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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④ 아소카 대왕이 세운 사르나트 사자주두는 인도의 상징인 국장(國章)이 되다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01/24 [09:00]
각 종교 수장 임명하고 상호 존중, 남의 교리에도 귀 기울여야, 칙령 바위에 새겨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④ 아소카 대왕이 세운 사르나트 사자주두는 인도의 상징인 국장(國章)이 되다

각 종교 수장 임명하고 상호 존중, 남의 교리에도 귀 기울여야, 칙령 바위에 새겨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01/24 [09:00]

각 종교 수장 임명하고 상호 존중, 남의 교리에도 귀 기울여야, 칙령 바위에 새겨

 

인도 대륙에서 생긴 불교라는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인 석가모니 부처님 못지않는 인물이 바로 아소카(기원전304232, 재위273~232)대왕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는 아소카 대왕의 불교적 위업은 너무나 크지만, 인도 전 역사를 관통해서 아소카 대왕이 남긴 흔적은 현재에 이르기 까지도 그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 인도의 상징인 사자주두(獅子柱頭) 국장(國章). 원래는 부처님의 최초 설법장소였던 사르나트(녹야원)의 아소카 석주(石柱) 맨 위에 있던 것으로 현재는 사르나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소카 대왕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해서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왕으로 인도 아 대륙을 통일 시킨 대업을 이룬 불교도 왕이었다. 인도 아 대륙을 정치 군사적으로 통일한 아소카 대왕은 인도 전역에 일종의 포고문(칙령)을 암석과 석주에 새겨서 반포했다. 바위, 돌기둥, 동굴 속의 암석 등에 포고문을 새겨서 백성들이 읽어 볼 수 있도록 해서 아소카 대왕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게 했다. 브라흐미 문자나 카로슈티 문자 그리스어나 아람어로도 새겼다. 브라흐미 문자는 인도계의 문자이며, 카로슈티문자는 남아시아 서북부 및 중앙아시아에서 사용된 문자이다. 이 카로슈티 문자로 기록된 불교문헌은 가장 오래된 불교문헌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아람 문자는 현존하는 대부분 중동계 문자의 조상으로 히브리 문자와 시리아 문자가 여기서 파생되었다.

 

문자는 이러하지만 언어는 산스크리트어 보다는 당대 대중들이 사용하던 쁘라끄리뜨어로 기록했다. 아소카 대왕에 의해 설파된 '다르마()'는 주로 선행, 타인에 대한 존중, 관대함, 순결을 바탕으로 하는 도덕적 교훈으로 설명된다.

 

아소카 대왕은 도덕적 가르침으로서 올바른 행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돌기둥 담마 칙령 No.2에 의하면,

 

담마(다르마)는 훌륭하다. 무엇이 담마인가? 그것은 잘못하는 것이 거의 없고, 많은 선한 행동, 자비로움, 너그러워서 남에게 베풂, 진실 됨, 그리고 청정함이 담마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아소카 대왕이 불교나 부처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작은 바위 담마 칙령과 작은 기둥 담마 칙령에만 나타나는데, 아소카 대왕 자신 스스로를 불교 신자라고 단언하고 불교의 도덕을 전파하는 것을 넘어, 작은 바위 칙령 3호인 바이라트 사원 앞에서 발견된 독특한 칙령에서 부처의 말씀을 읽고, 특히 상가(승단)에서 이를 따르도록 주장하고 있다.

▲ 부처님 가르침의 상징인 법륜(法輪, 다르마차크라)은 불교의 교의를 뜻하며, 고집멸도 사성제·팔정도를 뜻하기도 한다. <인도 북부 히마찰프라데시 주 레왈 사르 호수 티베트 사원>    

 

작은 바위 담마 칙령 No.1에서,

 

내가 우빠사까(upāshake 남자 신자)가 된지 2년 반이 넘었다. 그렇지만 나는 처음 1년 동안은 그렇게 열성적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1년 이상 독실하게 승가를 방문해 왔고, 이제 나는 담마를 위해 대단한 열성을 기울이게 되었다.” 라고 자신은 부처님의 제자로서 승가에 공양을 해 왔음을 밝히고 있다.

 

작은 바위 담마 칙령 3호에는,

 

마가다의 왕 삐야다시(아소카)는 승가에 존경스런 인사를 드리며, 건강하심과 평안하심을 문안드립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니다. 내가 얼마나 붓다, 담마, 상가에 존경과 믿음을 드리는지 존자님들은 잘 아십니다. 붓다, 세존께서 가르치신 것은 무엇이든지 훌륭히 말씀하신 것입니다.”라고 부처님 가르침에 확고한 신심을 드러내고 있다.

 

작은 바위 담마 칙령 3호에서는,

 

존자님들, 이 담마 경전들, 계율의 찬탄, 거룩한 삶의 길, 미래의 두려움, 성자의 게송, 성자의 길에 대한 말씀, 우빠띠사의 질문, 부처님이 라훌라에게 말씀하신 거짓말하는 것에 대한 교훈, 존자님들이여, 이 담마의 경전을 많은 비구와 비구니들이 끊임없이 듣고 되새기기를 나는 열망합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을 따르는 재가 남녀 신도들도 이 성스러운 담마의 경전을 끊임없이 듣고 되새기기를 나는 열망합니다.”라고 하면서 승가의 계율 준수에 적극적인 찬동의 뜻을 표하고 있다.

 

아소카 대왕은 재위 14년에 스투파()를 증축하고, 재위 20년에 직접 방문했을 때 네팔 니갈리의 작은 바위기둥 칙령에서 설명한 대로 헌화하고 기둥을 세운 코나카마나 붓다(과거 부처님: 구나함 불)와 같은 과거 불들에 대한 헌신을 표명했다.

 

바위 담마 칙령 No.11에서의 내세에 대한 믿음에서는,

 

그래서 담마의 보시에 의해 이 세상에서 이익을 얻고 내세에 무한한 공덕을 얻는다.

 

돌기둥 담마칙령 No.1에서,

 

담마에 대한 크나큰 사랑 없이는, 치열한 자기 성찰 없이는, (부모에 대한) 최상의 순종 없이는, (악에 대한) 큰 두려움 없이는, 그리고 (담마에 대한) 큰 영향력 없이는, 현세와 내세에서 행복을 얻기 어렵다.” 라고 말할 정도로 내세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 아소카와 그의 두 왕비는 산치 대탑과 보드가야 보리수나무를 방문했다.    

  

바위 담마칙령 No.7에서는, 모든 종교가 공통적이고 긍정적인 본질을 공유한다는 믿음에 기초하여, 아소카는 특정 종교에 치우친 종파주의자가 되기는커녕,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장려했다.

 

자비로운 삐야다시 왕은 모든 종교 교단들이 나의 영토들에서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

지나친 자신의 교단에 대한 헌신 때문에 자신의 교단만 추켜세우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고 다른 교단을 비난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은 다만 자신의 교단을 더욱 심하게 해치는 일입니다.“라고 했다.

 

바위 담마 칙령 No.12)에서는,

 

그러므로 서로 알고 지내는 것은 바람직하며 다른 교단이 믿는 교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자비로운 삐야다시(아소카) 왕은 모든 교단의 사람들이 다른 교단의 훌륭한 교리에 관해 잘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각자의 교단에 집착된 사람들에게 이것을 말해야 합니다. 자비로운 삐야데시 왕은 보시나 존경은 모든 교단의 본질을 증진시키는 행위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라고 하면서 남의 교단에 대해서 존중을 말하고 있다.

 

아소카 대왕은 바위 담마 칙령 5호에서 성직자들의 임명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전에는 담마마하마따(법대관)가 없었다. 내가 왕위에 오른지 13년이 되었을 때에, 그들을 처음으로 임명하였다. 그들은 모든 종교 교단의 수행자들 사이에서 담마를 수립하기 위해, 담마를 증진시키기 위해, 그리고 담마에 헌신하는 사람들 즉 야바나(Yavana 그리스인), 캄보자(Kambojas), 간다라(Gandharas), 라스티카, 삐띠나까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서방 변경인 아빠란따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일한다. 담마마하마따는 하인과 귀족, 브라만과 장자들, 가난한 사람과 노인들, 담마에 헌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들의 삶의 어려움을 제거하고, 복지와 행복을 얻기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각 교단의 수장을 임명하여 종교공존과 다원주의적 종교관을 가졌던 것은 매우 진보적인 무차별의 종교정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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