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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 간증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1/29 [10:05]

이어령 교수 간증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1/29 [10:05]

나는 왜 예수를 믿어야 했나


기독교에 대해 독설을 서슴지 않던 한국 최고의 지성 이어령 박사(문학평론가, 전 문화부장관)가 2007년 7월 23일 세례를 받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결국 내가 신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그의 고백은 오만한 우리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8년 12월 14일 명성교회에서 행한 그의 간증을 요약 정리하여 연재한다. <편집자주>


저는 2년 전 어느 큰 교회에서 다른 분은 간증하고, 저는 “나는 왜 예수를 안 믿는가?” 라는 주제로 거꾸로 간증하는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2년 후인 오늘 “나는 왜 예수를 믿어야 했나” 라는 간증을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했지요.

저는 세례 받은 지 1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둘러대고, 머리 굴리는 그런 거짓말을 합니다. 그럴 때는 표정이나 목소리가 달라집니다. 자신이 거짓말하는 것을 자신이 잘 압니다. 하나님이 아시기 전에 이미 자신이 알고 있죠. 이게 내 마음 가운데 있는 영성이고 심성이고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내 밖에 있지 않습니다. 믿으면 내 안에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겁니다. 이것을 요즘 전 뼈저리게 느낍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예수님을 안 믿을 사람이었다면 정작 그렇게 기독교에 대해서 욕하고 다니지 않았을 겁니다. 무관심했더라면 전 이 자리에 서지 못했겠지요. 그게 모두 관심이었고 하나님은 저를 그렇게 쓰셨던 겁니다.

제가 젊었을 때 섬뜩할 정도로 기독교에 대해 독설을 서슴지 않았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하나님이 저에게 그렇게 시킨 거예요. 왜냐하면 이렇게 지독하게 말하던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걸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죠.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면서 골똘히 생각할 겁니다. 지성을 자랑하던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은 미리부터 준비하신 거라 생각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탄압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주님을 만나지 못하셨겠지요. 만나는 방식은 이렇게 다양합니다. 마치 사랑하는 법처럼 말입니다.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사람도 있고, 티격태격하다가 만나는 사람도 있듯이, 저 역시 아주 특이하게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세례를 받을 때 머리에 물을 막 부어주더군요. 그때 말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왜 울었는지 몰랐습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사람이 강한 체하지만, 정말 얼마나 고독하게 삽니까. 한참 싸울 때 누군가 옆에서 진정 위로해주면 눈물 나지요. 내 인생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역성드셨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동안 강한 척하고 요란하게 글 쓰고 잘난 체했던 내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님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눈물이 무엇인가. 바로 오늘 얘기하려는 주제입니다.

지성은 울지 않습니다. 분석하고 심판하고 의를 따지기 때문에 지성은 차고 명증하고 투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성의 눈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죠. 눈이 흐려지면 제대로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슬프고 고통스러워도 지성의 눈은 아주 맑고 명료한 호수처럼 되어야 합니다. 결국 제가 흘린 눈물은 지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감성, 감정 그리고 사랑이죠. 이것은 지성의 무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 선과 악을 판별하는 의롭고 지적인 하나님만이 아닙니다. 만약 지적인 하나님이었다면 저는 끝까지 하나님께 대적했을 것입니다. 사랑 앞에서는 지성이고 뭐고 소용이 없어집니다. 눈물을 흘렸던 그 느낌을 증폭시켰더니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제 딸은 미국에서 잘 나가던 검사였습니다. 난 이 애를 사랑했지만, 관념적으로만 사랑했지 정말 가슴속 깊은 사랑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암에 걸리고, 가정에 우환이 들고, 실명위기가 왔습니다.


“기독교에 대해 독설을 서슴지 않던 내가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심을 뼈저리게 느낀다”


얘가 똑똑하고 잘 나갔을 때는 걱정도 안 했는데 이런 상황에 이르니 측은하게 느껴지더군요. 냉정한 저도 눈물이 나는 겁니다. 딸이 앞으로 내 얼굴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이거 미치는 거예요. 내 지식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눈이 멀어가는 딸아이를 보니 눈물이 막 쏟아지죠. 딸애가 소원 하나가 있다고 하더군요. 아버지가 자기를 따라서 교회에 나가주기를 바랐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그게 꿈이라는 겁니다. “아빠. 난 괜찮아. 하나님이 많은 걸 보여주셨어. 난 각오가 되어 있어. 걱정 마.” 

마치 자기 자식에 대한 아픔처럼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하니까 못 견디겠다는 거예요. 자기는 정말 괜찮은데…. 이게 진정 우리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래. 내가 지금 뭘 못 들어주겠니. 교회에 나갈게.” 그때 전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던 거죠. 이처럼 자식이 원하는데… 그래서 평생 처음 진심으로 교회에 나갔습니다.

아주 조그만 교회였지만, 행복해 보이더군요. 서로 손을 붙잡고 찬양하는데 저는 창피해서 못하는 거죠. 지성인이라는 게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하지만, 딸애가 옆에서 원하니 저도 같이 좇아서 했습니다. 목사님이 소원 하나를 말하라고 했습니다. 여럿이서 빌면 성령이 내려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 꿇고 처음으로 주님께 소원을 빌었습니다.

‘하나님. 저하고 계약 하나 하십시다. 만일 우리 딸이 정말 세상을 볼 수만 있다면 그때부터 제가 가진 모든 능력 즉, 글 쓰는 것과 입담을 하나님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렇게 절실하게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얼마 안 되어 딸아이가 귀국했고, 서울대학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진단 결과는 놀랍게도 완전한데 왜 그러냐는 거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아이쿠, 이제 난 끝났다.’ 이거 하나님하고 맺은 약속 아닙니까. 전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교인으로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걱정이 되더군요. 그래서 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야. 이건 기적이 아니야. 기적이라는 건 영생을 얻는 거야. 얘가 눈이 나은 거. 설령 기적이라 치자. 그렇다고 얘가 영원이 사냐. 잠시 조금 봐 주신 것뿐이지.’

이런 사정을 듣고 온 어느 목사님이 “이제 믿으시는 거죠?” 라고 물었지만 저는 “아직 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으니 못 믿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눈만 뜨기만 하면…’이라고 말씀드렸고 이것이 이루어졌으니 그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자꾸만 거부를 하는 겁니다. 근데 결정적인 순간은 그 다음 날에 찾아왔습니다.

딸애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새벽기도 하러 가면서 교회 다녀오겠다고 인사하는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이는 거예요. 바로 그때 내가 ‘나 세례 받을 게’ 이 한마디만 해주면 딸아이한테는 일평생 가장 행복의 아침이 되는 겁니다. ‘내가 이걸 못 해주겠느냐, 네가 이렇게 살았는데…’ 그래서 “너 목사님 만나면 나 세례 받는다고 그래라.” 이 말이 제 입에서 저절로 나와 버렸습니다.

딸애는 그날 교회에서 자신의 경험을 간증했고, 목사님은 내가 세례받기로 했다고 광고를 했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일간지 기자가 다음날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기사를 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꼼짝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교묘하게 사람을 쓰시는구나. 너무 하시다.’ 하면서 목사님께 준비가 안 되었다고, 세례 받을 때 요란 떨고 싶지 않다고 간청을 했습니다. 어쨌든 이지경이 된 것이지요.

지성은 눈물에 무력합니다. 영성이 뭔지 몰라도 인간은 눈물을 흘리는 순간 죄를 씻고 가슴을 씻는 것이죠. 사랑은 눈물입니다. 인간이 완전하다면 사랑도 기쁨과 행복으로만 끝나겠지만,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고통의 시작인 겁니다. 아픔의 시작이죠.

우리가 멀쩡한 사지를 가졌어도 옆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가슴 아파합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이게 어떻게 지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아직도 믿음이 공고하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끝없이 회의를 하고 밤잠을 설치는 제 자신이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한 제자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배신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내가 설령 이상한 생각이 들고 시험에 들어서 마귀의 장난에 빠진다 할지라도 이내 마음을 잡고 믿으시면 저 같은 사람처럼 조금씩 계단을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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