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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월주 스님-밖에서 들어온 것 버리고 이 안에서 찾으라!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3/30 [13:37]

송월주 스님-밖에서 들어온 것 버리고 이 안에서 찾으라!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3/30 [13:37]

밖에서 들어온 것 버리고 이 안에서 찾으라!


전북 정읍에서 출생한 송월주 큰스님은 1954년 출가하여 1961년 금산사 주지를 역임했다. 1980년 17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올랐으나 신군부에 의해 10․27법난을 겪은 후 1984년 28대 총무원장을 지내고 현재 지구촌공생회 이사장과 영화사 회주로 있다.

인류 세계가 왜 이리 살벌하고 불안합니까. 부처님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오신다면, 첫 마디 말씀을 무어라고 하실까요.


“멈춰라! 이 마음이 원인이다. 밖에서 들어온 것 버리고, 이 마음에서 찾으라!”


부처님께서는(나이탄자나=니련선하)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7일간 삼매에 들어 계시다가 일어나시어 자리를 옮겨 앉으시고 생각하셨습니다.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원(深遠)하고, 보기 어려우며, 난해(難解)하여 조용히 가라앉아 절묘(絶妙)하고, 사고(思考)의 영역을 벗어나 미묘하여, 현자(賢者)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집착에 매달리는 것을 즐기고, 집착에 매달리는 데 빠져, 집착에 매달리는 것을 기뻐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것’에 인(因)하여 있다는 것, 즉 연기(緣起)의 도리는 보여지기 어렵다. 내가 이 법을 설(說)할지라도, 혹시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에게는 피로가 있을 뿐이다. 나에게는 우려(憂慮)가 있을 뿐이다.”


이때, 실로 아직 들어보지 못한 훌륭한 시구(詩句)가 나타났습니다.


“곤고(困苦)하여 내가 깨달음을 얻은 일을 이제 또 어떻게 설할 수 있으랴.

탐(貪)냄과 성냄과 번뇌에 시달린 사람들이 이 진리를 깨닫기는 쉽지 않다. 이 일은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미묘하고 심원하여 보기 어려우며 미세하기 때문에 탐욕의 어둠에 뒤덮인 사람들은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전법(傳法)하시기를 망설이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 부처님의 이와 같으신 뜻에 변함이 없는 것을 본 대범천왕(大梵天王: 인간사를 보살피는 천신)이 드디어 부처님께 전법하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오염이 있는 사람이 생각한 부정(不淨)한 법이 벌써 마가타국(國)에 출현하였습니다. 원하옵나니, 이 감로(甘露)의 문을 여소서! 때 없는 이의 깨달으신 법을 듣게 하소서. 비유하면 산마루의 바위에 서서, 멀리 여러 사람을 보는 것처럼 지혜가 뛰어나시어 멀리 보시는 눈이 있으신 분이시여, 스스로 이미 근심을 떠나 계시오니, 원하옵나니, 당신께옵서는 법(法)의 높은 누각에 오르시어, 근심에 잠겨나고, 늙음에 침해되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보살펴 주시옵소서!”


대범천왕의 이와 같은 간청을 들으시고, 부처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전법(傳法)의 첫마디 말씀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감로(甘露)의 문은 열렸도다. 귀 있는 사람은 들을지어다. 먼저 그 신념(信念)을 버릴지니라!”


그로부터 3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 인간 세계의 근본 상황은 향상(向上)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살벌한 분위기가 전 지구촌에 확산되어 모든 인류를 불안(不安)케 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3천 년 전 그때 그대로 편견에서 낳아진 아집(我執)에 매달려, 그것을 이웃에까지 확산시키려 극렬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세상을 구해야 할 사명을 스스로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해 전법(傳法)을 하고, 포교(布敎)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인류를 위기에서 구출하는 길이라면, 말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전 인류를 향해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일들을 일단 멈추고 만법(萬法)의 근원인 ‘이 마음’을 찾아보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 마음’을 찾아 사무치면, 조용히 가라앉아, 허공과 같이 무한하고, 청정하여 한 물건도 형체 있는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신(神)도 없고, 교의(敎義)도 없으며, 주의(主義), 주장이나 이념, 사상이 없습니다.

허공과 같이 청정하고 무한하므로 포용하지 못할 것 또한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법을 다 받아들여 세워도 충돌하지 않으며 갈등하지 않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비워지지 않아 용납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남아 있으면, 그것은 삿(邪)된 것입니다.


그것은 ‘이 마음’의 본질(本質)이 아니고, 밖에서 침범한 것이므로 이런 것들은 그 이름에 관계없이 과감하게 털어내야 합니다. 인류의 진로는 여기에서 밝혀집니다. 멈췄던 길을 여기에서 점검하여 새롭게 전진해야 합니다. 세상은 ‘이 마음’이 주재(主宰)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높다)이라는 말씀이 바로 이것을 뜻합니다. 하늘땅의 주인(主人)인 존귀한 ‘내’가 스스로 알며, 자재(自在)롭고 영명(靈明)한 능력으로 인류의 진로를 열어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여기에 평화와 인류 공영(共營)이 있습니다. 이것이 도세(度世)의 시작입니다.


자, 그러면 허공과 같이 넓고 청정하며 자재롭고 영명한 ‘이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할 것입니까. 세상은 주인(主人)이 마음 쓰는 대로 되어집니다. 그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일체를 오직 마음이 짓는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마음’을 쓰기에 앞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어떠한 세상이 되게 할 것인가 하는 서원(誓願)을 세워야 합니다.

여기에는 선례(先例)가 있습니다. 법장(法藏) 비구는 48원을 세워 극락세계를 성취하고, 보현보살(普賢菩薩)은 10가지 광대한 원을 세워 신심(信心)과 수행의 표본을 세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불과(佛果)를 얻으신 후에도 항상 서원을 새롭게 일깨우셨으니 그 일이 <법화경>에 이렇게 말씀되어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불과(佛果)를 얻은 이래…

매양 이와 같이 생각하소서.

어떻게 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도(道)에 들어

속히 부처 몸을 이루게 할꼬.

自我得佛來…

每自作是念 

以何令衆生

得人無上道 

速成就佛身”


서원은 우리가 각자 자신의 의지로 세워야 하되 기필코 이 땅에 성취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성취를 위해 세세생생(世世生生) 이 땅에 태어나기를 거듭 서원해야 하며, 우리의 서원을 간절하고 크게 모아 성취가 앞당겨지게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서 있는 현실에 대해서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현실을 종합하는 큰살림은 나라의 경영(經營)입니다. 정(政)은 정(正)입니다.


나라를 경영하는 데는, 모든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주인(主人)이며, 그가 처(處)해 있는 곳의 주인이고, 권력(權力)의 주체임을 긍정하는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권력의 주체(主體)임을 자각하기 시작했으며, 통제적 중앙권력이 분해되고 있음을 정치권은 순리(順理)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든 개개인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사회는 차원(次元) 높은 자각(自覺)사회이며, 이 자각사회의 질서는 자율(自律)입니다. 비록 먼 앞날의 일일지라도 정치의 목표는 이 자율질서를 성취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 규제와 강압으로 통제하던 몽매한 질서는 이제 우리(대한민국) 세상에서 재현되지 않습니다. 활기 넘치는 자율(自律)이 꽃피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도록 정치는 보이지 않게 도와야 합니다. 한 걸음씩 접근해가는 것이 참된 진보(進步)인 것입니다.

불기 255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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