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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커쇼의 <히틀러> 1,2권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3/30 [13:28]

이언 커쇼의 <히틀러> 1,2권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3/30 [13:28]
 

이언 커쇼의 <히틀러> 1,2권

히틀러의 제3제국을 움직인 숨은 힘은 무엇인가

       

미술아카데미에 낙방한 뒤 7년을 무위도식하던 ‘쓸쓸한 청춘’ 아돌프 히틀러를 지옥에서 건진 것은 전쟁이다. 1차 세계대전 패전의 치욕에 떨던 독일사회 분위기에서 맥주홀의 선동가로 변신한 게 첫 행운이다. 자원했던 군대생활 4년도 그의 삶에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영국 역사학자 이언 커쇼의 문제작인 평전 <히틀러>(1,·2권, 이희재 옮김, 교양인)에 따르면, 히틀러는 군대시절을 회고할 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잊을 수 없는 시간”(제1권 153쪽)이라며 거품을 물기 일쑤였다.

♢상병 히틀러는 ‘쪼다’?=제 딴에 찬란했다지만 연락병 보직이던 주제에 뭔 영웅적 활동이 가능했을까? 의식주 해결이 우선 좋았다. 사회 풍조도 한 몫 했다. 1910년대 당시 전쟁이란 구원과 부활을 통해 민족적 결속을 다지는 숭고한 행위였으니 군대란 어설픈 몽상가 히틀러가 꿈을 키우는 공간이었다. 상병 히틀러는 의외로 성실했다. 몸도 사리지 않았다. 단 유머감각은 제로였고, 괜스레 비장했다. 집단 놀림도 그 때문이다. 동료들이 “아가씨 한 번 꼬드기러 나가?”하고 건드리면 거의 예외 없이 팩 토라지곤 했다.

“난 부끄러워서라도 죽어도 그런 짓 못해. 독일인으로 자존심도 없냐?”

20여년 뒤 ‘쪼다’ 히틀러는 정치거물로 변신했다. 특히 1935년 절대 권력을 틀어쥐었고, 이를 기점으로 독일의 개혁가를 넘어 국제무대 도박꾼으로 더욱 위험하게 바뀌었다. 문제는 통치 스타일이다. 예상 밖으로 독일은 “굉장히 현대화된 선진국인데 중앙에서 조율하는 구심점이 없었던”(1권 740쪽) 나라였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나 스페인의 프랑코도 내각을 통해 국무를 처리했다. 스탈린도 정치국을 무시한 적은 없었다. 믿기 어렵지만, 독일은 1938년 이후 국무회의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히틀러의 괴상한 통치 스타일=국가 운영과 전쟁지휘는 누가 어떻게 했다는 것일까. 최고지도자 히틀러도 바쁘지 않았다. 일상은 이랬다. 오후 2시에 겨우 모습을 드러낸 뒤 점심부터 먹는다. 이어 산책을 나간 뒤 저녁식사를 한다. 밤에는 꼭 영화 한 편씩을 봤다. 그게 전부다. 그렇다면 궁금증은 두 가지다. 그는 손 안 대고 국가를 움직이는 권력 작동의 비밀을 체득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 가늠은 상당히 맞는 말이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또 하나 궁금증은 그런 일상에서 히틀러는 공적인 활동과 달리 내면을 성찰하는, 의미 있는 사생활의 공간을 확보했던 것일까? 전혀 아니다. 저자는 “(산책·영화관람은) 속이 텅 빈 반복행위였다”고 단언한다. 인간 히틀러는 조금도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걸 확인해주는 게 히틀러 별장에서 제3제국 거물들과 가진 ‘어전(御前) 한담’이다. 사교 클럽과 갱단 밀실 분위기를 섞은 듯한 이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는 일단 금물이다. 하지만 촌놈 히틀러는 간혹 초청되는 여성 호스트 앞에서는 특유의 어색하고 뻣뻣한 태도를 벗지 못했다.

권력의 후광은 그런 촌티조차 매력으로 보이도록 했지만, 마이크를 독점하는 건 그이다. 나머지 멤버들은 웃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별장 한담에서 절대로 꺼내면 안 되는 시한폭탄 화제가 있다. ‘그놈의’ 1차 대전 스토리가 문제다. 그 얘기라면 히틀러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고, 발동이 걸리면 먼동이 터올 때까지 군대 얘기를 떠들어대는 통에 사람들은 서로 쉬쉬해야 했다.

1,2권 합쳐 2300여쪽, 무시무시한 두께의 <히틀러>가 질문을 던지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히틀러라고 하는 도깨비와, 그의 광포한 시대의 역사적 성격 말이다. 한미한 가정에서 자란 게으른 반항아, 여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정 표출조차도 서툴렀던 왕따 청년이 어떻게 최고지도자가 됐을까? 왜 백전노장 사령관까지 상병 출신에게 무조건 복종을 했을까? 재주라곤 대중 선동술 밖에 없던 그가 어떻게 성직자·외교관·법학자 모두를 사로잡고, 독일 시민들이 기꺼이 인종 학살에 동조하도록 만들었단 말일까?

저자에 따르면 히틀러의 권력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높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권력을 누린 게 아니다. 포인트는 히틀러만의 권력 작동법이다. 그건 제도형 권력이 아니라 카리스마형 권력으로 분류된다. 그건 결코 우습게 볼 게 아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지적처럼 수많은 사람이 지도자보다 더 지도자답게 생각하고, 지도자의 뜻 구현을 위해 고심하게 만드는 거대한 힘의 원천이다. 히틀러가 빈둥대도 독일은 척척 돌아갔다는 얘기다.

책의 관점에 수긍되지만, 너무 단순한 설명 모델이라서 의문이 모두 풀리는 건 아니다. 사실 책 한 권으로 한 시대의 전체 모습이 해석될 수 있던가? 그럼에도 <히틀러> 1,2권은 유럽에서 뛰어난 학문적 성취로 평가받았다. 이 책이 성공했다면 두 겹의 시선을 동원한 전략 때문이다. 독재자의 전기적 사실 규명만큼 왜 국민이 히틀러에 추종했을까를 따졌다. ‘전기+사회사’의 방식이다. 제3제국을 움직인 갑(甲)과 을(乙)의 쌍방과실을 묻는 방식이다.

저자는 그걸 ‘구조주의 역사학’이라고 말하는데, 현재라는 등 뒤에 숨어 삿대질하는 대신 “히틀러의 유산은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털어놓는 태도이다. 그게 매력이다. 어쨌거나 사람얘기만큼 근사한 읽을거리가 있을까?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상하리만치 전기·평전이 발달하지 않았다. 엄숙주의 풍토 탓이다. 전기·평전은 위대한 인물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문제다. ‘문제적 인물’은 일단 평전의 대상이 아닐까? 어쨌거나 가차 없는 포폄(褒貶)이 벌어지는 무대인 평전이야말로 인문서의 꽃이다. <히틀러>는 거기에 근접했다. 아주 가깝게. 그래서 문제작이다.

생각해볼 게 더 있다. 이언 커쇼의 책 등장 이전에 히틀러 평전으로 평가 받아온 것은 독일 학자 요하임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 1,2권(1998년 푸른숲)이다. 독일 현지에서는 73년 첫 선 보였는데, 당시 역사학의 성과를 집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학자 이언 커쇼가 은근히 두려워했던 라이벌이 그 책이라서 “내가 또 다른 내용의 책을 펴낼 수 있을까?”를 자문자답했을 정도다.

 과연 그 책의 기여는 컸다. 당시까지 통념은 히틀러란 위인은 “악마의 내면을 가진 인간”이었다. 때문에 역사가들에게도 히틀러를 보는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었다. <히틀러 평전>의 번역자 안인희의 말대로라면 “히틀러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 예외적 인간”이라는 식이었다. 요하힘 페스트는 그걸 깼다. 히틀러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기는커녕 시대의 요청을 대리했던 인물로 봤고, 조잡했지만 분명 정치이념을 가진 인물로 규정했다. 그럼 이언 커쇼의 기여는 무엇일까? 왜 현존 최고의 평전으로 평가 받을까? 우선 서술이 부드럽다. 요하힘 페스트가 딱딱한 학자풍이라면, 이언 커쇼는 저널리스트풍이다. 내용상의 기여도 무시 못한다. 디테일이 살아있어 히틀러 숨소리가 좀 더 분명하게 들린다. 그의 병적인 열망과 환상의 성격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기여는 따로 있다. 히틀러를 ‘그늘진 위대성’으로 평가하는, 엉거주춤한 절충주의의 흔적이 없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비정상적이었던 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독일인에 초점을 맞춘 점이다. 그게 현대 역사학의 중요한 트렌드다. 물론 저자가 본래는 서양 중세 사회사를 전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기억해둘만 한 게 다음이다. 역사에서 선악 구분이란 게 얼마나 우스운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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