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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관 확립’-자살예방의 근본적 해결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09/09/25 [17:11]

‘생명관 확립’-자살예방의 근본적 해결

이광열 기자 | 입력 : 2009/09/25 [17:11]
 

‘생명관 확립’-자살예방의 근본적 해결

자살예방 학술대회, 캠페인, 기도회 등 일회성 그쳐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이며 종교계의 현안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종교계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건강한 생명관(生命觀)과 인간관계 확립에 나서서 자살예방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종교계가 머리를 맞대 합일된 해결책을 도출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교계 내부의 논란까지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자살을 한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경향마저 있다. 한 사람의 자살은 당사자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가족을 포함해 평균 6명에게도 커다란 죄책감과 우울감을 안겨준다고 한다. 자살로 인한 직접비용과 간접비용이 매년 3조원에 이른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물론 자살예방에 대한 사회적 장치도 절실하다. 자살도구나 방법에 대한 적극적 통제는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의 충동적인 행동을 저지할 수 있다. 서양의 경우 총기소지의 규제 등이 대표적인 활동이며, 최근 우리나라에서 늘어나고 있는 지하철의 스크린 도어도 그중 하나다. 높은 건물의 옥상이나 위험한 지역에의 접근을 통제하고, 다리나 공공시설에 안전시설을 강화하는 것, 농약에의 개인적 접근을 어렵게 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정신건강 증진, 정신질환의 예방 등 자살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의료적 접근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생명의 소중함, 생명사랑의 중요함이 사회에 널리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게 성균관의대 오강섭 교수(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과장, 자살예방협회 부회장)의 주장이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각각에 맞는 생명존중, 생명사랑을 위한 프로그램이 제공해야 하는데 이는 종교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나설 수 있다.

이에 종교계는 자살통계수치가 발표되거나 유명인의 자살사건이 생겨날 때마다 자살예방을 위한 학술대회와 포럼, 생명존중 캠페인, 기도회 등을 잇달아 개최하고 있다. 

‘종교계에서 보는 자살과 예방대책’ 등의 토론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가톨릭에서는 자살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한 사목 상담, 사회복지지원 협조체계 시스템, 자살예방을 위한 양심교육’ 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불교계도 ‘자각을 통한 자활의지 고취, 자살 요인과 유해환경 제거, 자살 시도자에 대한 상담과 지지체계 구축’ 등을 제시한다. 개신교 역시 ‘생명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한 선물이기 때문에 자살은 완전히 잘못된 일’이라며 ‘자살에 대한 이해능력을 증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의사와 신학자들이 함께 토론회를 여는가 하면 자살방지 캠페인도 펼친다. 자살과 관련한 신자들과 범사회적 차원의 각성을 촉구하는 기도모임도 열린다.

그러나 이러한 모임들이 단발성 행사에 그쳐 장기적인 안목의 대응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즉 자살예방의 근본적 대안이랄 수 있는 종교계의 일치된 ‘생명관 확립운동’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교계내부의 異論도 자살인식 혼란케

殺身成仁인가, 自殺美化인가


특히 탤런트 최진실씨에 이어 장자연씨(3월) 노무현 전 대통령(5월), 강희남 목사(6월) 등 자살사건이 줄을 잇는 가운데 자살에 대한 교계 논란도 거세게 일어나 자살예방에 대한 종교계의 역할이 의문시되기도 했다. 교계에서도 자살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확립시키지 못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놓고 개신교회와 가톨릭에서 벌어진 갈등은 일반국민들의 자살문제에 대한 시각을 혼란스럽게 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권오성 총무가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사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한 것을 두고 홈페이지에는 "총무직에서 물러나라"는 비난부터 "권 목사의 기도에서 교회의 양심을 발견했다"는 반응까지 극과 극으로 평가가 엇갈렸다.

지난 9월14일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김영한 교수는 한 신문의 기고문 ‘NCCK는 신앙적 정체성을 바로 하라’에서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미화한 NCCK의 입장을 비난했다. 지난 6월18일 개신교 목사 1,024명의 시국선언 “부엉이 바위에 묻어있는 핏자국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진 예수의 죽음을 봅니다” 에 대한 비판이었다. “노무현의 죽음이 예수 죽음처럼 신성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자살을 미화시키는 구절이며, 동시에 예수의 대속의 죽음을 세속화시키는 모독적인 구절”이라고 했다. 노무현은 형사 책임을 추궁당하여 궁지에 몰린 자기 가족과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것이어서 안중근 의사(義士)의 죽음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김진홍 목사는 "감당할 자질이나 능력이 없이는 굳이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려 들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권면"이라면서 "대통령을 지낸 분이 자살한 것은 무책임한 선택"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의 투신자살이 청소년 모방자살로 이어지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스럽다"고 했다. 이에 바른교회아카데미 등에서는 "슬픔 당한 이들과 그를 추모하는 수백만 국민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경북 포항 한동대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설치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학생들 간에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다. 일부 학생들이 교내에 분향소를 설치하자, 학생회장은 "국민에게 상처를 남기고 국가적 위신을 실추시킨 죽음을 미화해서는 안 되며, 죽은 자 앞에 제단을 쌓는 것은 신앙에 위배 된다"며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89세의 강희남 목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해 교인들을 더욱 혼란케 했다.

천주교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자살논쟁이 생겨났다. 함세웅 신부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발간하는 잡지 '희망세상'에 “마지막에 말을 아끼는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예술이며 대단한 용기다”라고 미화한 것. 이에 “어떻게 신부가 자살과 살인을 조장하고 미화하는 발언을 할 수가 있는가. 그것은 민주화 문제를 떠나서 천주교 본연의 교리에도 전혀 맞지 않다”는 반발이 생겨났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김영식 신부가 미사에서 예수의 부활과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연결시키며 "부엉이바위는 부활과 승천의 자리였다"고 찬양하는 하면 박홍 신부(전 서강대 이사장)는 이날 "오죽이나 답답했으면 그런 죽음을 선택했겠느냐"면서 "자살이라는 것이 절대 바람직한 게 아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자살자를 위해 미사를 올리는 것에는 반대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모든 종교 자살 죄악시

근원적인 종교적 지혜와 수행 필요


모든 고등 종교는 자살에 대한 관점은 다소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자살을 죄악시한다. 자살은 가정과 사회, 국가를 파괴하는 무책임한 행위이며, 망국(亡國)으로 가는 길이다. 

불교계에서 정의하는 자살은 오계(五戒) 중 으뜸인 ‘불살생계(不殺生戒)’를 범한 반불교적 행위로 간주한다. 기독교 십계명 ‘살인하지 말라’는 자신을 죽이는 것도 명백한 살인으로 보고 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태복음 16장 26절)고 설파한다. 유교에서도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며 몸을 소중히 하라고 했다.

이런 정신을 강조하는 종교야말로 자살예방에 나서는 정부, 사회노력보다 우선한다.

종교는 생명 자체에 대한 탐구를 중요시한다. 자살은 반생명적인 것이다. 또한 종교는 초월의식으로 가기 위한 여러 가지 길을 제시한다. 최준식 이화여대 종교학 교수는 세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로 명상이나 경전을 공부해서 지혜를 닦는 길이 있고, 두 번째로는 헌신적인 사랑과 봉사를 통해 자신을 넘어서는 길이 있다고 한다. 또 마지막 길은 사회 개혁 등과 같은 외부적인 일을 통해 자신을 초월하는 길이라고 제시한다. 이런 세 가지 길을 통해 초월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선 이런 근본적인 종교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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