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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종교의 자살에 대한 견해
삶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살 관점 다르다
기사입력: 2013/10/18 [15:42]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신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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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오파트라의 자살     ©

자살은 갈등, 생활고, 우울증 등 삶의 고통이 극한에 달했을 때 행해진다. 또한 엄청난 분노나 원한에 한이 맺혀 생을 끝마치기도 하는 등 자살 사유가 다양하다. 그에 따른 자살관점도 달라진다. 그러나 ‘스스로 자(自)에 죽일 살(殺)’- 자살은 말 그대로 자신을 살해하는 범죄행위이다.
 
따라서 생명존중 사상을 지닌 고등종교는 자살을 부도덕한 행위나 범죄로 간주한다.
 
서양에서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자살을 범죄로 여기며 이슬람교와 불교, 힌두교에서도 자살을 부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일본의 사무라이는 자신들의 실수나 실패를 불명예로 여겨 할복하는 것을 명예로 여기는가 하면 인도 풍습인 수티는 남편이 죽어 화장시킬 때 아내도 함께 화장시키거나, 같이 따라 죽는 풍습이 있다. 인간의 생명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자살에 대한 견해도 다르다. 각 종교의 자살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며 자살예방대책도 모색해 본다.


불교
자살의 업이 더해져 더 고통스런 삶



불교에서도 살도음망(殺盜淫妄)은 4바라이죄(波羅夷罪)에 해당되어 무서운 인과를 면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기본적으로 자살을 죄악시하고 있지도 않다. 인생이란 신이 내린 것이 아니라 전생의 업이 모여서 만들어진 자율체이기 때문에 자살했다고 해서 생명을 준 신에게 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생이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자살을 하면 고통의 근본 원인을 소멸할 수 없게 된다. 전생의 업이 더해져 전보다도 더욱 더 고통스러운 생명으로 또 다시 태어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깨달음을 얻은 성자라면 이미 윤회의 세계에서 탈출하고 있어 자살을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 사람, 범인은 윤회하여 현세의 업이 내세에 더해져 삶은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즉 불교는 자살을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곧이어 따르는 엄청난 고통을 짊어지게 되니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유교
부모 생전에 죽는 것조차 불효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유교의 규율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신의 몸을 아끼고 사랑함을 뜻하는데 여기서 부모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의미이다. 부모 생전에 자식이 먼저 죽는다는 것은 큰 불효가 아닐 수 없었다. 병이나 사고로 죽는 것도 아니고 자살로 목숨을 끊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공자는 ‘죽은 사람과 함께 묻기 위해 맨 처음 목상을 만든 사람은 자손이 없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써 인간을 희생물로 삼는 의식도 철저히 비난했다. ‘삶에 대해 알지 못하면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는 유학의 기본 정신은 삶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
자살은 하나님 형상을 파괴하는 행위


기독교는 자살을 매우 부정적으로 이해한다. 십계명 ‘살인하지 말라’는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만 살인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는 것도 명백한 살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창 1:26~27) 자살은 사람 속에 담긴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또한 자살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린도전서에는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인간의 몸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몸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는 것으로 중한 죄악이 될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인간에게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중단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시편 24:1은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그 생명이 끝나는 시기와 방법에 대해 결정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명백히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해석한다.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하면 당연히 지옥으로 간다고 하며 가톨릭에서는 자살자에게는 장례미사도 올리지 않는다.


이슬람 역시 자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다. 이슬람의 코란과 기독교의 성서는 동일한 유일신을 믿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이슬람이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을 내세우며 폭탄자살을 자행하는 종교로 오해받았으나 이슬람 역시 평화와 생명존중의 종교란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하드(聖戰)라 불리는 것도 공격적인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자기방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무교(巫敎)
자살은 신의 영역에 대한 도전



무교는 생명의 시작을 ‘신에 의해 점지된 인간(생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생명의 주관자인 ‘신’은 무교에서 ‘삼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능화는 ‘조선무속고’에서 “대개 풍속에 태(胎)를 보호하는 신을 삼신이라 한다. 우리말에 태를 ‘삼(三; sam)’이라 하는 것은 삼신을 이르는 것으로 태신(胎神)을 말한다.”고 했다. 결국 ‘삼신’이란 ‘아기를 점지하는 일과 산모와 생아(生兒)를 맡아보며 수호하는 세 신령(神靈)’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서 초인간적인 존재인 삼신의 소관이라는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생명은 신과 인간이 공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살을 통해 스스로 그 목숨을 끊는 것은 인간이 자기 관할 밖의 영역인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 되므로 무교에서 자살은 금기시 된다.


노장사상과 도교
자살해석에 양면성



도교의 자살 해석은 양면성을 띠고 있다. 도교가 자살을 부모를 죽이는 행위로 규정하고 엄단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자살을 정당화 시킨다고 해석하는 일들도 있다.
도교에서의 죽음에 대해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른 종교와 같지만 죽음 이후의 신선이 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도교의 주된 가르침은 공(空)과 무(無)로 자살은 종종 그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도교 신자들 중에는 자살한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노장사상에서 도교가 파생되었다고 보는데 노장사상이 인간이 갖고 있는 편협한 의식의 대전환을 통해서 정신적인 자유와 불멸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반면, 선도에서도 주로 육체적인 불사를 이루어 신선이 되는 것을 꿈꾸었다. 양자의 태도는 특히 죽음을 대하는 데에서 두드러지게 달라지는데 노장 철학자들은 죽음을 자연이 순환하는 한 국면으로 받아들이고, 선도의 도사들은 죽음을 거역하면서까지 육신을 갖고 영원히 살아 보려고 했다. 


증산도
의미있는 자살도 있다.


증산도는 우리민족의 토착신앙속의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증산도 도전 2편 188장 1-4)에서 읽을 수 있듯이 사람은 하늘로부터 혼을 받고, 땅으로 부터 넋을 받아 태어난다고 믿는다.  태어나고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주의 축복으로 본다. 또한 자살도 의미있는 자살이 있다고 본다. 부모로 받은 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은장도에 몸을 맡겼던 열녀나, 나라를 되찾기 위해 생명을 던졌던 의사(義死)나 충신의 죽음은 죄악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미없는 죽음을 택한 자살에 대해 이 우주가 신경을 쓰진 않으나 조상이나 자신의 영혼에 거리끼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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