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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㉙한국불교와 달마대사,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07/18 [05:52]
21세기 달마정신 새롭게 정립될 필요성 제기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㉙한국불교와 달마대사,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21세기 달마정신 새롭게 정립될 필요성 제기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07/18 [05:52]

21세기 달마정신 새롭게 정립될 필요성 제기

 

불교가 인도에서 시작됐지만 불교는 이제 세계적인 종교로 전파되고 확산되고 있다. 고오타마 싯다르타의 고민이 결국은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해주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 젊은이가 인생과 삶에 대하여 고통을 느끼면서 궁극적 해결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 6년 고행 끝에 대도(大道)를 성취하여 해탈함과 동시에 일체중생들에게 인간으로서의 번민을 벗어나는 길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전법륜(轉法輪)이다. 법륜을 굴린다는 뜻이다.

▲ 법륜은 팔정도의 상징이다.

 

법륜(法輪)이란 무엇인가? 원래는 법륜(담마차크라)은 인도에서 투척무기였다. 또한 전륜성왕의 일곱 보구(寶具) 중 하나이다. 법륜을 상징으로 삼는 것은 번뇌를 깨부수는 도구로서의 의미이다. 말하자면 법륜은 불교의 교의(敎義)를 말한다. 석가모니가 깨달은 후에 설파한 것이 사제(四諦).팔정도(八正道)인데, 법륜은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하는 것이다.

 

석가가 최초로 법륜을 굴린 것이 인도 사르나트(녹야원)인데, 동료수행자 5명에게 이 법륜을 굴렸으므로 전법륜(轉法輪)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법륜은 불교 상징 마크가 되었으며, 번뇌를 상쇄시키는 도구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석가 부처님은 무상대도(無上大道)를 깨치고 나서 45년간 설법하였다. 석가의 성도(成道)는 너무나 강렬했고 컸기 때문에 부처님의 설법은 인도는 물론이지만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중국에 까지 도달하였고 마침내 한반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의 교의(敎義)가 교학적(敎學的)으로 체계화되어 중국에 전해졌지만, 너무 사변적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인도에서도 부처님의 말씀인 경율(經律)이 너무 이론적으로 발전하여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의도했던 본래의 설법내용과는 다소 동떨어진 불교로 발전되어 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남인도에서 출가하여 사문이 된 보디() 달마라는 승려가 중국 땅에 이르러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점검해 보니, 너무 이론적이고 사변적으로 변해서 부처님이 의도했던 본래의 목적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음에 이를 개탄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선정사상(禪定思想)을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달마대사가 중국 땅을 밟을 무렵, 중국 불교는 너무나 교학적으로만 접근하여 불교의 본질을 흐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에 달마대사는 선정(禪定)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선정은 요즘말로 하면 명상이다. 아마도 달마대사가 중국에 왔을 때, 선정과는 거리가 먼 이론불교만을 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추정을 해 본다. 선정이란 반야의 지혜를 얻어 부처를 이루기 위하여 마음을 닦는 수행을 말한다.

▲ 스웨덴 스톡홀름 박물관에 소장된 결가부좌(연화좌)를 하고 있는 붓다. 10세기 인도 비하르에서 제작.   

 

▲ 결가부좌를 보여주는 어린이들.

 

중국에 와서 실천에 옮긴 보리달마대사의 달마선법은 금방 퍼지지는 않았다. 한동안 동굴 속에서 침묵해야만 했다. 당대 중국에는 페르시아계 승려들이 주도하고 있었고, 중국 승려들은 페르시아계 승려들의 제자로서 활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달마선법은 힘을 얻기 시작했고, 6조 혜능 대사에 이르러서 달마선법은 분수령을 맞이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 지눌 진영     

 

한반도에는 오교구산(五敎九山)이라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시대가 되면서 차츰차츰 9산 선문(禪門)이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중국 당송(唐宋) 시대의 선종 불교가 고려시대에 확실하게 전파하게 되었다. 나말여초(羅末麗初)에 달마선법이 전해지기는 했지만, 고려시대에 정착하게 되었다. 1세대가 바로 지눌(知訥,1158~1210)보조국사이다. 보조 국사는 고려 중후기의 승려로서 속성이 정()이고, 자호가 목우자(牧牛子)이며, 시호는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이며, 탑호는 감로(甘露)이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도의(道義:821)국사를 조계종의 종조(宗祖)로 여기며, 보조국사 지눌을 조계종의 중천조(中闡祖: 분명하게 밝힌 조사)로 여기며, 태고국사 보우(普愚: 1301~1382)를 중흥조(中興祖: 중흥시킨 조사)로 여긴다. 그렇지만 한국불교의 종조가 도의냐, 보조냐, 태고냐로 논쟁이 아직도 잠재되어 있다.

▲ 태고보우 국사 진영  

 

도의국사와 보조국사 사이에는 3백년 정도 차이가 나며, 보조국사와 태고 국사의 사이에는 100년 정도의 차이가 난다. 이후에는 달마선법이 휴정(休靜, 1520~1604) 서산대사로 이어진다. 서산대사는 조선 중기의 고승이면서, 승장(僧將)이다. 속성은 최()씨이며, 본관은 완산, 이름은 여신(汝信), 아명은 운학(雲鶴),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서산(西山), 별호는 백화도인(白華道人) 또는 서산대사(西山大師풍악산인(楓岳山人두류산인(頭流山人묘향산인(妙香山人조계퇴은(曹溪退隱병로(病老)이며, 법명은 휴정이다. 석가부처님으로부터 제63대 조사이다. 임진왜란 당시 제자인 사명당 유정과 함께 승병(僧兵)을 일으켜서 크게 전공을 세웠다.

▲ 서산대사 진영    

 

조선조를 거치면서 한국불교는 숭유억불(崇儒抑佛)이라는 불교박해 시대를 당하면서 산중시대 불교가 전개됐고, 선불교 전통은 산중불교와 함께 근세에 이르렀으나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고려시대 선종 불교의 전통이 그대로 산중 사찰로 전해졌고, 그나마 경허(鏡虛, 1849~1912)라는 당대의 도인이 출현하여 오늘날 한국불교가 선종불교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는 분명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대선사이다.

▲ 경허선사 진영

  

경허선사는 1849년 전주 자동리에서 아버지 송두옥(宋斗玉)과 어머니 밀양 박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속명은 동욱(東旭)이다.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이다. 9세 때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하였다.

 

187911, 동학사 밑에 살고 있던 진사인, 이처사(李處士)의 한 마디,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지.' 이 한마디를 전해 듣고는, 바로 깨달았다. 콧구멍 없는 소(牛無鼻孔處: 우무비공처)는 중국 법안종의 종주 법안(法眼) 선사의 어록에 실려 있는 선어다. 당시 경허의 시봉을 받들던 사미승 원규는 경허의 사제인 학명의 제자였고, 이처사는 사미승 원규의 속가 아버지였다.

▲ 경허선사와 만공 선사가 머물렀던 천장암. 

  

경허선사는 1880년 어머니와 속가 형님인 스님이 주지로 있던 연암산 천장암(천장사)으로 거처를 옮겼다. 천장암은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연암산에 있는 도량으로 백제 무왕 34년인 633년 백제의 담화선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경허는 연암산 천장암의 작은 방에서 1년 반 동안 치열한 참선을 한 끝에 확철대오하게 되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구나"라고 시작하는 오도송을 짓는다. 천장암에서 경허의 '삼월(三月)'로 불리는 수월스님과 혜월스님과 만공스님이 출가하여 함께 수행하게 된다. 제자들과 함께 천장암에서 지내다가 개심사 부석사 간월암 등지를 다녀오기도 하였는데 이 때 경허스님과 제자들간의 많은 일화가 전한다.

 

18866년 동안의 보임(保任)을 마치고 옷과 탈바가지, 주장자 등을 모두 불태운 뒤 무애행(無碍行)에 나섰다.

 

한동안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돌연 환속하여 박난주(朴蘭州)라고 개명하였고, 서당의 훈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함경도 갑산(甲山) 웅이방(熊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1912425일 새벽에 임종게를 남긴 뒤 입적하였다. 나이 64, 법랍 56세이다. 저서에는 경허집이 있다.

 

경허 선사의 수제자로 흔히 '삼월(三月)'로 불리는 혜월(慧月, 18611937), 수월(水月, 18551928만공(滿空, 18711946) 선사가 있다. 경허는 '만공은 복이 많아 대중을 많이 거느릴 테고, 정진력은 수월을 능가할 자가 없고, 지혜는 혜월을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삼월인 제자들도 모두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 이들 역시 근현대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들이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가 처음 입산했던 두륜산 대흥사 해탈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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