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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 목사 “평행선이 서로 만나려면 힘 빼고 사랑으로 구부려야”
12월2일 열린 제53회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서 ‘정답은 사랑이다’ 제목으로 말씀 전해
기사입력: 2021/12/06 [08:54]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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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일 열린 제53회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서 정답은 사랑이다제목으로 말씀 전해

 

53회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가 위드 코로나 단계적 일상 회복 속에 2년 만에 현장 기도회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대선후보, 정계·교계 기독교 인사들이 참석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다. 설교 강단에선 이 시대 회복을 위한 근본 해결책으로 성경적 사랑의 원리가 강조됐다.

 

122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제53회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설교자로 선 김학중(金鶴中) 안산 꿈의교회 목사는 지금 우리는 가장 어려운 시대를 지나고 있다.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행복할 수 없는 모순의 덫에 놓여 있다이를 끊을 수 있는 답은 사랑이라고 말했다.

▲ 김학중 안산 꿈의교회 목사가 12월2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코로나19로 2년 만에 현장 기도회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정답은 사랑이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다.    

 

김 목사는 살아남기 위해 현대인들은 세대 갈등도 불사한다. 심지어 가족끼리도 경쟁한다이유를 물으면 다들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해서 행복한가라고 물었다. 그는 그 어떤 논리도, 명분도 사랑이 없으면 정답이 될 수 없다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자기희생의 사랑, 이를 몸소 실천하는 동사로서의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성경 속 아브람과 조카 롯의 일화를 예로 들었다. 김 목사는 창세기 13장 말씀을 인용, 아브람과 롯의 목자끼리 다투는 일이 발생했을 때 아브람의 문제 해결법에 주목했다. 그는 아브람과 롯 소유 가축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키울 만한 땅이 부족해졌다이로 인해 목자들끼리 다툼이 일어났는데 여기서 아브람은 롯에게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한다.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택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브람은 한 집안의 어른이기도 하고 한 부족의 족장이기도 했다. 당연히 롯보다 많은 힘을 갖고 있었다그럼에도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이 아닌 한 발 양보하는 선택을 한다.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가운데 상처받고 소외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학중 안산 꿈의교회 목사가 12월2일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코로나19로 2년 만에 현장 기도회로 열린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정답은 사랑이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다.  

 

김 목사는 이날 기도회를 하나의 큰 식탁에 비유했다. 그는 여기 진보와 보수가 함께 모여 있다. 기성세대 청년도 함께하고 있다하나님 주신 사랑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조건과 생각을 넘어 한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평행선이 서로 만나려면 힘을 빼고 사랑으로 구부려야 한다. 직선의 양극도 힘을 빼고 사랑으로 구부리면 원이 된다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우릴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담아 각자 자리에서 서로를 섬기는 대한민국이 되길 축원한다고 전했다.

 

안산 꿈의교회 김학중 목사 “‘오라고 하지 말고 가는목회를 하라

 

요즘 사람들은 감성적이어서 학문적으로 다가가기보다 가슴으로 느끼게 해 주어야 합니다. ‘저 교회에 나가면 행복해질 것 같아, 가정이 달라질 것 같아, 저 교회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끔 하자는 것이지요.”

 

수영장이 있는 교회, 수영장뿐만 아니라 헬스장, 실내체육관까지 갖췄다면 이건 정말 꿈의교회.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에 위치한 꿈의교회 담임은 김학중 목사이다. 김 목사가 199312월 개척할 당시 교회 명칭은 새안산교회였다. 2002년 교회를 다섯 번째 다시 지을 때 체육관부터 먼저 지으면서 교회 이름을 새안산레포츠교회로 바꾸었다. ‘레포츠교회라는 단어는 2004년 국립국어원 신어’(新語) 자료집에 수록되었다.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교회라는 해석이 달려 있다.

 

현재의 꿈의교회’(Dream Church)라는 명칭은 2007년에 성도들에게 공모하여 확정했다. 널리 알려진 교회 이름을 두 번이나 바꾸는 것은 웬만한 자신감 아니고선 힘든 일이다. 김 목사는 안산이라는 지역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학중 목사는 안산을 넘어 한국기독교의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고 있다. 2008년에 시사저널이 지령 1000호 기념으로 우리 시대 리더를 뽑는 설문 조사에서 김 목사는 차세대 기독교 리더 1위로 선정됐다. 한국기독교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815일에 서울광장을 비롯해 전국과 전 세계에서 100만명이 결집하는 한국교회 8·15대성회를 열었다. 이 집회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趙鏞基. 2021년 소천) 목사와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에 이어 꿈의교회 김학중 목사,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를 강사로 선정했다. 대회 조직위원회에서 김학중 목사(감리교)와 소강석 목사(예장 합동), 정성진 목사(예장 통합)한국교회 차세대 주역이어서 메시지를 맡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불신자(不信者)와 젊은이, 남성이 좋아하는 교회

 

꿈의교회가 수영장을 갖추어서 호화롭다는 질타를 받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지역주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상황이 크게 달라졌지만 그 이전만 해도 꿈의교회 레포츠센터에는 매일 1500~2000명이 드나들었는데, 대부분 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동네주민이었다.

 

꿈의교회가 예배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러한 시설을 갖춘 것은 이 교회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를 실천하기 위해서다. ‘불신자(不信者)가 좋아하는 교회, 젊은이가 좋아하는 교회, 남성들이 더 좋아하는 교회를 지향하는 이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은 이 세 가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김 목사는 교회의 세 가지 목표를 한마디로 줄이면 시민과 소통하는 교회라고 했다. 인구 80여만명의 안산에 950개의 교회가 있다.

 

김 목사는 우리나라 인구의 20%가 크리스천이고, 80%가 넌크리스천(Non-Christian)이다.

넌크리스천들이 좋아하는 교회가 되는 게 이 시대 목회라고 생각했다. ‘획일화된 똑같은 교회면 또 하나의 공해다. 차별화 전략을 세우자. 다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였다. 교인들끼리 은혜 나누는 교회가 아니라 밖에서 연호하는 교회가 되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 생각에서 체육시설을 마련해 일반 시민과 함께 사용하자는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불신자들과의 소통을 위해 이미지 메이킹 퍼포먼스를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한다.  2002년 레포츠센터를 완공한 후 체육관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본당 건물을 지었다. 꿈의교회는 4950(1500) 대지에 건평 13200(4000) 규모로 체육관 외에도 다양한 시설을 갖추었다. 나아가 교회 구석구석의 인테리어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신경을 썼다. 체육관 입구에 있는 카페는 일반 커피전문점처럼 다양한 메뉴를 구비했고, 교회 본당 로비는 마치 호텔 로비처럼 그랜드피아노에 자동장치를 달아 늘 음악이 흘러나오게 해 놓았다. 엘리베이터 입구는 따로 인테리어를 하여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으며 새 신자들을 맞이하는 장소는 응접실처럼 장식해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김 목사는 외형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낮에 볼 때도 외형이 다르지만 밤에는 동서남북이 다 다르게 느껴지게 인테리어를 계산해서 지었다. 나무에 조명 하나를 달더라도 더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썼다. 바다의 등대가 반짝이면 배들이 도움을 받듯이 교회도 상징적으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동서남북 어디서 봐도 다른 모양인 안산 꿈의교회     

 

3년 만에 교인 1000명 돌파연간 등록 신도 2500

 

1965년생인 김학중 목사는 유년시절을 몹시 힘들게 보냈다.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어머니가 힘들게 두 자녀를 키웠다. 그러던 중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입원비가 없어 1주일 만에 퇴원한 어머니가 단칸방에서 3년을 앓아누워 있을 때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동생을 돌보아야 했다. 힘들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고, 교회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조금씩 밝아졌다.

 

중학교 때 떠밀려서 들어간 웅변부에서 배운 실력으로 시() 대회에서 1등을 한 것도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어렵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일반 대학에 진학했지만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YMCA에서 간사 보조로 일하면서 기타와 노래를 배워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되었다. 곧바로 유명 강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면서 생활이 조금 안정되었다. 

▲ 안산 꿈의교회 김학중 담임목사     


군대에서 제대한 후 고등학교 시절 목회자가 되겠다고 기도했던 일이 떠올라 1986년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 재학 중에 새부천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할 때 음악적 재능을 살려 성가대 지휘를 맡고 성가경연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웅변, 노래, 악기 연주, 찬양, 레크리에이션 등 다양한 재주를 갖춘 김 목사는 감신대를 졸업할 때 남들과 다른 목회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목회를 하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다가 선배의 추천으로 안산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새부천교회에서 지원해 준 5000만원과 아파트 전세금 3000만원으로는 도저히 일산에서 자리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산에서도 적당한 건물을 얻지 못해 싼 땅을 사서 지하실만 만들어 놓고 새안산교회라는 간판을 달았다. 당시 그의 나이 28세로 아직 목사 안수를 받지 않은 전도사였다.

 

김 목사는 대학 다닐 때 이런 목회를 하겠다, 이런 설교를 하겠다는 꿈을 꾸면서 여러 교회를 가 보고 주보를 모았던 일이 기억났다. 찾아서 방바닥에 쏟아놓고 세어 보니 무려 3300장이나 됐다. 살펴보니 마음에 드는 게 5%도 안됐다. 그 가운데 좋은 걸 벤치마킹하고 거기에 우리 교회에 맞는 색깔을 더해서 주보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자작시도 넣고 신문에 났던 기사나 사회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해 논설도 넣어 스토리가 있는 주보를 만들었다. 전도지도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일반적인 내용보다 순간의 선택이 영혼을 좌우합니다같이 광고카피를 패러디한 문구로 눈길을 잡았다. 동사무소 직원과 친해져서 안산시 본오동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도 파악하게 되었다. 안산은 큰 도시에 살다가 실패하여 낙향한 사람들과 시골에서 농사짓다가 이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토박이는 5% 정도에 불과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로 목회 방향과 슬로건을 정했다.

 

철저한 준비를 했지만 4주 동안 단 한 명도 오지 않아 아내와 눈물로 예배를 드렸다. 5주째 겨우 한 가정이 찾아왔고 그 후 매주 한두 가정씩 찾아와 3개월 만에 20가정이 등록을 했다. 김 목사는 개척교회 시절부터 3개월에 한 번씩 연예인이나 대학교수, 복음성가 가수를 초청해 집회를 열었다. 교회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전화번호를 얻기 위해 9191(구원구원)번을 개인으로부터 사들였다. 전도에 사활을 걸고 열심히 한 결과 1년 만에 교인이 350명이 되었다.

 

점차 저절로 찾아오는 교인이 많아지면서 교인 숫자가 급속도로 늘기 시작했다. 개척 2년 만에 교역자를 대거 유입하고 혼자 하던 일을 고루 분배해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추었다. 3년차에 들어가면서 교인 수가 1000명을 넘어섰다. 1년 만에 3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교회를 완공했다가 3년 만에 교회를 다시 지어야 했다. 김 목사는 교인 500명을 넘기면서부터 교회 운영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500명을 넘으면서부터 경험해 보지 않은 조직을 관리하다 보니 힘이 들었다. 당시 큰 교회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때부터 우리 교역자들에게 절대 같은 걸 하지 마라. 누군가 한 걸 똑같이 하는 건 용납 안 한다. 창조하라, 업그레이드하라고 했다. 누군가 창조하는 사람이 있어야 영향을 준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고민하여 개발해서 생활화하면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지고 그게 영향력이 된다고 했다.

 

교인이 많아지면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김 목사는 기존의 제자훈련 교재들을 훑어본 뒤 교회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교역자들과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여 제자훈련 교재를 직접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예배 형식을 다양화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미 설교 전에 드라마를 상영했고 오래 다닌 신자들이 출석하는 저녁 예배를 차별화했다. 1시간 이상 찬양을 하고 성경을 깊이 파고드는 강해설교를 선택한 것이다 

▲ 김학중 목사는 강단 아래로 내려가 교인들과 교감하며 설교하기도 한다.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은 지금도 대부분 가만히 서서 설교한다. 김 목사는 초창기 때부터 무선 마이크를 꽂고 강단 아래로 내려가 성도들 좌석 사이를 걸으며 이야기하듯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그렇게 하면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을 살필 수 있고 설교에 대한 교인들의 반응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다가 건강을 회복하고 돌아온 교인들의 손을 잡아 주면 감격해서 눈물을 흘린다. 그분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설교를 했다. 초창기부터 하나하나 준비하고 만들어 가는 게 목회철학이었고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김학중 목사의 소통 전략과 세심한 정성은 큰 폭의 성장으로 되돌아왔다. 교회 창립 8년째 레포츠센터를 지을 당시 출석교인이 3000여명이었다. 체육관을 완공하고 8년이 지나 출석교인이 8500~1만명으로 늘어났다. 8년 만에 3배 성장한 셈이다. 꿈의교회 등록교인은 17000여명으로 안산시 950개의 교회 가운데 빅3에 속한다. 요즘도 연간 2500명 정도가 등록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60%가 초신자다. 그래서 매월 30~50명에게 세례를 베푼다.

 

독특한 시설을 마련한 꿈의교회가 크게 성장하자 전국에서 벤치마킹을 위한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간 꿈의교회를 다녀간 뒤 체육관을 지어 농구장과 헬스장 등을 운영하는 교회는 전국적으로 20여 곳에 달한다. 김 목사는 수영장까지 지은 교회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인근의 한양대학교에서 수영 교양과목을 위해 이 교회 수영장을 빌리기도 한다. 새롭게 교회를 개척하려는 목회자와 신학생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1년에 세 차례 열리는 공식적인 콘퍼런스에 매년 1500여명이 참석한다.  

 

 파격적이어서 겪은 두 번의 위기다문화 국제학교 설립 예정

 

 김학중 목사는 자신을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해 온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그는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걸어오면서 항상 불안했다. 두세 번의 고비를 힘겹게 넘겼다. 교회 시작한 지 5년 되었을 때 스태프와 의견이 맞지 않고 조직을 꾸려 가는 데 시행착오가 많았다. 갈등 때문에 분위기가 다운되면서 굉장히 힘들어서 목회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가려고 했다. 아내가 이번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먼 훗날 후회할 거다. 견디자고 해서 1년을 힘들게 보내면서 회복했다. 그때 정말 큰 위기였다고 회고했다.

 

두 번째 위기는 2002년에 레포츠교회를 지을 때 찾아왔다. 37세의 나이에 교회가 크게 부흥한 데다 수영장이 딸린 교회를 짓는다고 하자 정작 밖에서 말이 많았다. 김 목사는 우리 성도들은 설득했는데 외부에서 못 받아들였다. 너무 파격적이니까 여론이 뜨거웠다. 교계는 보수적인데 젊은 제가 너무 튄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위축이 됐다. 교계는 유기체니까 독불장군이 될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심적으로 위기를 겪었다. 그는 처음에는 무슨 얘기가 들리면 위축되었는데 이제는 정화가 된다고 할까요 저 스스로도 몸을 많이 낮추려고 하고 외부에서도 저의 진정성을 알아주셨다. 교회가 10년이 지나니까 갈등이나 외부 오해가 저절로 풀렸다고 말했다.

 

레포츠교회에다 세련된 운영 등이 부각되어 영성(靈性)이 부족한 교회라는 평을 듣지 않느냐고 했을 때 김 목사는 교인들은 영성 없는 교회에 결코 다니지 않는다. 우리 교회는 화요성령집회가 있어서 기도원처럼 뜨겁게 기도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맞추려고 애쓴다. 성례전(성찬예식)도 많이 하고, 큐티(묵상기도)와 영성 훈련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다. 30개 선교팀이 외국과 우리나라 전역에 나가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학중 목사는 남성들과 공유할 수 있는 주제의 설교를 주로 한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인문사회과학적이고 역발상적인 설교를 많이 한다. 남성들에게 화두가 되는 설교, 남성들이 고민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남성들과 공감하는 설교를 많이 한다. 한국교회가 여성들을 향한 목회를 잘해 왔던 만큼 거기에 플러스알파를 더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학중 목사는 지금도 새롭게 변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이 교회는 서열이 없이 팀제로 운영되고 있다. 팀장들이 팀원의 인사권을 갖고 있으며 교회 단위의 큰 건이 아니면 결재권도 갖고 있다. 김 목사는 우리 교회 부목사님 중에 연세대 학부 출신이 6명이나 되고 육사와 삼성전자, 예일대 출신 등 다양한 분들이 있다. 똑똑한 분들을 모셨는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팀장급을 뽑을 때에는 다른 팀장들이 모여서 뽑고 저한테는 통보만 한다. 자신들이 뽑고 문제 있으면 자신들이 아웃시킨다. 사람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하여 다양한 경험을 가진 분들이 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그는 스마트폰 쓰는 시대에 아날로그 코드를 갖고 사람을 접하면 소통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무슨 일이든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와 함께 어떤 분야든 성공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정신이라고 말했다.

 

연세대학교에서 코칭(Coaching)을 가르치는 김학중 목사는 성도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코칭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인 1000명일 때부터 이상적인 꿈을 고민했던 꿈의교회는 17000명이 된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꿈의교회가 새롭게 세운 목표는 다문화 국제학교 설립이다. 국내 전체 다문화 인구가 150만명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5만명이 안산에 살고 있다.

 

김 목사는 그분들은 공단 쪽에 살고 있어 그쪽에 다문화 목회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은 얼마 안된다. 그분들은 우리나라 분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은 다문화 이민세대다. 아버지와 함께 이민 와서 다음 세대에 대통령이 되었다. 놀라운 일이다. 이 시대에 교회가 국가를 위해 할 일이 뭔가 생각해 봤다. 다문화 국제학교를 세워 이른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목표를 세웠다. 동남아에서 우리나라로 온 다음 세대가 한국의 대통령이 되는 일을 꿈꾼다고 말했다.

 

오래전 교수들에게 용역을 주어 연구가 끝났고 지금 경기도에 다문화 국제학교 설립 제안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이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법부터 개정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많지만 김 목사는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개척교회의 성공률이 1%도 안된다는 말이 있다. 하루에 수십 개의 개척교회가 생기지만 그만큼의 교회가 문을 닫는다. 김학중 목사는 지금도 어떤 분야든 얼마든지 뉴페이스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저는 일찍 시작하여 분명한 목표를 세워 한눈팔지 않고 달려왔다. 목회는 생명체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시대가 무얼 원하는지 깨닫고 자신이 선택한 지역과 눈높이를 맞추어 철저히 준비하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오라고 하지 말고 가는목회를 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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