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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다하우 수용소, 종교인들 학살 수난 장소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08/25 [11:56]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로는 첫 사죄 방문

獨 다하우 수용소, 종교인들 학살 수난 장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로는 첫 사죄 방문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08/25 [11:56]

 
 



‘이곳 수감자들의 운명을 떠올리면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이 가득 찬다’.

 
지난 8월 20일 독일 현직 총리로는 처음 다하우 수용소(Merkels’ visit was the first by a German chancellor to concentration camp Dachau)를 사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German Chancellor Angela Merkel) 행보에 국제 정치권이 일제히 찬사를 보내고 있다.

 
다하우 수용소(the Nazis’ terror reign from 1933-1945 in Dachau, southern Germany)는 나
치가 운영했던 폴란드 아우슈비츠와 함께 강제 수용소로 악명을 떨쳤던 곳이다.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통으로 집권한 직후인 1933년 3월 22일 개소된다.

 
히틀러의 오른팔이자 600만명에 달하는 유대인 대학살의 기획자인 하인리히 힘러가 화약공장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에는 독일인 정치범 구금시설로 활용되다 이후 비협조적인 성직자, 유대인, 독일 및 오스트리아에서 체포된 범죄자, 점령지 외국인 레지스탕스, 전쟁 포로 등이 무차별적으로 수용됐다.

 
기록에 의하면 12년 동안 운영됐던 이 장소에서 30개국 출신의 206,206명이 수용돼 약 15%에 해당되는 31,951명이 처형, 구타, 기아, 질병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장소는 2차 대전 당시 종교인들의 혹독한 학대를 상징하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독일 나치군은 요주의 인물로 지목한 종교인들을 무자비하게 체포해 수감 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20개국 출신 종교인 2,720명이 수용됐다고 한다.

 
가톨릭 사제가 90%에 해당되는 2579명을 기록해 다하우 수용소는 가톨릭 수사들이 무고하게 수난 당한 장소로도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사제 중 약 40%인 1,034명이 사망한다.

 
이어서 수난을 당한 종교인들은 폴란드 종교인으로 1780명이 수용돼 역시 50%에 달하는 868명이 사망한다.

 
 
▲ 원형 그대로 보존된 ‘다하우 수용소’ 정문에는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Arbeit macht frei/ Work makes you free'는 문귀가 당시 강제로 강요했던 노동의 강도가 극심했음을 입증하는 징표로 남아 있다     © 매일종교신문


 
이때 목숨을 잃은 38명의 사제, 3명의 수사, 3명의 평신도 등 44명은 1999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나치에 의해 살해된 폴란드인 순교자(108명)를 시복할 때 함께 복자(성인 바로 전 단계)로 지명돼 종교인들의 원혼(冤魂)을 달래 준 바 있다.

 
다하우 수용소는 2차 대전이 종식되기 직전인 1945년 4월 29일 미군이 점령하면서 종교인과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나치 장교들이 역으로 수감돼 친위대 장교 40명 중 36명이 1945년 12월 13일 사형선고를 받아 23명이 1946년 5월 교수형에 처해지는 등 격변의 역사를 증언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원형 그대로 보존된 ‘다하우 수용소’ 정문에는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Arbeit macht frei/ Work makes you free'는 문귀가 당시 강제로 강요했던 노동의 강도가 극심했음을 입증하는 징표로 남아 있다. <이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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