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주인의식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09/09/27 [13:52]

주인의식

이광열 기자 | 입력 : 2009/09/27 [13:52]
 

주인의식

                             

우리는 주인의식(主人意識)이란 말을 자주 쓴다. 무슨 뜻인가. 두 말할 것 없이 『내가 주인이다.』하는 바로 그『생각』을 말한다. 사람은 「너」와 「나」가 어울려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래서 저절로 공동체(共同體)의 구성원이 된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가정․사회․국가․민족의 일원(一員)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어느 누구도 거역하지 못하는 타고난(生得) 의무이고 권리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타고난 의무인 동시에 권리라면, 그 의무와 권리를 누리기 위한 또 다른 「의무」와 「권리」가 후천적으로 부과된다. 그것을 요약해 「주인의식」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생득적(生得的)인 끈끈한 끈(紐帶)으로 맺어진 공동체 즉 가정․사회․국가․민족에 대해 모름지기 주인의식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의무이고 권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구(金九) 선생은 그의 자서전인 백범일지(白凡逸志) 「저자의 말」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나는 우리 젊은 남자와 여자들 속에서 참으로 크고 훌륭한 애국자와 엄청나게 빛나는 일을 하는 큰 인물이 쏟아져 나오기를 믿거니와 그와 동시에 그보다도 더 간절히 바라는 것은 저마다 이 나라를 제 나라로 알고 평생에 이 나라를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게 되는 것이니 나는 이러한 뜻을 가진 동포에게 이 「범인의 자서전」을 보내는 것이다.』

「이 나라를 제 나라로 아는 것」이 바로 주인의식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주인의식이란 다름 아닌 정체성(正體性)의 발로(發露)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는 한결같이 『참된 본디의 형체』『변하지 아니하는 본래의 모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어로는 identity라 하고 national identity라고 하면 민족정체성 또는 민족주체성을 뜻한다.

「이 나라를 제 나라로 아는 것」은 「이 나라」에 대해 「나」가 정체성, 바꿔 말하면 동일성(同一性)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민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생각해 보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나」자신의 모습을 본다. 끈끈한 피(血統)로 정체성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조국에 대해서도 「나」의 모습을 본다. 정체성의 확인이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나라」(祖國) 라고 하지 않는가. 다른 나라(外國) 이민족(異民族) 사이에서 우리 겨레(同族)를 만나게 되면 그 사람과는 생판 초면일지라도 왈칵 친근감을 느낀다. 동포(同胞)라는 말 자체가 삼(胎褓)을 같이 했다는 말이다. 동기(同氣)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같은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 어머니의 기운을 타고 태어났다는 뜻이다. 그 기운이 겨레의 차원으로 미치면 민족정기(民族正氣)가 된다.

민족정기! 우리의 반만년 역사는 민족정기를 원동력(原動力)으로 해서 표출된 주인의식의 발자취이고 전개과정이었다.

그러면 반만년 기나 긴 우리의 역사 속에서 주인의식이 어떤 모습으로 표출되었는가.

첫째. 겨레사랑․나라걱정 곧 애족 우국(愛族憂國)의 실천으로 표출이 되었다. 이 땅에 나라를 처음 열었을 때(檀君建國) 환인(桓因)께서 아드님 환웅(桓雄)을 내려 보내면서『인간을 널리 이롭게 해 줄만 하다.』(可以弘益人間)고 하셨다. 말하자면 인간중심의 인본주의(人本主義)사상을 건국이념으로 천명한 것이다.

이후 우리의 역사는 사람(人間)에게로 향하는 「사랑」이 가장 높고(至高) 올바르고 큰(正大) 기운(氣運)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 인간사랑이 겨레사랑․나라사랑으로 굳어지면서 민족정기가 싹트고 주인의식으로 정착(定着)한 것이다. 이 굳건한 주인의식은 나라가 평화로우면 문화창조의 원동력이 되고 국가 존망이 걸린 국난(國難)의 시대에는 불같은 저항정신으로 나타났다.

저 멀리 고구려시대 수(隋)나라 백만대군을 무찌른 살수대첩(薩水大捷)이나 몽고(元)군의 40여년 7차에 걸친 침략을 온 몸으로 막아낸 고려의 대몽항쟁(對蒙抗爭) 그리고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국난에 wm음해 발휘한 우리 민족의 끈질긴 저항정신을 낱낱이 기록할 수는 없지만, 조선왕조의 종막에 임해 악랄한 왜적의 침탈에 항거한 인인(仁人) 열사(烈士)의 애국애족정신은 잊을 수 없다.

일제(日帝)의 강요로 체결된 이른 바 「을사보호조약」에 항의해 순국(殉國)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 선생은 자결하기 직전 쓴 「전국 인민에게 보내는 글」(示全邦人民書)에서 『병선은 초야에 묻혀 사는 사람이다. 문을 닫아걸고 책을 읽으며 분수와 의리를 지키고 살았다. 만약에 세도(世道)가 흥하거나 쇠하면 하잘 것 없는 사람에게도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 국가가 망하고 인민이 모두 죽임을 당하려는 날을 만나, 만세(萬世)에 태평을 여는 공(功)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또한 일세(一世)에서나마 기어 다니는 어린 아기조차 구하지 못하면서 차마 이 참혹한 현실을 보고만 있으니, 차라리 눈 감고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을지라 죽음으로써 국민에게 사죄하려 하노라. 아아 우리 국민이 이 경쟁하는 세계를 만나 살아날 묘방(妙方)이 없으니 장차 무엇에 의지해 살아 갈 것인가.』 구구절절 나라를 걱정하고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 배어 있다.

그리고는 『마땅히 죽어야 할 때 살아 있으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고, 마땅히 죽어야 할 때 죽으면 죽어도 살아 있는 것이다.』(當死而生 生而死也 當死而死 死而生也)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둘째. 국토사랑으로 표출했다. 국토는 우리에게 발붙이고 살게 하고 자연으로 숨 쉬며 먹고 살게도 해 준다. 그래서 땅(大地)을 어머니라 하지 않는가. 국토를 지키고 가꾸며 보존하는 마음이야 말로 주인의식의 극치다.

지난 날 이 땅을 수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리의 조상이 목숨을 던졌으며 이 땅을 기름지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우리의 조상이 얼마나 알뜰한 정성을 쏟았는가를 생각하면 주인의식이란 참으로 숭고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개발이란 미명(美名)아래 국토를 마구 파헤치고 산업화란 핑계로 자연환경이 파괴되어가는 참상을 보면 문득 주인의식의 실종을 실감한다.

셋째. 문화 창조로 승화되었다. 이 나라에서 꽃 핀 찬란한 문화는 이 나라 주인의 독특한 사상과 재주와 체취가 스며있다. 그들은 그것을 유산으로 물려주었고 후손들도 대를 이어 새로운 창조로 보답했다. 오늘날 우리들은 혹여 외래문화에 혹한 나머지 민족 전통의 문화유산을 홀대하거나 상실하고 있지 않는지 자성해 볼 일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