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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실천을 함께 합시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1/29 [10:47]

기도와 실천을 함께 합시다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1/29 [10:47]
 

화평서신

기도와 실천을 함께 합시다


▶올해는 100년만의 대설(大雪)로 시작했습니다. 희망찬 새해를 기약하는 상서로운 서설(瑞雪)이었습니다. 한국화가 배연(裵淵)씨가 ‘눈처럼 깨끗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다복하시길 기원한다’는 뜻을 담아 본지 독자들께 보낸 ‘창덕궁의 대설’을 감상하노라면 분명 ‘서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서설이 한편으론 부정적인 용어인 폭설(暴雪)로 둔갑, 교통대란이 벌어져 저희 신문사 직원들의 출퇴근에도 지장을 주었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지구온난화 등 지구의 재앙이 거론되기까지 했습니다. 기록적인 폭설, 강추위 등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이 뉴스거리가 됐습니다.

▶그리고 곧 아이티의 대재앙(大災殃)으로 이어졌습니다. 15만명의 인명을 앗아간 대지진이 발생, 지난 한달 내내 지구촌을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처참한 광경은 ‘노아의 홍수’를 연상케 했습니다. 아이티 현장에선 종말론적 구호와 함께 "신이 우리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 신은 없다"는 절규가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만 중 다행인 것은 아비규환의 현장이 속속 전해지며 ‘나눔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창조주 신의 뜻을 보여 주는 현장이기도 한 것입니다. 전 세계의 종교계가 국경과 인종, 종교를 뛰어 넘어 구호와 위로의 손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종교계도 종파를 불문하고 일제히 위로 메시지와 함께 성금모금에 나섰습니다. 그래서 본지 이번호 특집으로 ‘대재앙은 신(神)의 목소리인가’라는 제목으로 대재앙에서의 종교계의 역할과 해석을 다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황당한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미국의 팻 로버트슨 목사가 "아이티 재난은 악마와의 결탁 때문"이라는 망발을 쏟아낸 것입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어 넣는 발언이었습니다. 인도양 쓰나미 재앙 때 국내 유명목사가 "지진 해일은 예수 믿지 않은 무슬림에 대한 심판이다"라는 망언을 해 비난을 받은 때가 떠올랐습니다. 수백만명이 엄청난 재난으로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아무리 ‘징벌론적 섭리사관’에 충실한 성직자일지라도 ‘할 말, 안할 말’을 가려야 될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재앙’에 대한 각 종교의 해석은 다릅니다. 불교에서는 ‘재앙도 삶의 한 축을 이루는 요소’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원불교에서는 ‘진통 끝에 새 질서 만든다’며 순환적 의미로 봅니다. 천주교 역시 ‘계시와 무관한 세상의 자율적 변화’라고 해석합니다. 개신교는 ‘인류문명에 오만 말라’는 메시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자연도 생로병사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창조주 신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식을 벗어난 메시지로 해석하는 일부 종교인의 자세는 위험하기 그지없습니다. 모든 종교가 힘을 합쳐도 엄청난 참변을 복구, 위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타 종교인의 불행을 계기로 자신의 종교를 미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종교와 인류의 큰 재앙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10호에 실린 김동환 천도교령의 칼럼 ‘나만을 위한 기도에서 동귀일체(同歸一體)의 기도로’는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김 교령은 이 칼럼에서 “모두 자기 종교 안에서 자기만 잘 살기를 기도한다면, 또 기도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결국 빼앗고 빼앗기는 어지러운 사회가 될 것이다”라며 ‘나만의 신앙’을 벗어나 ‘큰 기도’를 강조했습니다. 그 뜻이 통했는지 저희 신문 블로그에서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젊은 화백이 그린 이번 호 만평은 ‘기도와 실천이 함께 합니다’라는 제하에 사람들이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그림입니다. 종교를 초월해 함께 기도하며 창조주 신의 몸을 대신하는 실천이 이루어질 때 아이티의 불행은 치유되고 종교간 갈등도 해소되리란 의미로 해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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