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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도 변해야겠지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2/25 [16:57]

저승도 변해야겠지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2/25 [16:57]

저승도 변해야겠지

 

“지옥? 그러건 존재하지 않소. 천국 아니면 지상이 있을 뿐이오. 잘못을 저지른 자들은 지상에 돌아가 환생토록 되어 있소.”

어쩌면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한 프랑스 인기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천사들의 제국’에서 하늘의 심판관 세 명의 대천사, 가브리엘, 미카엘, 라파엘이 ‘나는 지옥으로 가느냐?’는 주인공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만약 지상에 사는 사람들이 '지옥이 없음'을 안다면 사악한 짓을 거리낌 없이 행할 것이고, 인생이 괴로울 땐 누구나 죽어버리려 할 것이므로 '지옥 없음'은 누설되어서는 안 될 하늘의 비밀, 즉 일종의 천기(天機)인 셈이다.

주인공 팽송은 소설 '천사들의 제국'의 전편에 속하는 타나토노트(영계탐사자)'에서 이미 그 천기누설의 죄를 범한바 있다.

결과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욕상실, 소유욕 상실 등 세상이 이상한 세계가 되고 만다. 어찌되었거나 '천사들의 제국'에는 제법 동서양 저승을 비빔밥으로 섞어 저승의 세계화(?)를 시도한 흔적이 보인다. 기독교 천사들이 '환생'이란 말을 쓰다니…….

"우리를 맞으러 오는 인물이 있다. 천국의 열쇠관리자, 천국의 수위인 그에게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이집트 저승의 신 아누비스, 인도 사자(死者)의 신 야마, 그리스 스틱스 강의 뱃사공 카론, 로마인들의 영혼의 안내자 메르쿠리우스, 기독교의 성 베드로 등이 바로 그 이름들이다."

여기서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동서양 저승의 비빔밥 맛을 어지간히 내고 있다. 또 살펴보자.

"나는 세 심판관이 누군지 알고 있다. 이들 역시 신화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테미스, 타나토스이며 이집트 신화의 마아트, 오시리스, 토트, 일본 신화에서 이자나미, 이자나기 오모이가네이다. 또 기독교인들은 이들을 대천사 가브리엘, 미카엘, 라파엘이라 부른다."

역시 완벽하지는 않으나 저승의 동서양 이미지가 통합되고 있음을 본다.

내용면에서도 그렇다.

주인공 팽송은 기독교 문화권에 살았던 탓인지 기독교 대천사들에게 심판 받는다. 그러나 가브리엘 대천사가 '당신 영혼의 무게를 달겠소.'라고 말한 부분은 죽은 자의 심장무게를 달아보는 이집트 식을 빌려온 것 같다.

물론 기독교권 성화에서 미가엘 천사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해 가기 전 저울에 그의 영혼의 무게를 달아보는 등의 그림이 드물기는 하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그 그림 역시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티벳 사자의 서'를 쓴 에반츠 웬츠도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연구한 한 논문을 인용하며 '기독교와 저승의 저울'이 이집트나 동방에서 흘러들어 온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한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의 그림은 미가엘 천사가 저울로 영혼의 무게를 달아보는 동안 사탄이 저울 한쪽을 아래로 잡아당기며 저울이 악(惡)쪽으로 기울어지도록 애쓰는 장면을 보여준다. 사탄은 심판의 자리에서도 그 심판의 공정함을 방해하는 존재인 것일까?

천사들이 밝힌 '죄 지은 자는 지상으로 돌아가 환생해야한다.'는 것 역시 전혀 기독교적이 아니며 힌두교적이고 불교적이다.

환생의 벌을 받은 주인공에게 느닷없이 수호천사가 나타나 지엄한 대천사들을 몰아세우며 주인공을 변호, 천국에 남게 하는 것 역시 '저승의 역사적 발전상'을 말해주는 것일까? 이른바 저승에서 '계급장 떼고 따진 것'이니까.

하긴 이승에서도 이젠 고문 같은 형벌은 많이 없어져 가고 민주화된 세계 각국에서 '사형제도'가 속속 폐지되고 있는 판에 저승에서 불변의 권위만 있고 영혼들을 괴롭히는 지옥고가 있다면 글쎄…….

아무래도 '저승, 너도 변해야 산다.'가 되겠지.

기왕 '천사들의 제국'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이 책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소설 '천사들의 제국'에는 저승이야기 말고도 천사와 인간이 어떻게 교감 하는가의 방법도 나온다. 천사가 인간의 삶에 개입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수단은 직감과 꿈과 징표와 영매, 그리고 고양이라고 한다. 이 부분 역시 저승과의 교감법의 세계적인 예가 다 포함되어 있다.

천사들은 첫 번째, 아주 완곡한 방법으로 인간의 직감에 개입, 나쁜 길로 접어드는 것을 막아준다.

두 번째, 꿈은 인간이 꿈꾸고 있을 때 천사의 지시를 상징적인 형태로 넌지시 끼워 넣는 우회적인 방법을 쓴다고 한다. 위급할 경우에는 며칠이고 다른 형태의 상징을 써서 알아채게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징표는 첫 번째의 직감과 비슷한 방법을 써야 한다. 짖어대는 개라든가 녹슨 문이라든가 하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이제는 그 징표도 바꾸어 가야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네 번째, 영매다. 영매는 절제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영매가 천사들의 말을 곡해할 수도 있고 때로는 능력을 이용, 다른 사람들에게 나쁠 수도 있는 영향력을 가지려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고양이다. 영매 끼 있는 고양이가 인간 영매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함부로 영향력을 써 먹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단점은 말을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경고를 할 수 없다는 점이라 한다.

세계 여러 곳에서 고양이를 인간의 영혼과 교감할 수 있는 동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은 사람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양이의 뛰어나고 독특한 감각 때문이다. 고양이는 청각은 물론 시각의 구조도 인간과 다르다.

어두운 곳에서도 빛나는 구슬처럼 드러나는 고양이 눈은 캄캄한 밤중에 뭐든 볼 수 있다. 영혼세계에서는 고양이보다 개가 더 많이 등장하지만 이런 뛰어난 감각 덕분에 사람들은 고양이를 영매로 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러는 개도 영매 적 실적을 보여주기도 한다.

개는 색맹이다. 그래서 눈이 왔을 때, 자기 눈에 너무나 잘 드러나는 흰색에 놀라고 발아래 푹신거리는 감각에 놀라 뛰어다니게 된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흰 눈이 좋아서 뛰어 다닌다고 믿는다.

고양이 역시 색맹이다. 그래서 색채 가운데 흑백만 분별할 수 있다. 눈에 대한 반응도 개와 같은 것이다. 그럼 사람의 영혼은 천연색이 아니고 흑백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그래서 흑백만 분별할 줄 아는 개나 고양이에게 잘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동물 가운데 초음파에 예민한 존재라면 영혼의 그림자 하나라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어찌되었거나 소설 '천사들의 제국'에서 천사들은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교감법으로 위기를 알리기도 하고 바른길로 접어들도록 유도하기도 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엉뚱하게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도 만드는 해프닝도 벌어진다.

현대작가의 소설을 분석해 본 것이지만 여기서 종교의 미래를 점쳐 볼 수도 있으며 저승 역시 앞으로 통합적 변모를 보여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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