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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클럽 인문학 강좌: 김종서 교수 ‘종교와 문명2’ 한국종교학의 전개

매일종교신문 | 기사입력 2010/10/12 [12:36]

관훈클럽 인문학 강좌: 김종서 교수 ‘종교와 문명2’ 한국종교학의 전개

매일종교신문 | 입력 : 2010/10/12 [12:36]

오직 신앙의 대상에서 학문적 탐구의 대상으로


개별 종교전통에 관심가진 서양인


한국종교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처음 열어준 것은 사실 서양인이었다. 그들은 낯선 땅에 들어와 호기심과 낭만적 관심 또는 기독교 선교라는 본래 비학술적인 의도를 가졌었다. 초기에는 비록 한국에 종교가 없다거나 미신뿐이라고 여기기도 했었지만, 그들은 점차 한국 전통적 여러 종교들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존스(G. H. Jones, 1867-1919), 헐버트(H. B. Hulbert, 1863‐1949), 클라크(C. A. Clark, 1878-1961) 등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면서 한국종교의 이해가 너무 기독교적으로 흘러버리기도 했으나, 나름대로 한국종교에 깔려있는 근본적인 상징체계를 알아내려 하였고, 순수 종교(心)성 자체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그러니까 ‘종교학은 종교를 연구하는 것’이라는 기본 전제를 서양인들은 한국종교학에 처음부터 잘 각인시킨 셈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학은 종교에 연관된 역사나 철학이나 사회적 기능 및 문화적 영향 등보다도 역시 종교 그 자체에 우선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서양인들은 무속과 더불어 한국 민간신앙의 연구를 시작하여 샤머니즘의 큰 틀 속에서 이해하려고 하고, 초기에는 유교와 조상숭배를 구분해서 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해방 이후에도 많은 서양인이 한국종교를 연구하여, 다양한 영역으로부터 전문적인 학자들이 속출하여 왔다. 하지만 어떤 특정 방법론을 강요하기보다는 한국종교의 현상과 자료 자체를 중시하고 있다. 총체적인 한국종교 일반에 관심을 가지고 보편적인 이론화를 시도한 서양학자는 드물다. 대개 여러 개별 종교전통들을 다루고, 특히 한국의 종교들을 일본 및 중국의 종교들과 점차 차별화 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체계적 심층적 연구를 이룬 일본학자


그러나 한국종교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학문적 보편성을 구축하는 데에는 일본학자들이 크게 공헌하였다. 물론 식민지 통치라는 분명한 실용적 목적을 가지고 문화적 우월주의가 깔려 있어서 오늘날 비판에 열리기도 하지만, 각종 문헌 및 조사자료의 체계화와 학술적인 전문화를 해낸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또 관 주도의 연구였던 셈이어서 순수 학술적인 관심보다는 정책수립을 위한 업적 본위주의가 앞서고 자료 자체가 왜곡된 경우도 많았으나 한국종교 전반에 관한 심층적이고도 개척적인 연구가 또한 많았다.

미시나(三品 彰英, 1902-1971)의 한국 고대 신앙연구나 다카하시(高橋 亨, 1878-1967)의 조선시대 종교문헌 연구, 또 에다(江田 俊雄, 1898-1957)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한국불교 문헌자료의 체계화 및 무라야마(村山 智順, 1891-1968)의 [조선의 귀신, 1929]을 비롯한 풍수, 점복 등의 여러 민간신앙 및 신종교 자료들의 체계적인 집대성은 각기 일부 한계성들은 지적되고 있으나 두드러진 연구들로서 오늘날까지도 읽혀지는 한국종교학의 귀중한 고전들이다.

그러나 한국종교학에 이론적 방법론적인 가장 중요한 업적을 세운 일본인은 역시 아까마츠(赤松 智城, 1886-1960)와 아끼바(秋葉 隆, 1888-1954)이었다. 아까마츠는 (오늘날 서울대학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에 1927년 최초의 종교학 교수로 부임하여 특정종교의 변증적 연구가 아닌 소위 ‘(비교)종교학’에 해당되는 객관적인 종교학 강좌들을 열어 한국종교학에 보편적인 학문체계를 세웠다. 그의 [만근종교학설의 연구, 1929]는 당시 서구에서 전개되었던 종교학적 경향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소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보조과학적 (언어학적, 심리학적, 인류학적, 사회학적) 연구들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많은 한국학자들이 서구 종교학이론을 서구로부터 직접 습득하기보다 그의 책을 통해서 접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 다음 해인 1928년 경성제대에 온 아끼바는 부임 전 영국 런던대학에서 말리노프스키(B. Malinowski) 등과 같이 공부를 했었다. 특히 사회인류학적 방법론을 도입하여 한국 무속에 대한 ‘집중적 조사연구’를 하였다. 기존의 연구들이 문헌적 역사적 연구를 위주로 한 것이었다면 아끼바의 한국무속 연구는 종교적 내용보다는 그 기능적 측면을 중시하면서 일본 및 만주, 몽고나 북방아시아 샤머니즘과의 비교연구를 통한 보편주의적 성격을 보여준다. 이러한 비교적 관점을 통한 보편성 탐구는 한국종교학이 국지성을 탈피하고 세계적 차원에로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엘리아데(M. Eliade)류를 비롯한  서구 종교학이 본격 도입되면서 더욱 강조되어 온 바이다.


서구 종교학 이론에 꿰맞춘 시기 거쳐


이러한 외국인들의 연구에 비해, 한국인들의 한국종교 연구가 주체적 관점에서 실존적인 이해를 해온 것은 당연한 셈이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민족혼을 소생시키려는 박은식(朴殷植), 신채호(申采浩) 등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종교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연구들은 종종 아전인수식 자료고증에 의해 국수주의적으로 흘러버리기가 일쑤여서 객관적인 한국종교학을 담보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므로 학문적 보편성을 향한 실증적 관심이 병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향은 자료 자체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근대 한국종교학의 아버지’라 할 이능화(李能和)의 폭넓은 한국종교 자료의 정리 작업과 백과사전적 저술 활동을 가져왔다. 특히 기존의 한국종교에 관련된 관심이 경학 중심들이었던 것과 달리, 이능화는 한국종교를 어떤 당위적 규범 체계로 보기보다는 믿음 현상 그 자체로 이해하려 한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최남선(崔南善) 등을 거치면서 각개 종교전통의 문헌적 내용과 한국종교의 고유성이 다양한 서구의 보조과학적 지식들로 포장된다. 따라서 한국종교학의 영역 자체가 매우 확장되게 된다. 당연히 “한국종교” 개념의 외연도 확대되었다.

한편 외국인들이 비교방법을 선호하면서 한국종교를 연구하는데 일종의 (기능적) 보편주의적 성격을 보여준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인들의 연구는 언어와 기원 및 민속 등과 관련된 고유한 상징체계를 강조하면서 (역사적) 특수주의를 표방해왔다고 볼 수 있다. 손진태(孫晉泰)의 ‘역사민속학’을 비롯한 여러 한국 민속신앙에 대한 연구들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전개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불교와 기독교 등 각개 종교전통들에서 자체 종교를 알기 위한 전제로서 한국종교에 대한 전이해(前理解)가 점차 정교화 된다. 특히 근대화 이후 종교인구의 급팽창은 여러 종교전통의 급성장을 가져 왔다. 이와 함께 각개 종교의 연구들에서 표출된 한국종교적 관심들은 단순한 변증적 차원을 넘어서 보편 학문적 차원을 향한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해방 후 한국인들의 한국종교 연구는 한국종교학회가 창립되는 1970년 이후 주로 본격화 되었다. 내부적으로 축적된 역량과 더불어 서구 종교학이 도입되어서 계기를 형성한다. 개별 종교전통들의 전문가들이 나오고 또 서구 (비교)종교학 이론서들이 앞 다투어 번역되면서 다양한 이론들과 보조과학적 방법론들이 한국종교의 연구에 두루 적용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종교 자료들을 억지로 서구 종교학 이론 틀에 끼어 맞추어 설명해 버리려는 시도들도 많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종교 연구사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어나면서 ‘한국적 방법론’의 문제가 심도있게 거론되는 것은 이런 경향에 대한 반성에서부터다.


다종교시대 맞아 성찰된 모습으로


요컨대, 오직 신앙의 대상일 뿐이었던 한국종교가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은 근대 이후 다종교시대가 되면서부터다. 종교경험이 크게 객관화되고 종교 인식 자체에 비판적 자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소박한 신행양태에 불과했던 한국종교의 개념이 한국종교학의 전개와 더불어 더욱 성찰된 모습으로 탈바꿈 되었다고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발현된 종교(심)성을 전제로 그 보편적 차원과 특수적 차원을 양대 축으로 하여 한국종교의 개념을 틀 잡아 왔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1) 근본적인 종교성의 측면, (2) 비교를 통해 형성된 보편성의 측면 및 (3) 본래 한국적인 독특성의 측면이 한국종교학이 탐구해온 핵심적인 세 측면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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