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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31 대승교학의 산실, 중국, 인도네시아 티베트에 전법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08/01 [08:30]
나가르주나 중관 사상 심화 발전, 밀교학 연구로 명성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31 대승교학의 산실, 중국, 인도네시아 티베트에 전법

나가르주나 중관 사상 심화 발전, 밀교학 연구로 명성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08/01 [08:30]

나가르주나 중관 사상 심화 발전, 밀교학 연구로 명성

인도불교 대논사들 배출 요람, 12세기 이슬람이 파괴 

 

날란다 사원대학이 본격적인 학문연구 센터로 부상하기 전에도 이미 사원이 존재했었다. 오늘날의 신강성 쿠차 출신이었던 쿠마라지바(Kumārajīva334413 CE)가 장안에서 한역(漢譯)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에 따르면 나가르주나는 날란다에서 일찍이 활동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현장의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와 부톤 린첸둡(Buton rinchengrub:12901364)이 지은 인도불교와 티베트불교의 역사서에도 이와 관련된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 날란다 사원대학 옆에 1951년 인도 중앙정부의 지원으로 설립된 나바(新) 날란다 대학 전경. 


용수는 마하라슈트라의 동부 지역에서 브라만의 아들로 태어났다. 용수는 불교의 초기 경전을 연구하여 고오타마 붓다의 중도 사상인 중관(中觀 Madhyamaka)을 깊게 연구하였다. 고오타마 붓다의 중도에 대한 근본적인 논문인중론송Mūlamadhyamakakārikā)을 저술,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인 공을 파악하여 공(). 연기(緣起). 중도(中道)는 같다는 이론을 정립했다.

 

용수의 저작은대지도론大智度論》、《中論頌》、《十二門論,회쟁론迴諍論》《십주비바사론(十住毗婆沙論)》、《대승이십송론(大乘二十頌論)》、《보리자량론(菩提資糧論)등이다. 대승불교철학의 중관사상을 정립하는 데는 필독서들이다. 티베트와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의 대승교학 연구의 텍스트들이다. 용수의 제자인 아리야데바(Āryadeva提婆 170~270CE)백론(百論)을 저술하였다. 중관파는 물론 중국의 삼론종 천태종 등은 용수와 그의 제자를 의거하여 성립된 종파이다.

 

대승불교 철학사상사(哲學思想史)의 흐름에서 나가르주나의 중관파와 바수반두의 유가행(유식학)파는 쌍벽을 이루고 있다. 현재까지도 이 두 파가 세계 불교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바수반두(세친)는 지금의 파키스탄령인 간다라 지방의 브라만가문에서 차남으로 태어났고, 맏형은 그와 같이 사상가로 유명한 아상가(Asanga無着 300390CE)이다. 처음에는 유부(有部)에 속하였으며, 카슈미르와 간다라에서 유부를 비롯한 여러 부파 불교의 학설을 수업하고 이들 학설의 요강서(要綱書)구사론(俱舍論)을 지었다. 나중에 아상가의 감화로 대승으로 전향하여 아상가 및 그의 스승 마이트레야(Maitreya-nātha 彌勒 270350CE)의 저서에 주석을 붙여유가유식설(瑜伽唯識說)의 완성에 힘썼고,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을 저술하였다. 더욱이 그 입장에 서서 반대설을 깨뜨리고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 또한 유식설 입문서로서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을 지었다. 유식삼십송에 대해서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여러 주석서가 나왔고, 후일 현장(玄奘)이 호법(護法)의 주석을 중심으로 10대 논사(十大論師)의 여러 주석을 합쳐서 번역한성유식론(成唯識論)은 중국 불교의 법상종(法相宗)의 근본경전이 되었다. 바수반두(세친)의 저술은구사론(俱舍論),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대승오온론(大乗五薀論),대승성업론(大乘乗成業論),삼성론(三性論)》《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등이다.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대만에서의 대승교학 연구의 텍스트들이다.

▲ 현장법사가 이도에서 구한 경전을 짊어지고 중국으로 귀환하는 그림.  

 

아상가(무착 無着)는 인도 대승불교의 사상가로서 수행중, 도솔천에 올라 미륵보살의 계시를 받고나서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장엄대승경론(莊嚴大乘經論)을 전하고 강설(講說)했다고 한다. 아상가는 유가행의 스승이었던 마이트레야Maitreya-nātha 彌勒 270350CE)에게서 받은 학설로서, 그는 유식설을 조직·체계화한섭대승론(攝大乘論)을 지었고, 그 밖에육문교수습정론(六門敎授習定論),순중론석의(順中論釋義),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頌),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金剛般若經論등을 저술하여 유가행파의 대표적 논사(論師)로 꼽혔다.

 

일반 대중들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학술적인 소개가 되었지만, 날란다 사원대학을 소개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일이다. 대승불교철학의 양대 산맥인 중관파와 유식학파를 이해하지 않고선() 불교사상사(佛敎思想史)의 전개를 이해할 수 없고, 중국 한국 일본의 동아시아 불교의 교학(敎學)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쳤기에 이런 학술적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당나라 현장법사와 의정법사 그리고 한국(통일신라)의 혜초(慧超 700787)를 비롯한 현태(玄泰) 혜륜(慧輪 반야발마) 혜업(慧業) 스님 등이 날란다사원대학에서 공부했다. 현태는 티베트를 경유하여 인도에 들어갔다가 중국으로 돌아왔고, 혜륜은 제자 현유와 함께 사자국(실론)에 까지 가서 종신(終身)했다. 의정법사에 의하면 혜업이 산스크리트어(梵本) 저서를 직접 봤을 정도로 산스크리트어에 능통했는데, 그는 날란다에서 입적했다고 한다. 날란다에는 중국은 물론 중앙아시아 티베트 등, 인도 이외의 나라에서 많은 외국 유학승들이 와서 공부한 국제대학의 명성을 갖고 있었다. 중국 한국 일본에 큰 영향을 미친 현장법사를 소개해 보자.

 

현장(Xuanzang 玄奘 602664)삼장법사(三藏法師)는 중국 당 나라 때 승려로, 한역(漢譯) 불전(佛典)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직접 인도에 가서 날란다 사원대학에서 빨리어와 산스크리트어로 삼장(경율론)16년간 배우고 귀국해서 중국 역경사(譯經史)에서 신역(新譯)이라는 한 획을 그어 동아시아 불교에 큰 충격과 불교사상사의 큰 물줄기를 돌린 학승이며 역경사(譯經士)이며 여행가이기도 한 고승이다.

▲ 현장법사의 인도 구법여행 경로 지도.    

 

현장 삼장은 629년 장안을 출발해서 고비사막과 천산남로(天山南路) 타림분지를 지나 카이버 고개를 넘고 훈자 계곡을 가로질러서 인도에 들어가 불적지(佛跡地)를 순례하고 날란다 사원대학에서 논리학(因明學) 문법 산스크리트어와 유가행파(Yogacara)의 철학을 학습했다. 특히 당대 날란다사 주지이며 대학승인 실라바드라(Śīlabhadra 戒賢 529645CE)로부터 유가행파(瑜伽行派=唯識學派)의 논서(論書)를 집중해서 직접 배웠다. 실라바드라 논사(論師)는 아상가 바수반두 디그나가(Dignāga 陳那論師480540CE)와 다르마팔라(Dharmapāla 護法 530561CE)로 계승되는 유가행파(瑜伽行派)의 대학승이다. 유가행파의 근본 경전은해심밀경(解深密經)이다.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미륵(彌勒)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무착(無着섭대승론(攝大乘論)과 세친(世親)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십지경론(十地經論)·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이 유가행파의 주요한 소의(所依=기본텍스트) 논서이다. 또한 세친의유식삼십송에 대한 문하의 십대 논사의 학설을 호법의 학설을 중심으로 하여 현장(玄奘 602664)이 번역·편집한성유식론(成唯識論)도 주요한 텍스트에 포함시킨다.

 

인도 불교의 유가행파에 상응하여 중국·한국 또는 일본 불교의 종파로는십지경론을 소의 논서로 하는 지론종(地論宗),섭대승론을 소의 논서로 하는 섭론종(攝論宗),성유식론을 소의 논서로 하는 법상종(法相宗:자은종·유식종)이 성립됐다.

 

현장 삼장은 64616년 만에 당 태종 이세민(唐 太宗 李世民 598649CE)황제의 요청으로 귀국을 서둘렀다. 현장삼장은 귀국해서 경전번역에 여생을 마쳤는데, 장안 흥복사에 역경원(譯經院)을 설치하고 후에 대자은사(大慈恩寺)로 옮겼고,대반야경(大般若経)번역을 완성하고 입적했고, 문하에 규기(窺基632682CE)와 신라출신 원측(圓測613696CE) 등 많은 제자를 두었고, 법상종(法相宗)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현장 삼장은 많은 경전을 옮겼고, 구법순례기인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남겼는데 이 책은 중세 서역 중앙아시아와 인도에 대한 1차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현장삼장의 자서전 격인대자은사삼장법사전(大慈恩寺三藏法师传)을 제자 혜립(慧立)664년에 찬했다. 프랑스에서 중국연구가 스타니슬라오 애낭 율리우스(Stanislas Aignan Julien 儒蓮 17971873)1857년 프랑스어로 번역했고, 영역(英譯)은 동양학 학자 사무엘 빌(Samuel Beal 18251889)1884대당서역기, 1911년에대자은사삼장법사전을 발간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날란다에는 또 한명의 유명한 삼장법사가 유학했는데, 그 분은 의정(義淨 635713) 삼장이다. 의정삼장은 25년간 중국과 인도 날란다를 오가면서 유학했는데, 그는 스리비자야( Srivijaya 6501377 현재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국에서 산스크리트를 배우고 673년에 날란다 사원대학에서 가서 14년간 유학했다. 의정의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 따르면 대강당이 8개 강의실이 300개인 주 건물만 4만 평 부지위에 있었고, 수백 개의 부속건물과 숙소 등이 있었다고 하며 1만 명의 학생가운데 중국 등지의 학승이 2천 명이었다고 한다. 티베트 소스에 의한 교과과정은 경..론 삼장의 기본 골격에, 상좌부인 설일체유부의

아비담마비바사론(阿毗達磨大毗婆沙論),경량부(经量部)이부종윤론(異部宗輪論)과 대승철학인 나가르주나의中論頌과 무착 세친의유가행(唯識)을 집중적으로 공부했으며, 기타 교양과목 등으로 조직됐다고 한다.

 

불교학 연구의 중심지로서의 세계 최고최대(最古最大) 사원대학이었던 날란다는 1200년 터키계 무슬림 장군 키질(Bakhtiyar Khilji?1206)에 의해서 결정타를 맞고 파괴되었으며 도서관의 도서가 불타는데 6개월이나 소요됐다고 한다. 다행하게도 날란다 교과과정과 학통은 중국과 티베트 불교로 전수됐다. 8세기 말에 설립된 비크라마실라(Vikramaśīla 超戒寺) 대학에서 밀교가 티베트에 집중적으로 전수됐다고 할지라도, 중관.유식은 날란다의 학통을 계승하고 있다.

▲ 터키계 무슬림 키질 장군이 날란다 사원대학을 파괴하고 승려들을 학살한 장면.   

 

인도는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아주 먼 옛날 베다시대부터 구루쿨(Gurukul)이란 기숙사 형() 학교가 있었는데 기원 6세기에 탁실라대학은 정치 경제 군사 의약 등으로 매우 유명했다. 당대 왕족의 자제들이 이 탁실라 대학에서 공부했는데, 마가다의 아잣타사투 왕, 코살라의 파세나디 왕과 아소카 대왕의 할아버지 찬드라 굽타 왕이 탁실라 대학 출신들이다. 고오타마 싯다르타(부처님)는 탁실라 출신 가정교사를 왕궁에 초빙하여 베다교육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날란다 불교사원대학은 탁실라대학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나바) 날란다 대학은 인도 초대 대통령 라젠드라 프라삿드 박사(His Excellency, Dr. Rajendra Prasad)1951년 옛 날란다 대학의 명성을 되살려 나바() 날란다 대학을 설립하도록 발의해서, 자그디쉬 캬삽(Bhikshu Jagdish Kashyap 19081976) 빅슈가 1955년까지 초대 학장 겸 이사장을 역임했다. 다수의 동남아 중국 등지에서 온 석.박사 과정학생들이 인도 고대사와 불교학을 공부하고 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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