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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일본인의 고민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0/21 [14:31]
“국가를 위해 죽은 병사들을 존경할 권리가 있다”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일본인의 고민

“국가를 위해 죽은 병사들을 존경할 권리가 있다”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0/21 [14:31]

 
▲ 일본은 전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리석은 전쟁으로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령하는 데 있어서 아직도 깊은 고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일종교신문


‘야스쿠니진자(靖國神社)’(이하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일본 수상 등 관료 등의 참배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8월15일은 한국에서는 광복절이지만 일본에서는 ‘종전(終戰)의 날’로 부른다. 한국에서는 광복절을 축하하는 날이나 일본에서는 천황, 황후가 참석하는 가운데 ‘전국전몰자추도식(全國戰沒者追悼式)’을 거행하는 날이다. 각각의 종교가 다르면 가치관과 신념이 다르듯이 나라나 입장이 다르면 같은 일을 가지고도 생각이 각각 다르다.


한국인들이 일본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일본의 시점에서 보는 ‘야스쿠니신사’에 관해 말해보고자 한다.


‘야스쿠니신사’는 국가 안태(安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야스쿠니신사’는 국가를 위해 순국(殉國)한 군인 및 군속(軍屬)을 제신(祭神)으로 모시는 신사이다. 1869년 일본육군 창시자인 오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의 건의로 전쟁으로 죽은 군인들을 위령하기 위해 만들었다. 처음에 도쿄쇼콘샤(東京招魂社)로 창건됐다가 1879년 ‘야스쿠니신사’로 개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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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사에는 유골이나 위패는 안치되지 않고 ‘레이지보(靈璽簿)’라고 순사자(殉死者)의 이름을 적은 책자 2000권이 안치돼 있다. 그 책자에는 246만6532명(2004년 현재)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런데 본인과 유족들의 의중을 고려하지 않고 야스쿠니신사가 일방적으로 이들 순사자(殉死者)를 A급 전범과 합사(合祀)시킨 것이다. 그래서 유족 중에서는 이 합사(合祀)를 취소하라고 소송을 건 예도 있다.


참고로 태평양전쟁 때 해외에서 전사한 일본군 병사 114만 명이 아직도 수습되지 않고 있다. 이 전쟁에서 전사자는 약 310만 명이다. 그 중 해외에서 전사한 병사가 약 240만 명인데, 126만 명의 유골만 일본으로 송환됐고 나머지는 수습되지 않았다. 전사자가 제일 많은 지역이 ‘필리핀’인데, 전사자 51만8천 명 중에서 37만8천 명의 유골이 수습되지 않았다. 종전 65년이 지나면서 현지주민들의 기억도 희미해져 유골을 수습하지 못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8월16일자 일본경제신문 조간). 태평양전쟁 사망자로 신사에 합사(合祀)된 사람은 213만3915명(2004년 현재)이니 거의 태평양전쟁 때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들이다.


일본이 패전 후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것은 타국에서 죽은 조상들의 유골을 수습하지도 않은 채 경제활동에만 전념한 결과이니, 조상들의 희생이 뒤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야스쿠니신사’는 미국군정(美國軍政)시대에 미군이 태워버리려고 한 적이 있다. 주일 로마교황청 대표자인 브루노 비터(Bruno Bitter) 신부가 “전승국이든 패전국이든 국가를 위해 죽은 병사들에 대해 존경할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 ‘야스쿠니신사’를 소각해 버리는 것은 미군의 점령정책에 어긋난 범죄행위”라고 맥아더 사령관에게 조언을 했고, 그 조언에 따라 소각처치가 취소됐다.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외국 유명인사들이 있다. 달라이 라마 14세, 옐친 전 러시아대통령, 이등휘(李登輝) 대만 전 총통 등이다. 특히 이등휘(李登輝) 전 총통은 형이 태평양전쟁 때 전사하고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는 관계로 참배하는 것을 원했다고 한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유슈간(遊就館)’이라는 박물관이 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명치유신(明治維新) 이후 일어났던 전쟁들의 원인, 경과, 결과를 설명하고 전쟁에 사용됐던 무기들을 전시하는 곳이다. 서울에 있는 ‘전쟁기념관’ 비슷한 박물관이다. 규모는 ‘전쟁기념관’ 보다 훨씬 작다. 한국에서는 ‘유슈간(遊就館)’을 일본군국주의를 찬양하기 위한 박물관이라고 비판하는데, 실제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전쟁기념관’에서 전쟁 찬양을 느끼지 않는 것과 같다.


이곳에는 의외로 일본 씨름인 스모(相撲)경기장도 있다. 1년에 한 번씩 스모 경기가 열린다. 태평양전쟁 때 미국의 공습으로 국립스모경기장이 소실되면서 한때는 여기서 경기를 했다. 스모 선수들은 영령을 위령하기 위해 무료봉사로 경기에 임했다.


미국 등 연합국은 일본이 패전 후 ‘동경재판’, 정식명은 ‘극동국제군사재판(極東國際軍事裁判)’을 열었다. 이 재판에서 ‘A급 전범(A級戰犯)’ 28명이 기소됐고, 그 중 7명이 사형 당했다. 전범은 A~C급 세 가지 급수가 있는데, 이 분류는 범죄의 정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범죄성격과 종류에 의한 것이다. B, C급 전범 중 901명이 사형 당했으니, 범죄의 정도에 의한 심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점을 의아해하는 일본인도 많다.


A급 전범의 죄는 ‘평화에 대한 죄’였다. 이 죄는 ‘침략전쟁의 계획, 준비, 실행, 공동모의로 세계의 평화를 교란시킨 것’이다. 이 ‘평화에 대한 죄’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법률로 새로 만들어 적용한 것이다. 이는 원래 법에 규정이 없는 죄는 물을 수가 없으며(죄형법정주의), 사건이 터진 후 법률을 만들어 소급(遡及)처별 하는 것을 금지(사후법의 금지)하는 법치사회의 2대원칙을 위반한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원자폭탄 투하, 일본 66개 도시 무차별폭격 등 ‘비전투원 대상 공격, 살상의 금지’, ‘잔학병기(残虐兵器) 사용금지’ 등 국제법 위반을 했는데도 일체 불문에 붙였다. 또한 판사나 검사는 패전국이나 중립국에서도 선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전승국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으니 공정한 재판이라고 할 수 없다.


당시 인도 출신 팔 판사는 국제법 전문가로서 A급 전범 피고 전원의 무죄를 주장했다. ‘평화에 대한 죄’로 피고를 사형시킬 국제법 근거가 없음을 밝혔다.


이렇게 A급 전범에 관한 재판은 전승국의 패전국에 대한 복수 성격이 강했으니, 
‘야스쿠니진자(靖國神社)’(이하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일본 수상 등 관료 등의 참배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일본이 독립국으로 국제사회에 복귀한 계기가 된 1952년 대일평화조약(對日平和條約)을 맺은 후 일본국회에서는 ‘전쟁범죄에 의한 수형자의 사면에 관한 국회결의’가 가결되면서 전범들은 석방됐다. 전승국의 일방적인 재판에 분개한 결과이다.


이것은 일본인의 특유한 민족성으로 죽은 사람을 용서해 주는 관대한 마음이다. 일본 국민들은 자국 국민을 전쟁터로 보내 대량 죽음으로 내몬 어리석은 군부지도자들을 증오했으나 일단 죽었으니 더 이상 죄를 묻지 말고 용서해 주자는 정서이다. 일본인은 좋든 나쁘든 ‘깨끗이’ 과거를 잊어버리는 면이 있다. 한국인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A급 전범을 모시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함에 있어서 마음의 갈등을 느끼며 참배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리 ‘동경재판’이 부당하며, 이제는 법적으로 전범이 아니라 하더라도 전쟁을 일으키고 많은 인명피해를 입힌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근 A급 전범들의 인터뷰 자료가 국립공문서관(國立公文書館)에서 발견됐다. 그 중 전쟁을 시작하면 면밀한 전략이나 전법을 구상하지 않아도 전운(戰運)이 따라 올 것이라고 믿으며 승산(勝算)없이 개전(開戰)했다는 당시 해군대신(海軍大臣)의 증언도 있다. 이기지 못할 전쟁임을 뻔히 알면서도 당시 분위기로는 패전이나 전쟁종결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은 범죄였다는 고급관료의 증언도 있다. 당시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얼마나 이성이 마비됐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태평양전전쟁은 잘못된 전쟁이었던 것이다.


일본인들 중에는 일본 수상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군인들은 “죽으면 야스쿠니에서 만나자!”고 서로 약속하면서 죽어갔고, 가족에게는 “야스쿠니신사에 와서 손을 모으고 기도하면 나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당시 일본인들은 죽으면 ‘야스쿠니신사’로 영혼이 가는 걸로 굳게 믿었다. 어느 종교에나 있는 죽음에 대한 종교적 의례하고 할 수 있다.
그러니 A급 전범이 같이 모셔져 있다하더라도 일본 국가 원수인 수상이 참배하는 것은 그들 조상의 영혼을 달래는 행동이 되므로 유족들이 고마워하는 것이다. 


A급 전범이 합사돼 있으나 나라와 가족을 위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일반전사자들을 모시고 있는 곳에 수상이 참배하는 것을 외국인이 시비 거는 것은 내정간섭(內政干涉)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면 수상 참배에 대해 한국이나 중국의 반발을 생각하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야스쿠니신사’에 한번 합사된 영혼은 제거할 수 없다는 믿음이다. A급 전범들만 분리시켜서 일반전사자만 따로 모시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A급 전범과 일반전사자의 합사문제, 야스쿠니신사 수상 참배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세론(世論)이 있어 국론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야스쿠니신사’에 부정적인 견해가 많아서 순수하게 전사자를 위령하는 장소로 주목받은 곳이 ‘지도리가후치 센보츠샤보엔(千鳥淵 戰沒者墓苑)’이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500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


이 묘원은 태평양전쟁 때 전사한 전몰자들의 유골을 납골하기 위해 1959년 일본정부가 조성했다. 신원이 확인하지 않은 35만8269명(2010년 현재)의 유골이 안치돼 있다. 매년 5월에 위령제를 올리는데, 황실에서 황족을 초대하고, 수상을 비롯한 각료들도 참석한다. 올해는 새로 3937명의 유골을 수습해서 납골했다.


이 묘원은 A급 전범들의 유골도 없고, 또한 모든 전사자를 위령하는 곳도 아니어서 ‘야스쿠니신사’처럼 참배자가 많지 않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도 참배자는 수명에 불과했다.


일본은 전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리석은 전쟁으로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령하는 데 있어서 아직도 깊은 고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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