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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듣는 다석강의/공산주의는 안돼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6/11 [16:29]

다시듣는 다석강의/공산주의는 안돼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6/11 [16:29]

 다시듣는 다석강의/공산주의는 안돼

“사람 죽이기 좋아하는 공산주의 반드시 실족한다”

 

레닌이 약품 처리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84년째 안치돼 있다.

 

‘마르크스와 예수’라는 책이 있다고 한다. 여기 무엇이 공통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일러 주신 말씀 그대로 하면 공산주의가 어디 있겠는가? 결코 공산주의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불교사상이 원형대로 빈틈없이 발달되었다면 어디 동양에 공산주의 같은 사상이 얼씬을 하겠는가?

성경이면 성경의 이치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세워서 좀 낫게 한다는 것이 틈이 생겨서 공산주의 같은 사상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성경에도 같이 먹자는, 공평하게 하자는, 가난한 자 도와주라는 말이 있다. 이치는 알지만 이론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자꾸 나아가게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좀 낫게 할 것을 낫게 하지 못했으니까, 이런 소리 저런 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힘과 빵을 해결하는 것이 종교라 해서 미신(迷信)이 나오는 줄 안다. 공산주의 천하가 되면 먹고사는 데 많은 발전이 된다고 한다. 옛날 제왕(帝王) 때에 잘 입고 잘 먹게 된다고 한 것이다. 잘 입고 잘 산다는 것은 그것이 미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이 어리석어서 공산주의 같은 데 빠지는 것이다. 열대지방에는 먹는 것이 풍부하고 더워서 입을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지방 사람은 미련하기가 자기 나이를 모른다고 한다. 모든 것이 풍족하다는 것이 좋지 못하다. 요즘은 백인들이 들어가서 착취하여 좀 부족한 듯 하니까 전보다는 퍽 차이가 있다고 한다. 빵 문제가 해결되면 이 지경을 당한다. 빵 이상의 것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이다. 인생에는 반드시 뜻이 있다. 진리가 그것이고 하느님이 그것이다.

역사의 맨 꼭대기인 요순(堯舜)시대부터 정치의 제전(祭典=制度)이라는 것은 민본(民本)이었다. 그런데 공산당이 정치하는 것은 영웅주의로써 호강(豪强)을 한다. 호(豪) 자는 멧돼지가 산 속에서 뛸 때에 온 산이 흔들리고 돌들이 와르르 흩어지는 표현이다. 권력으로나 금력으로나 억눌러 보자는 것이다. 호강이라 하면 집 여편네들이 호강하고 싶어서 남편을 졸라 보는 그 호강과 어감이 같다. 이 여인네들의 호강 때문에 우리나라도 망했던 사실(史實)이 있다. 호강은 비단 정치에서 만이 아니다. 교회에서도 예수의 이름을 팔아서 호강하겠다는 것이 교회사 대부분을 장식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반듯하지 못한 사람이 질그릇을 만들면 만들어진 그릇도 반듯하지가 못하다. 그러니 나라의 정치도 반듯한 사람이 해야 모든 것이 반듯해지는 법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 수신제가(修身齋家)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라의 정치를 반듯하게 할 리 없다. 마음이 반듯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영원(하느님)과 인연이 끊어져 미혹하게 된다.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 것으로 소유(所有)를 말하는데 소유했다는 것은 내가 두어두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상대적인 유(有)는 내가 두어두었다는 유(有)이다. 우리가 상대세계의 자식이니까 그렇지 절대계(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물건이 모자란다거나 쓸 물건이 없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걸핏하면 유물사관(唯物史觀)이라는 걸 들고 나오면서 만족할 만한 물질과 좋은 환경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물건에 만족을 느끼면 짐승처럼 하느님을 찾을 줄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물질에 만족할 것이 없다.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가져 보았지만 보이는 물건만으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보이는 것은 있다가 잃어버리는 것이니 만족할 수가 없다. 불가불 그 밖의 것을 찾아야 한다. '참'이 있다면 그것을 가져 보았으면 한다.

그리하여 석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나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을 찾고자 고행을 했다.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마음에서 만족할 참을 찾았다. '참 그것이 무엇일까? '참은 하나(一)다. 이 하나는 둘이 아닐 것이다. 하나는 절대(絶對)다. 절대(하느님)의 자리는 있다 없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있다' '없다'가 문제가 아니다.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다. 우리는 이런 절대존재를 느끼고 싶고 찾고 싶다. 유일불이(唯一不二)의 절대존재(진리)를 찾는 게 아니다. 본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본래 가진 원일(元一)이다.


공산주의의 등장은 종교 책임 커

백성 죽이고 전쟁 이기자는 ‘人民’

송장의 유리관 보관도 잘못된 일

사람은 빵문제 이상 진리 찾아야


지금 공산주의자들이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지만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쌓은 임금 같은 임종(臨終)을 해보겠다는 자들이 아니겠는가? 문왕․무왕 때 옆에 오랑캐들이 자꾸 침해하자 그런 도둑들이 쳐들어오는 데 살 필요가 없다 하여 이사를 가니까 백성들도 자꾸 따라왔다. 이쯤 덕이 있어야 한다. 도둑을 맞고도 살아야 한다면 백성을 죽이게 되는 것이다.

중공(中共)의 인해전술은 백성을 전쟁에 몰아넣고 독전대가 뒤에서 기관총을 대고 독전을 한다. 이렇게 되면 백성을 죄다 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중공의 국방상 팽덕회가 4억을 내버려서라도 원자탄․수소탄에 대항하겠다는 것이다. 4억이 죽어도 2억이 남으니 전쟁에 이긴다는 것이다. 그런 놈에게는 100억의 백성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그따위 정신으로 이기려 든다면 하나 무서워할 것 없다. 무엇을 가르쳐서 독전하겠다면 혹 모르겠다. 백성을 버리겠다는 자가 무엇을 위해서 백성을 받드는 자리에 있는지 나는 그 목적을 알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인민주의(人民主義)라고 한다.

거짓말 잘하고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는 공산주의는 머지않아 반드시 미끄러질 것이다. 밤과 낮이 있듯이, 악이 있으면 선이 있다. 악이 찌그러질 때가 있고 선이 찌그러질 때가 있다. 자꾸 돌고 돈다. 악이 아주 없어지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선이 아주 없어지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악이 줄기찬 반면에는 선도 곧장 힘 있게 뻗고 있다. 이렇게 되고 있는 것은 무슨 하느님의 뜻이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바라신다면 이 세상에서 악이 망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유물사상에 철저하다는 공산국가에서도 레닌이라는 작자의 송장을 늘 곱게 단장시키고 썩지 않게 유리관에 넣어 두었다. 사람은 무얼 좀 오래두고 싶고 보존하고 싶어서 이런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이는 그만한 지위에 그만한 인격이니 그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국민 자신이 생각하는지 모르나 어리석은 국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나라에서도 자신의 주검을 이러한 유리관에 곱게 두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나 그것이 당연하다고 보는 사람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저 김일성을 비롯한 공산국가에서 하는 짓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 공산국가에서는 죽어서 송장이 유리관 속에 들어가고 싶어서 못된 짓을 그 같이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정신이 사람인데 사람이 그 모양으로 꿈만 꾸고 있으니 잘 될 것이 없다.

자손을 잇지 않으면 큰 불효라는 생각이나 자신의 송장 뼈다귀나 보전하겠다고 자식을 바라는 생각 따위는 다 없어져야 한다. 단군 할아버지의 생신날에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개천(開天)의 날은 하늘이 열린 날인데 그이의 뜻은 곧 하느님의 뜻이었다. 하늘을 열어놓고 살림을 하자는 그 일을 우리는 해야지 다른 일이 또 무엇이 있는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順命)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툭하면 유토피아(理想世界)를 말하는데 이상세계가 온다면 어떻단 말인가? 유토피아도 상대세계일 것이고, 나고 죽는 세계일 것이다. 우주 자체가 한숨인데 유토피아인들 우는 소리가 없겠는가? 한숨은 이상세계에서도 나온다. 그놈의 이상세계가 어떠한지 그 세상 가지고 사람을 심판할 만한 것이 되겠는가? 그놈의 공산유토피아 때문에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죽여도 된단 말인가?

공산주의가 아니면 자본주의의 방해를 막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아니면 공산주의의 맹위를 제약할 수가 없다. 공산주의가 있는 것이나 자본주의가 있는 것이나 다 하느님의 섭리로 이루어지고 있다.


유영모(1890~1981)

호 다석(多石). 우리말과 글을 가지고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유불도를 회통하는 한국적이며 세계적인 사상을 형성했다. 곧음으로써 하나 됨에 이를 수 있고, 하나 됨에 이르러서 두루 통할 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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