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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할되었다는 지옥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4/30 [09:59]

분할되었다는 지옥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4/30 [09:59]
 

분할되었다는 지옥


‘신은 수많은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내고 인간은 이를 탐험하느라 지친다.’

16세기 인도에서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비판적으로 통합하면서 개종(開宗)한 시크교는 앞선 두 종교의 천국과 지옥들을 살펴보는데도 이처럼 지쳤던 모양이다.

그렇다. 천국과 지옥은 지구위에서 생기고 발전해 온 종교, 더러는 없어지기도 하고 더러는 오늘에까지 신앙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 종교의 가짓수만큼이나 많다. 아니 어쩌면 한 사람이면 그 나름의 한 개씩의 천국과 지옥, 천 사람이면 이를 모두 합쳐 다른 천개씩의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이다. 그 천국과 지옥이 우리 삶 속에 드러나는 행복이나 불행을 말하는 것이든 실제 어딘가에 존재하는 천국과 지옥이든 의미는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은 그런 천국의 중심에 ‘하느님’이 계실 것이라 믿기도 한다. 

소설을 쓰는 작가들 역시 그런 천국과 지옥을 각기 지니고 있을 것이며 나름대로 이를 하나의 세계로 설정해, 천국 세계와 지옥세계를 펼쳐 보이기도 한다.   

유고 작가 밀로라드 파비치에게는 사전을 편집하듯 쓴 소설 하나가 있다. 제목 하여 '카자르 사전'이다.

카자르는 흑해북부 카프카스 지방에서 7세기 이후 한 때 세력을 떨쳤던 나라지만 10세기 러시아에 의해 망한 뒤 11세기 무렵 역사의 무대에서 그야말로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실존했던 제국으로 지금은 역사도 민족도 언어도 남겨진 것이 없다.

9세기 경 카자르는 자신들의 전통종교는 접어 둔 채 당시 주변국 종교인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 가운데 하나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세 종교 가운데 하나를 택한 다음, 나라가 기울기 시작, 결국 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때 카자르가 어느 종교를 택했던가는 분명치 않다. 지금은 다만 주변 세 종교,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가 서로 당시의 카자르가 자신들의 종교를 선택했다고 주장하는 흔적만을 찾을 수 있는 모양이다.

카자르가 세 종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그리고 멸망한 다음 역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 그 시기가 세 종교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기 시작하는 저 유명한 ‘십자군전쟁’ 분위기가 무르익던 시대인 것을 참고하자.

그 카자르를 소재로 쓴 소설 '카자르 사전'에는 9세기부터 얽히고설킨 세 종교의 밀고 당기기가 현대까지 이어지며 세 종교의 지옥 악마들도 모두 인간 세상에 섞여들어 맹활약, 소설에서의 신비성을 더해 주고 있다.       

그런데 소설 '카자르 사전'에는 사탄이 등장, 카자르 제국 바로 아래 지옥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세 종교의 갈등 그 자체가 ‘지옥’이라는 의미였을까?

사탄의 설명은 이렇다.

"고대에는 죽은 자의 세계에 세 개의 강이 있었는데 아케톤, 플레게톤, 코퀴토스였습니다. 그것은 지금 각각 이슬람 유대 기독교의 지하세계에 속합니다. 그 강은 각각 세 개의 지옥, 유대인들의 지옥인 게헨나, 기독교의 지옥인 하데스, 그리고 이슬람교도의 얼음지옥으로 흘러들어가며 세 곳은 모두 한때 카자르 민족의 영토였던 땅 밑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죽은 자의 나라 세 개가 한 곳에서 만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사탄의 나라에는 기독교 하데스가, 그리고 아홉 개의 원과 루키페로스의 왕좌와 암흑왕의 깃발이 있습니다. 이슬람의 지하세계에는 이블리스(이슬람교의 사탄에 해당)왕국의 얼음 고문이 있습니다. 제프라의 영토는 성전의 왼쪽에 있는데 그 성전 안에는 악과 탐욕과 굶주림을 관장하는 유대신이 게헨나에서 아스모데우스의 명령에 따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 개의 지하세계는 서로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쇠로된 쟁기로 경계선을 그려놓았으며 아무도 그 경계선을 넘어 갈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하나로 통일돼 있던 지옥도 땅위에서 세 개로 갈라진 종교 때문에 역시 세 쪽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일까?

그리고 땅위에서야 지금도 세 종교는 서로 교류하기도하고 반목하기도 하지만 지옥은 서로의 경계선을 넘을 수도 없이 완벽하게 배타적으로 분리되었다는 것인가?

더 들어 보자.

"이 땅위의 이슬람 세계, 기독교 세계, 유대교 세계와 관련된 일에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래야만 그것들의 지하세계에 연관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 종교에 관심 갖지 않으면 지옥 가지 않는다는 사탄의 말이 그럴듯해 보인다. 사실 카자르도 그 세 종교 중 하나를 택하려 깊은 관심을 가졌을 것이고, 결국에는 그들 나라의 지하에 세 종교의 지옥을 불러들였을지 모르는 일이다.   

덧붙여 사탄은 유대지옥에는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들이 불타고 있고, 기독교 지옥에서는 이슬람교도나 다윗을 받드는 유대교도들이 고통을 당하며, 이슬람 지옥에는 기독교와 유대교도들이 가게 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작가 파비치는 지금까지 세 종교의 저승 또는 지옥의 모습을 전혀 새롭게 그려 놓았다. 그것도 땅위의 세 종교가 지니고 있는 갈등을 사탄의 입을 통해 저승과 지옥의 모습으로 은근슬쩍 치환시켜 놓았다.        

소설 '카자르 사전'에는 위의 세 종교 가운데 어느 종교든 사탄에 해당하는 존재가 '영양가 있는 말'을 많이 한다. 어떤 의미에서 사탄이야말로 지혜의 화신처럼 보인다.

이슬람의 사탄(이블리스)이며 능숙한 류트 연주자로 소설에서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 속담 여러 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가 이르되

"죽음은 잠의 성(姓)이지만 우리는 그 성에 대해 알지 못한다."

"잠은 하루치 인생의 끝으로 죽음에 대한 연습이다. 잠과 죽음은 자매사이이지만 형제자매가 똑 같이 가까운 것은 아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했다.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가 하늘이라고 부르며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이 공간이, 어떻게 무엇으로 그리고 어째서 제한되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일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죽이는 것이지요. 우리의 죽음은 그 존재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죽음은 혀와 마찬가지로 그 존재가 우리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최후의 순간에 죽음이라는 열려진 문을 지나 새로운 땅과 또 다른 지평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꿈 사냥꾼’이라는 존재까지 등장하는 소설 '카자르 사전'에는 죽음이나 저승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이처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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