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忍苦의 세월이 梅花 香을 빚듯이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2/16 [13:16]

忍苦의 세월이 梅花 香을 빚듯이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2/16 [13:16]

忍苦의 세월이 梅花 香을 빚듯이


백호(白虎)로 상징되는 경인(庚寅)년의 시작 기준점은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인 2월 14일이다. 봄의 기준점인 입춘(立春)을 계기로 이미 봄이 시작되었건만 세상은 여전히 엄동설한(嚴冬雪寒)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의 매서운 한파에 의해 기(氣)를 펴지 못하고 있다. 겨울이 겨울다워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겠으나 추위로 인해 더욱 고통을 받게 될 이웃들을 생각하면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떤 선각자는 매 겨울마다 닥치는 일상적 추위에서, 또 그 추위를 딛고 화사하고 향기로운 마음으로 피어나 세상에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梅花)의 고결한 자태에서 ‘하나의 의미’를 발견해 시로 읊은 바 있다.


한번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야

어찌 심혼(心魂)을 뒤흔드는

매화 향내를 맡을 수 있으랴


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樸鼻香


추위가 그 선각자의 뼈에만 사무치는 것도 아니고, 매화향이 그이에게만 코끝을 통해 마음 깊숙이 전해지는 것만도 아닐 것이다. 온 세상 누구에게나 겨울 한파는 함께 닥치는 것이고 매화 앞에 서는 사람의 코끝에는 예외 없이 매화향이 진동하게 마련이다.

다만 자연의 언어에 귀 기울이며 삶을 치열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우주 삼라만상과 대자연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고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뿐인 것이다. 또 그러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의미를 직접 발견하여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시로 읊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시어와의 만남에 의해 기쁨의 감정이 마음 깊은 곳으로 전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 겨울 내내 따스한 집에서 기거하며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사는 사람에게는 추위가 사무칠 리도 없고, 매년 보는 매화와 그 향내가 감동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중국의 철인(哲人) 노자(老子)께서 강조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소박(素朴)한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어떻게 느낄 수 있겠는가.

추위는 추워서 싫고 더위는 더워서 힘들다며 자연스러운 자연계의 현상을 탓하며 피하려 하는 자세, 해야 할 도리와 대의명분(大義名分)보다는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과 조그만 불편을 생각해서 편한 것과 사익(私益) 위주로 사는 자세야말로 참으로 값진 것을 스스로 외면하고 포기하는 것이라 하겠다.

암,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매사 편리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조금만 불편해도 행하지 않거나 피하려 드는 경향이 있음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금강산 구경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산길을 오르는 수고조차 마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니냐는 비유를 쓰면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획기적 변화를 강조하곤 한다.

물론 그런 생각만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몇 마디의 비유나 훈계조의 말이 효과가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제 생명의 소중함에 눈떠서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생명건강을 위한 순리(順理)와 자연(自然)의 의방(醫方)에 따라 질병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들려주는 고언(苦言)일 따름이다.


병마와 당당하게 싸울 수 있어야

 

생명의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여 이상(異常)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편의상 ‘질병’이라 할 때 그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고 정상(正常) 상태로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와 힘은 모든 생명이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바깥으로만 찾아 헤매게 된다.

의료계에서도 그렇게 인도하고, 인류는 그 ‘보편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일반 의학상식’과 의료진의 인도에 따라 회광반조(廻光反照)의 깊은 생각이나 통찰 없이 무심코 따라 다니며 치병의 방도를 외적 치료에 주로 의존하게 된다. 즉 체내에 존재하는 병든 세포의 집단을 공격 파괴 제거하기 위해 무서운 독성을 함유한 살상용 화학 무기를 대거 동원하여 무차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적지 않은 후유증을 초래하고 원상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부르게 된다는 얘기다.

생명이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처방과 약물의 위대한 힘을 발견하려는 노력 없이 어떻게 질병의 근본 치료와 생명의 온전한 건강상태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시작에 있어서 이미 잘못된 길로 들어섰는데 목표 지점에 제대로 도달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겠는가. 다만 인체는 원래 신비스런 복원(復元)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약간의 잘못된 치료라 할지라도 원상회복을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잘못된 치료방식의 허망성(虛妄性)을 깨닫기 어려운 점이 있기는 하다.

물론 외적 치료방식 전체가 불필요하다거나 잘못됐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필요한 부분도 공감하고 효과적 측면도 부인하기 어려운 일면이 있지만, 공격 파괴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전쟁방식의 치료로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어깃장 놓고 꾀피우는 당나귀에게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고, 후학 교육에도 회초리와 어루만짐, 꾸중과 칭찬이 다 같이 중요하듯이 질병치료를 위해서도 기력(氣力)을 돋워줌과 병근(病根)을 다스림이 조화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인체의 원기를 돋우고 병마의 기승을 제압하기 위해 죽염이나 유황오리 엑기스, 기타 수반되는 약재를 이용하여 질병과 싸우다 보면 불편과 고통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왕 병에 걸려 고생하는데 독한 마음을 먹고 병과의 한판 싸움을 당당하게 치러 이겨내려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오지 않겠는가.


한번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야

어찌 심혼을 뒤흔드는

매화 향내를 맡을 수 있으랴.


오랜 투병생활에 지쳐 있을 때 또는 긴 시간의 생활고로 심신이 피폐할 때, 또는 그 밖의 여러 가지 인생고에 시달릴 때 어느 선각자의 이 시구(詩句)는 우리에게 무한한 용기를 북돋아주고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깊은 깨달음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희망의 복음(福音)으로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전주대학교 대체의학대학 객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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