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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증폭시키는 종교ㆍ사회의 ‘眞正性’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1/13 [14:08]

갈등 증폭시키는 종교ㆍ사회의 ‘眞正性’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1/13 [14:08]
 

和平書信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각 종교ㆍ사회의 ‘眞正性’


▶ 지난 한햇동안 줄곧 우리를 찜찜하게 했던 사회적 정치적 난제인 용산문제가 사건 355일만인 지난 9일 사망자 5명에 대한 장례식을 치룸으로써 마침내 봉합됐습니다. 경인년 새해의 밝은 모습을 예견해 주는 듯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극한투쟁을 벌이던 전국철거민연합회를 비롯한 야당 및 일부 시민단체, 법과 원칙을 고수하던 정부당국ㆍ보수단체간의 입장이 양극으로 치달아 도저히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그 해결의 중심에 종교계가 있었습니다. 극단(極端)의 주장을 중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두 입장 모두 진정성(眞情性)을 갖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양심과 진실, 그리고 확신을 내건 주관적 ‘진정성’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에게 패악을 저지르는 권력을 없애자’, ‘떼법이 법과 원칙을 누르는 비정상적 전례가 있어선 안된다’- 객관화시킬 수 없는 두 진정성이 맞부닥치면서 해결기미는 더욱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타협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종교계는 이번 사건해결에서 진정성 충돌의 완충역할을 했습니다. ‘떼법 근절’, ‘오만한 권력의 종지부’란 극단적 대치에 서로 한발 물러설 수 있는 명분과 입지를 준 것입니다. 양측 모두에 비판과 오해를 받았지만 중간적 입장에서 방패막이 역할을 한 셈입니다. ‘힘든 짐’을 짊어지는 종교의 참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쌍방 모두에게서 스스로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동시에 ‘타결의 주인공’이란 찬사를 듣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진정성’이라면 용산사건 당사자간 입장보다 더 강한 것이 각 종교인의 신앙일 것입니다. 각자 믿는 종교에 대한 ‘진성성’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종교가 아닙니다. 자신이 믿는 신앙에 대한 진정성이 깊어야만 진정한 신앙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용산사건 해결보다 더 어려운 것이 종교화합이랄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진정한 종교인은 타종교의 진성성을 납득할 수 없으며 공감해서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갈등의 해법은 용산사건의 해법보다 더욱 힘듭니다. 용산사건은 종교가 중재에 나설 수 있지만 종교갈등은 ‘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종교가 나설 수 없습니다. ‘창조주 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이번호 특집으로 ‘수난받는 거룩한 신의 이름’을 다뤘는데 이 역시 해결이 불가능한 종교간 갈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통명사랄 수 있는 ‘하나님’ 이름을 놓고 서로 다툼을 벌이고 있는 최근의 종교계 상황을 특집기사에 담았습니다.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이 함부로 표기되고 불려지는 것은 각 종교의 진정성에서 볼 때 용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엘, 엘로힘, 야훼, 여호와, 창조주, 천주, 하느님, 하나님, 한얼님, 옥황상제, 천제, 상제… 각 종교와 나라, 시대마다 신의 이름이 다양하게 불리는데 각 종교의 신의 명칭과 유래 등을 알아보는 특집을 꾸민 것은 ‘창조주 신은 육체도 이름도 초월한 존재다’라는 본지의 이념을 전달하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용산사건 해결에서처럼 이편 저편의 비판을 받으면서 종교간 갈등의 중재를 나선다는 사명감때문이라면 조금 ‘오버’된 자세일까요.

▶ 미디어 속 종교 ‘이슈와 논란’ 편에서는 최근 한 대형교회의 2.100억원 신축 성전에 대한 문제를 다뤘습니다. 이 역시 ‘메가 처치 비판 ‘, ‘미래 사역의 중요성 옹호’란 각자의 양보할 수 없는 진성성이 담겨 있기에 그 갈등은 더욱 해결할 길이 막막합니다. 그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창조주 신’의 뜻에 다른 ‘솔로몬의 지혜’를 간구할 따름입니다. 아울러 용사사건 해결처럼 우리나라의 핵심 현안인 4대강, 세종시문제도 원만하게 타결되어 올 한해 국민 모두가 마음 편한 생활을 할 수 있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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