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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인생막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1/29 [10:23]

삶의 향기-인생막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1/29 [10:23]

인생막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내 바람과는 정반대로 갔다. 지지리도 못난 나는 누군가가 내 앞길을 가로막고 죽음의 길로 내몰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러니까 IMF사태가 일어나기 전 직장에서 퇴사한 후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되지도 않은 가게를 인수했다가 IMF사태가 발생하자 권리금도 못 받고 문을 닫고 말았다.

날씨는 추워지고 일자리는 찾을 수 없었다. 가난은 뼈를 깎았고, 살을 저몄다. 여객선 침몰 희생자들이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면서 ‘내가 저 배를 타고 있었다면…’하는 생각도 했다. 내 목숨과 돈과 바꾸기를 소원했다. 신장밀매도 시도해 봤다. 사방이 가로막혀 숨도 쉴 수 없게 된 나는 결국 초겨울 집을 나섰다가 인생막장이라고 할 수 있는 노숙자 쉼터에 들어갔다. 신음하며 사는 사람들과 생활하다가 서울 000구청에서 운영하는 쓰레기재활용센터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번 돈은 모두 집에 보냈다. 아침과 저녁은 쉼터에서 공짜로 먹고, 점심은 종교단체에 가서 얻어먹었다.

000구 관할 하천변에 기다랗게 자리한 쓰레기재활용센터는 작업환경이 열악했다. 뙤약볕 아래 악취를 맡으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작업해야 했지만, 그 무엇보다 구청 직원들의 모멸이 자존심을 건드렸다.

우리들은 ‘국가의 녹’을 받는 만큼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구청 직원들은 배려는커녕 천시하고 무시하며 닦달했다. 밑바닥인간도 감정을 지닌 인간이다. 환경과 계장의 욕지거리가 도화선이 되어 그동안 쌓이고 쌓인 울분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쉼터 거주자와 000구내에 사는 영세민 근로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과격한 사람들은 구청으로 쳐들어가자고 선동했다. 다분히 즉흥적이었고, 감정적이었다. 나도 동조는 했지만 대책을 세우고 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무작정 쳐들어갔다가는 쓰레기인간들로 무시당하고,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내 설득이 주효했는지, 나에게 우리의 요구사항을 작성하도록 감싸주었다. 내가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5개의 작업장 환경개선 사항과 5가지 환경행정의 문제점을 작성하여 모두의 앞에서 낭독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우리가 유인물을 만들어 구청을 향해 몰려나가자, 현장직원들은 그때서야 상황판단이 되는지 뻣뻣했던 고개를 숙이고 사정사정했다. 헐레벌떡 달려온 환경과 계장도 비굴한 자세를 보이며 애걸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들을 무시하고 구청으로 향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구청에서는 난리가 났다. 우리는 떼거리로 청사에 들어가 “구청장 나오라!”고 소리소리 질렀다. 이른바 시위라는 것을 한 것이다. 비천한 인생들은 울분을 토해냈다. 떼거리가 되니 무서운 게 없었다.

마침내 끌끌한 구청 대표 4명과 나를 포함한 작업자 대표 4명이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나는 준비한 유인물을 나눠주고 낭독한 후 대표자에게 서명하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그는 ‘당장 시정 하겠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 끝내 서명을 거부했다.

협상은 결렬되었다. 오합지졸인 우리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밑바닥인생의 한계였다. 결국 우리들은 ‘내일 두고 보자’는 말만 하고는 흩어지고 말았다. 씁쓸했다.

다음날 일터로 갔다. 그런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구청 측에서 서명은 하지 않았지만 약속은 지킨 것이다. 여기저기에 차양막이 쳐졌고,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현장책임자인 환경과 계장은 문책당해 자리를 옮겼다 하고, 현장직원들은 무슨 지시를 받았는지 굽실거렸다.

바야흐로 우리네 쓰레기인생들의 태평성대가 온 것이다. 구청까지 따라갔던 자들은 자기들의 무용담을 자랑하고, 여기저기서 승리를 자축하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주도권을 잡은 우리들은 작업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도 마음대로 하였고, 현장직원들은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의 노동운동(?)으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인생막장에서 하류인생들의 애환을 몸으로 느끼며, 노사 간 투쟁의 원인과 그 해결책이 무엇인가를 경험했다. (이승주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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