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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㉚ 인도 고대 날란다 불교대학 해외 전법 기지 역할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07/25 [06:38]
새로 시작하는 세계 최고(最古) 불교대학, 비하르 주에 날란다 대학 재건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㉚ 인도 고대 날란다 불교대학 해외 전법 기지 역할

새로 시작하는 세계 최고(最古) 불교대학, 비하르 주에 날란다 대학 재건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07/25 [06:38]

새로 시작하는 세계 최고(最古) 불교대학, 비하르 주에 날란다 대학 재건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남방과 북방으로 전파되었다. 남방은 스리랑카에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였으며, 북방으로 전해진 불교는 중국에서 동아시아 불교의 센터로 정착하였다. 해양실크로드상의 불교전파에 있어서 스리랑카 불교가 주요한 역할을 하였고, 현재 동남아시아 불교는 인도-스리랑카 해상 루트를 통해서 전파된 상좌부(上座部) 불교 전통이다.

 

북방으로 전해진 불교는 중국에서 재정립되어 북방불교로서의 대승불교 전통으로 확립되어 동아시아 불교 전통이 되었다. 남방불교는 상좌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북방 불교는 상좌부 플러스 대승불교와 밀교전통까지 아우르고 있으며, 중국적 선종불교전통까지 추가되어있다.

 

현재 연재하고 있는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의 관점에서 지금까지 인도불교의 해상 전파 경로를 리서치하면서 소개해 왔다.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전해진 불교와 남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선정불교를 다루면서 보리달마와 관련된 주마간산격의 리서치를 소개했다. 이제 인도에서 인도네시아에 전파된 불교를 리서치하기 위해서는 인도 날란다 대학 불교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인도네시아에 전해진 주류 불교가 날란다 불교 학풍이었기 때문이다.

▲ 2014년 인도 비하르 주 라즈기르에 문을 연 날란다대학과 순나이나 싱 부총장.     

 

그러므로 인도네시아에 전파된 불교를 본격 탐구하기 위해서는 고대 날란다 대학의 역사부터 알고 있어야 인도네시아 불교전파 이야기가 전개될 수밖에 없다. 날란다 불교대학을 리서치 하기 위해서는 고대 날란다대학, 나바() 날란다 대학 그리고 날란다 대학(Nalanda University)에 대한 간단한 리뷰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고대 날란다 대학을 소개하기 전에 인도불교사에서 몇 가지 사항을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그것은 날란다 대학이 활기를 띠면서도 인도불교는 상처를 입고 휘청거리는 역사적 충격이 있었다. 인도불교는 5세기에서 8세기에 걸쳐서 훈족의 침입을 받고 불교가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중국의 인도구법 여행승려들의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되는데, 5세기의 법현법사, 7세기의 현장법사, 의정법사, 송운법사들로 부터 알게 된다.

 

불교가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타고 이미 중국에 전파되어서 정착되어 가고 있었고, 인도 남방으로 전해진 해상 불교가 또한 중국 남쪽 지방을 통해서 보리달마라는 남인도 출신 승려가 인도불교의 선정(禪定)을 소개하여 숭산 소림사에서 시작되는 단계였지만, 인도 본토에서는 훈족의 침입을 받아서 휘청거리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훈족의 인도 침공을 길게 논할 수는 없지만,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 있던 훈족인 키다라족(Kidara)이 인도불교에 충격을 주었다. 이들은 5세기 전반~중반 기간에 박트리아와 간다라 지방을 지배했던 월지(月氏)족 일파의 집단 혹은 국가이다.

▲ 키다리 족 훈족.     

 

자신들은 쿠샨(월지)의 후예라고 하며, 중국 자료에서는 바다흐샨 지역에서 살던 월지(月氏)족이 유연의 공격을 피해 서쪽으로 이주하여 생긴 집단(기다라, 奇多羅)으로 나와 있다. 수도는 페샤와르이며, 아무다리야강 중상류 지역과 아프가니스탄 북부, 인도 서북부를 지배했다. 이들은 5세기 중반에 에프탈에 의해 멸망했다. 에프탈은 5세기 중엽부터 약 1세기 동안 박트리아를 중심으로 타림 분지와 서북 인도에 세력을 떨친 유목 민족이다. 백훈족(White Huns)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에 대한 정체는 파로파미사다이에 의해서 최초로 언급되고 있다.

▲ 파로파미사다이 족.    

 

파로파미사다이 또는 파로파미소스는 힌두쿠시 산맥의 영역으로 아프가니스탄의 동쪽에 있으며 중심은 카불과 카피사(바그람}이다. 그곳은 아라코시아의 북쪽, 박트리아의 남쪽, 카슈미르의 서쪽이다. 이들에 의하면 훈족은 카이버(카이베르) 고개를 넘어서 인도로 남하하여 불교사원을 파괴한 야만인이다. 이들이 넘었던 힌두쿠시 산맥의 카이버 고개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 주변에 위치한 란디 코탈 도시를 스핀 가르(Spin Ghar) 산맥의 일부를 가로질러 페샤와르 계곡과 연결하는 고개이다. 고도는 1,070미터이며 고대 비단길의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오랜 기간 문화적, 경제적, 지리 정치적 중요성이 있었다. 역사를 보면 중앙아시아와 인도 아대륙 간 중요한 무역로였고 군사상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이들이 파괴한 불교 사원들을 법현 법사나 현장 법사가 목격하면서 인도로 구법여행을 한 것이다. 이제 다시 타임머신을 고대 날란다로 옮겨 가보자.

 

인도 불교사에서 날란다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배움의 터였다. 동시에 인도 후기 대승불교를 티베트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중국에 전파하는데 센터 역할을 하였다. 날란다 대학은 5세기부터 12세기까지 800년 동안 거의 지속적으로 발전한 불교학 연구의 산실이었다. 2,000명의 교수와 10,000명의 학생이 있다고 믿어지는 완전히 주거용 대학이었다. 우리는 날란다 대학의 유적에서 이 대학의 건축 구성요소를 통해 이 대학에서 추구되고 전달된 지식의 전체론적 특성을 유추할 수가 있다.

▲ 5세기에서 12세기까지 800년간 불교연구의 센터 역할을 한 날란다 사원 대학 유적.    

 

날란대 대학은 인도 아 대륙만이 아닌, 중국, 한국, 일본, 티베트, 몽골, 터키, 스리랑카 및 동남아시아와 같은 먼 곳의 학승들을 끌어들였다. 이 학승들은 이 독특한 대학의 분위기, 건축 및 학습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가장 자세한 설명은 중국 학승들에게서 나왔고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훗날 중국어로 번역된 수백 개의 경전을 가지고 온 현장 삼장과 의정법사이다.

 

날란다는 인도 고대 마가다(지금의 비하르)에 있는 유명한 불교 사원(수도원)대학이다. 역사가들은 세계 최초의 주거 대학으로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학습 중심지 중 하나로 간주되며, 라자그리하(지금의 라지기르) 시 근처와 파탈리푸트라에서 남동쪽으로 약 90km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현재의 비하르 주도(州都(주도)이다. 427년부터 1197년까지 운영되었으며 학자들에 의하면 "인도의 황금기"로 묘사된 5세기와 6세기에 예술과 학자들의 후원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굽타왕조 시대의 영역.   

  

날란다(Nālandā)는 마하비하라(Mahāvihāra大寺)가 있던 지명이다. 날란다는 라지기르(왕사성)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며 파탈리푸트라(현 파트나)에서는 95km 정도의 거리에 있다. 날란다는 고대인도 불교사원대학으로 유명한 곳이다. 사원대학이 세워지기 전에, 고오타마 붓다는 이곳 망고 숲에서 가끔 유숙한 바 있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이곳은 왕사성에서 바이샬리로 가는 간선도로여서 많은 사람들이 내왕하고 수행자들 또한 이 길을 통해 다녔다. 고대시대에는 동부 인도에서 서북 인도로 가는 대로(大路)가 이곳을 지나갔으므로 일찍부터 요충지였다. 게다가 이곳에는 망고 숲이 있고 연못이 있어서 수행자들에게는 쉼터나 다름없는 안식처이기도 했다.

 

고타마 붓다의 상수(上首) 제자인 사리불과 목건련이 이곳 출신이다. 사리불은 이곳에서 열반했으며 지금도 사리탑이 보존되어 있을 정도다. 자이나교의 창시자 마하비라는 이곳에서 14년간의 우기(雨期)를 보낼 정도로 두 종교의 교주(敎主)가 좋아했던 곳이다. 날란다는 연꽃 줄기란 뜻을 갖고 있듯이 이곳에는 연못이 있어서 항상 연꽃이 피어 있었다. 이런 역사적 연유로 이곳에 큰 절이 세워졌고, 사원대학이 생겼다. 학문연구 중심지로 체계가 잡힌 것은 굽타 왕조(Gupta Empire 320550 CE) 시대이다. 굽타왕조는 인도 대륙의 북부를 거의 커버하고 있었다

▲ 8종의 조사로 일컬어지는 용수(나가르주나)보살. 

 

날란다의 전성기는 굽타왕조에 이어서 지금의 우타라 프라데시의 하르샤 왕국(590647)과 팔라 왕조(Pala Empire 812세기CE)시대이다. 날란다 사원 대학의 최전성기는 5세기에서 12세기까지이며 티베트 중국 한국과 중앙아시아에서 유학승이 올 정도로 유명했으며, 7세기 당 나라 인도 구법유학승(求法留學僧)인 현장법사에 의하면 학생이 1만 명, 교수가 2천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4세기 말 5세기 초, 중국 동진의 인도 구법승 법현 법사가 왔을 때에도 사원대학으로서의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대승불교 중관파(中觀派)의 대가이며 8()의 조사(祖師)로 일컫는 나가르주나(Nāgārjuna नागार्जुन 龍樹 150250CE)가 학장을 지냈고, 그의 제자 아리야데바(Āryadeva आर्यदेव提婆170270)가 나가르주나의 학통(學統)을 이어서 발전시켰다

 

날란다 마하비하라(大寺)는 기원전 3세기 아소카 대왕에 의해서 사리불 존자의 사당이 있던 자리에 최초로 사원을 세웠지만, 큰 규모로 확장해서 발전시킨 것은 굽타 왕조시대이다. 굽타 왕조는 브라만 왕조였지만, 대승불교의 대철학자 바수반두의 영향으로 나라싱하굽타 Narasimhagupta Baladitya 495?CE) 왕 때 크게 발전시켰다. 바수반두(Vasubandhu वसुबन्धु; 世親 316396CE)는 친형인 아상가(Asaṅga असङ्ग 無著)와 함께 유식학파(唯識學派)의 창시자들이다. 대승교학(大乘敎學)은 중관파의 나가르주나와 유식학파의 바수반두에서 시작됐다. 중관.유식은 그대로 중앙아시아와 중국 티베트에 전해져서 불교철학의 양대 산맥이 형성되었고, 현재까지도 불교철학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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