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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건의 현장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6/11 [16:44]

옛 사건의 현장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6/11 [16:44]
 

옛 사건의 현장


타임머신을 타지 않고도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 지난날의 사건 현장을 생생히 지켜 볼 수 있을까?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강력범죄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한결 편해질 것이다. 때로는 영매를 통해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그 덕분에 실제사건을 해결했다는 식의 서양영화도 몇 편이나 나와 있다.

‘생명조류(Lifetide)’ 등 생명과학에 대한 저서를 많이 쓰고 있는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라이얼 왓슨이 겪었다는 실제경험은 납량특집 드라큘라 영화보다 더 섬뜩하다.

그는 유체이탈을 하면서 그 내용을 주변 사람에게 중계할 수도 있다는 특이한 여성 한 명과 그리스를 여행 중이었다고 한다.

어느 시골을 지나다 그녀가 갑자기 작은 교회 하나가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왓슨은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교회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교회의 흰 벽이며 붉은 지붕, 종없는 종탑, 그 교회 곁에 있는 2층집 등의 모습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집은 1층이 축사, 2층은 주거로 쓰는 것 같으며 2층으로는 폭 넓은 나무계단이 집 밖에 설치되어 위층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마치 곁에 있는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듯 하나의 정경을 설명해 나가던 그녀가 갑자기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단지 ‘피’라는 한 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워낙 돌출적인 모습을 잘 보여 주었던 그녀인지라 왓슨도 그때는 그냥 무심히 지나가 버렸다.

다음날 그는 그 부근을 혼자 산책하다 우연히 어제 그녀가 설명했던 한 교회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것을 보게 되고, 호기심으로 그곳까지 가 보았다. 작은 교회와 그 옆에 선 목사관 같은 곳이었는데 부근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그녀가 설명한 대로 목사관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나무계단이 보였다. 이를 보면서 기분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나무계단을 올라가 보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어 일종의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그는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계단을 절반쯤 올라갔을 때 계단에 무언가 축축한 것으로 흠뻑 젖어 있음을 발견했다. 무심코 손끝을 대 보았더니 끈적이는 감촉이 느껴지면서 붉은 얼룩이 묻어 나왔다. 손끝의 냄새를 맡아보니 약간의 금속냄새가 나는 선혈이 분명했다. 그곳에서 등을 보인다는 사실조차 무서웠지만 그는 서둘러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그날 밤 그는 그녀로부터 유체이탈 후 보게 된 광경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스정교의 사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피투성이의 어느 여성 시체를 안고 피를 뚝뚝 흘리며 계단을 오르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고 먼 과거에 있었던 일을 두 사람이 목격한 것이었다.    

그 사실은 라이얼 왓슨이 몇 년 뒤 그 마을을 지나며 확인하게 되는데 옛날 그곳에서 양을 치던 사제의 아내가 샘터 근처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됐으며 마을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일요일임에도 그녀가 양떼를 방목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왓슨은 몇 년이 지난 후 그가 당시 정말로 피를 보았다고 단언할 자신은 없다고 밝힌다. 그럼에도 그때 두 사람의 똑 같은 체험은 역시 설명할 길이 없다.

왓슨은 그녀가 당시 사제의 유령을 보았거나 아니면 혹시 그녀 자신이 사제의 환생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도 해 보고 있다.

왓슨은 자신의 체험 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신비한 체험들을 모아 글로 썼다. 어느 마을 사람들이 그 마을의 노인 한 사람이 죽는 바로 그 시간에 모두 함께 마을 호수를 걸어서 건너는 그 노인의 환상을 보았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이다.

왓슨의 해설을 들어 보자.

‘우리들을 놀라게 하고 혼란에 빠뜨리는 많은 일들이 한결 같이 생물학적 무의식이라는 공통의 원인에 기인한다는 주장에 나는 아무런 이의도 없다. 바로 여기서 신앙과 미신과 관습, 신화 민화 그리고 갖가지 오류 등이 솟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시대적인 요구와 배경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환하면서 우리들 앞에 온갖 형태로 나타나기에 이른다.’

그리스에서 이상한 체험을 했던 왓슨은 과학적으로 유령문제를 풀어보려 노력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에서도 번역돼 나온 그의 저서 ‘초자연’에서 유령에 대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여러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실제적 증거는 없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성 기체(星 氣體)’, 즉 정상적인 육체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어쩌면 죽은 뒤에도 생존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일부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성 기체’란 영혼과 육체의 중간적 존재로 유체이탈 때 육체를 자유로이 벗어나 돌아다닐 수 있는 제3의 개체를 말한다. 왓슨은 적어도 유체이탈 현상은 인정하려는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자기가 보았다는 유령이야기를 할 때 그 유령이 옷을 입고 구두를 신고 모자를 쓰고 있다고 표현하는데 ‘만약 성 기체가 옷을 입고 있다면 그것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그 당시의 복장을 입고 있는 유령을 본다는 것은 그 환영이 초자연적인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정신적 작용의 일부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여러 사람이 똑 같은 유령을 보았다면 그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것은 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에 의한 텔레파시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왓슨은 영매를 통한 죽은 사람과의 교신도 의심스러워하고 있다. 영매가 과거에서 누군가를 불러낼 때  몇 십억이나 되는 죽은 사람 가운데 하필이면 언제나 나폴레옹․톨스토이․쇼팽․클레오파트라․알렉산더 대왕 등등이 등장하는지도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래도 유령의 존재에 대한 유무를 확신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죽은 뒤에 어떤 것도 살아남지 않는다는 것 또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왓슨은 이 책에서 영국의 작가이며 평론가인 콜린 윌슨의 유령에 대한 언급도 소개하고 있다.

윌슨은 유령의 정신 상태를 고열로 의식이 흐릿해지거나 일시적으로 정신착란에 빠진 사람, 현실과 꿈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의 그것과 비슷하게 본다는 것이다.

윌슨 왈,

‘유령들이 생전에 알고 있던 장소에 출몰하는 것은 영계에서의 정신박약의 등가물인 듯하다. 사람들은 그들이 더 나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왓슨은 여기서 ‘이승에서 유령을 보는 사람의 정신 상태도 이와 똑 같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내 놓는다.

우리 주변을 방황하는 유령은 지능이 낮은 유령이라는 이야기이고 이승에서 유령을 보는 사람 역시 지능이 낮을 것이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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