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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건강의 敵’이 아닌 생명 守護의 파수꾼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09/09/22 [14:01]

소금-‘건강의 敵’이 아닌 생명 守護의 파수꾼

이광열 기자 | 입력 : 2009/09/22 [14:01]

‘건강의 敵’이 아닌 생명 守護의 파수꾼

죽염의 날, ‘소금의 眞實’을 밝힌다

 

 지난 8월 27일은 죽염(竹鹽) 산업화 22돌을 맞는 ‘죽염의 날’이다. 1987년 8월 27일, 함양지역의 향토기업 인산가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최초로 함양군 상공계로부터 ‘가공염(죽염) 제조허가’를 받아 함양고을이 생긴 이래 첫 소금가공공장의 문을 열고 죽염제조를 시작하였다. 천일염을 위시하여 재제염, 가공염, 정제염 등 모든 소금은 바다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소금의 제조 생산시설 역시 당연히 바닷가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 상식에 반(反)하여 소금가공공장이 깊은 산골마을에 들어서고 몇 년 뒤 해발 5백 미터에 위치한 심산(深山) 속으로 자리를 옮겨 ‘바다 출신(出身)’을 고온의 소나무 장작불 또는 송진불로 9번씩이나 단련시켜 특수 임무를 수행할 정예요원으로 만들어 대거 하산(下山)하게 한다. 그 정예요원들은 음식의 간이나 맞추는데 쓰이는 부재료로서의 용도를 뛰어넘어 혹독한 훈련과정을 겪으며 단련되고 또 단련된 강인한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던져 암, 난치병으로 불리는 인류의 공적(公敵)들을 물리치는데 앞장서서 혁혁한 공로를 세우게 된다.

 그들의 활약으로 인해, 아무 잘못도 없이 오랜 세월 인류의 건강을 해치는 원흉(元兇)의 하나로 낙인 찍혀 얼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채 차라리 장렬하게 죽느니만 도 못한 비참한 삶을 이어오던 ‘천일염(天日鹽)의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게 된 것은 참으로 불행 중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소금 만드는 방식의 변화에 따라 서해안 염전으로 해수(海水)를 끌어들여 바닷물의 증발을 통한 결정(結晶)으로 소금을 얻는 재래의 제염(製鹽)방식과 달리 공업용수 확보를 위한 탈염공업의 부산물로 얻게 되는 순수 염화나트륨(NaCl)을 소금으로 인식해 전 국민이 식용하면서부터 ‘소금의 억울한 누명’은 시작된다.

 더욱이 1963년 무렵 제정 시행된 염관리법은 한국의 모든 식품제조 가공 업소는 물론이고 청량음료 ,각종 식음료 제조, 요식업소들의 음식 조리에도 순도 99.9%의 염화나트륨을 쓰도록 의무화함으로써 천일염은 설 땅을 잃게 되었고 온갖 천대와 수모를 겪게 된다.

 소금은 모든 생물들의 생명력의 원천으로서 생명에 위해(危害)를 가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격해오는 온갖 세균, 바이러스들과 싸우며 생명보호 임무를 수행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차츰 도리어 생명을 해치는 원흉으로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이렇듯 소금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기피와 질시(嫉視)가 극에 달하던 1986년 6월 15일 인산(仁山) 김 일훈(金一勳) 선생(1909~1992)의 저서 <신약(神藥)>이란 책이 출간되었고 그 책의 서두에 한국의 서해안 갯벌에서 생산된 천일염은 암, 난치병을 위시하여 이름 모를 괴질들을 다스릴 수 있는 신약(神藥)이 된다는 ‘소금의 진실’과 ‘질 좋은 소금을 섭취하는 것이 무병장수의 묘법’이라는 실로 혁명적인 의방(醫方)이 제시되기에 이른다.

 신묘한 약성과 미량의 독성(毒性)을 다 같이 함유하고 있는 천일염을 지혜로운 방법으로 법제(法製)하여 유독성 물질을 제거하고 약성 물질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죽염의 제조법이 창안되었고 그것을 치병(治病)과 건강증진을 위해 활용하는 방법 역시 <신약> 책을 통해 명명백백하게 공개되었다. 공해시대 암, 난치병의 창궐을 예견하고 국가 차원에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리와 암, 난치병의 해결방안으로 제시된 다양한 인산의 묘방들은 당시 비상한 국민적 관심을 끌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죽염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기에 이른다.

 독자들의 이러한 요청에 따라 1986년 가을, 전북 남원시 산내면 소재 지리산 실상사 절 마당에서 죽염 제조가 시작되었으나 실상사의 교구본사인 김제 금산사의 화재(火災) 여파로 작업은 중단되고 그 이후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함양읍 죽림리 산 192 일대의 목장지로 들어가 죽염 제조 작업을 마무리한다. 그 뒤에도 죽염의 수요는 계속 늘어나 공식 제조 허가를 통한 산업적 생산의 필요성이 대두돼 허가절차를 진행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신약> 출간 1년 뒤인 1987년 8월 27일, 필자의 1년여에 걸친 산업화 노력의 결실로 함양고을의 심산유곡에서 만들어져 ‘인산죽염(仁山竹鹽)’이라는 브랜드로 세상에 공식적으로 데뷔한 죽염의 등장은 당시 한국의 대표적 사양 산업으로 자타가 공인하던 소금산업에 기사회생(起死回生)의 서광을 비추기 시작한 일대 사건으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기 시작한다.

 국내외를 통틀어 죽염산업화의 효시가 된 ‘인산죽염’에 이어 1년 뒤인 1988년 전라북도 부안에서 ‘개암죽염’이 제조허가를 받아 생산을 시작하고 그 이듬해인 1989년 경상북도 영덕에서 ‘민속죽염’, 1990년 인천에서 ‘원방죽염’ 등 다양한 브랜드의 죽염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여 한 때 공식 죽염제조회사 이외에 전국 각지에서 사찰, 성당, 교회 등 죽염을 자가적으로 제조하여 이용하는 곳이 무려 5백여 곳에 달한 적도 있었다.

 공식 죽염 제조회사는 현재 약 30여 곳에 이르고 죽염치약, 죽염간장, 된장, 고추장, 죽염 김치, 죽염 오이지, 죽염 화장품 등 죽염을 응용한 상품들이 속속 개발되어 시판되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도 순도 99.9%의 염화나트륨을 소금으로 인식하고 그것의 유해성을 들어 다른 모든 소금도 마찬가지로 해롭다는 ‘소금 유해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죽염산업의 해결과제로 남아 있다.

 전라남도가, 한국의 천일염을 세계적인 명품브랜드로 육성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갖고 천일염의 발전을 가로막는 염관리법을 개정하고 천일염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는 한편 ‘참 가치’를 알리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비록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있지만 천일염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나 국민건강을 위해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지난 2008년 3월 28일부터 천일염을 모든 식품 제조와 조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 염관리법이 시행됨으로써 천일염 산업은 물론이고 죽염산업 역시 새로운 도약의 전기(轉機)를 맞고 있다. 함양읍 죽림(竹林)리 삼봉산 기슭 해발 500미터 지점의 심산유곡에 위치한 ‘인산가’는 자연주의 의학인 ‘인산의학’의 정립처이자 ‘세계죽염산업의 발상지’로서 오늘도 각종 암, 난치병, 괴질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구할 수 있는 ‘참 의료’의 신약(神藥) 묘방(妙方)을 갈구하는 많은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전주대학교 대체의학대학 객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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