,“개인 우상화와 함께 조상숭배 요소 강화”

윤휘탁 | 입력 : 2013/07/16 [13:27]


 
 
유교 전통의 파괴를 주도했다고 알려진 중국의 문화대혁명(문혁·1966~1976)이 오히려 유교적인 전통을 부활시켰으며, 이것이 현재의 '신(新)중화주의'로 이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 윤휘탁 한경대 교수(사진․중국현대사)는 '역사학보' 218집에 게재한 논문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의 반(反)전통과 전통'을 통해 '유교 전통의 파괴를 주도했다고 알려진 중국의 문화대혁명(문혁·1966-1976)이 오히려 유교적인 전통을 부활 시켰다고 주장해 역사학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 매일종교신문

 
윤휘탁 한경대 교수(중국 현대사)는 '역사학보' 218집에 게재한 논문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의 반(反)전통과 전통'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유교는 '신분질서를 유지하려는 반동적인 사상'으로 간주됐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중국 역사를 유가와 법가의 투쟁으로 파악하는 '유법투쟁(儒法鬪爭)'의 구도를 내세우며 법가와 진시황을 옹호했다. 그런데 윤 교수는 여기서 마오가 '진시황의 이미지'로 포장됐다고 지적했다. "무산계급의 독재라는 허울하에 개인적 전횡을 서슴지 않은 마오의 전제주의적 정치 행태를 법가적 진보 활동으로 합리화하고 찬양했다"는 것이다.
 
문혁 시기 마오의 전횡은 진시황과 다르지 않은 '전통적 전제주의'의 양상을 띠었고, 중국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유교적 전제주의가 법가라는 미명하에 다시 '부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마오 개인에 대한 숭배 풍조로 '마오-인민'의 관계가 '부(父)-자(子)'나 '황제-신하'의 관계와 유사하게 변질됐다고 윤 교수는 말했다.
 
결국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조상 숭배의 의례가 문혁 시기의 개인 숭배 과정에서 부활하고 있었고, 이는 북한의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내걸고 결과적으로 조선의 전통 이데올로기인 유교에 의존한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중국의 전제주의적 전통을 떠받치던 '충효' '예(禮)'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요소는 개혁·개방과 더불어 '중화 민족' '중화 전통'이 강조되는 가운데 재평가되면서, '신중화주의'의 핵심적 요소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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