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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端과 似而非의 기준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1/14 [12:59]
화평서신

異端과 似而非의 기준

화평서신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1/14 [12:59]


◈ 종교계에서 이단(異端), 사이비(似而非)란 말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단의 사전적 의미 ‘자신이 믿는 이외의 도(道)’란 배타적 시각에서 보면 종교의 옳고 그름을 떠나 자기 종교 이외는 모두 이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전적 의미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주장이나 이론’이란 측면에서도 이단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정통 유대교에 도발적이었기에 이단이었으며, 그리스로마신화 체계에 도전적이었기에 로마에게도 이단이었습니다. 루터는 중세 가톨릭에 반항했으므로 가톨릭의 이단이었고, 근래 들어선 순복음교회 역시 이단이란 비난을 받으면서 한국 최대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이단’의 개념정의로 볼 때 통일교를 비롯해 신앙촌, 하나님의교회, 신천지, 엘림선교회 등 새로 등장한 종교는 모두 이단으로 취급됩니다. 기독교의 교파는 세계적으로 25,000여 개가 넘으며 모두 성서에 근거를 두고 새로운 교리가 등장하는데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많으며 각각 자기네 교파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며 여타 교파를 이단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라시대 토속신앙에 저항한 불교 순교자 이차돈 역시 이단이었으며 조선시대 유교전통을 무시한 기독교는 참살할 양귀(洋鬼)이자 이단이었습니다.
 
◈ 이단이란 표현이 사이비(似而非)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사이비종교란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른’ 사기성 종교를 일컫습니다.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각 신앙인의 입장에서 표현하는 ‘이단’을 바로 사이비종교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이단의 의미가 ‘올바르지 않은 도’로 해석되는 것입니다. ‘이단=사이비종교’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이단과 사이비를 죄악시합니다. 서로서로 이단이라 비난하며 갈등과 분열만을 조장하는 종교계에서 이제 ‘사이비의 기준’을 정해야 진정한 종교화평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한 블로거의 포스트에 ‘사이비 종교의 10대 특징’이 올려졌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의 종교 틀을 강요하며 신자들을 현혹시키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역사적 검증과 평가, 교세의 크기와 신도 수, 주위 평판 등의 기준은 없습니다. 교인과 교인 주변 사람의 생활과 마음을 불편하게 하느냐, 해를 끼치느냐의 평가 잣대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많은 신도들을 거느린 공인된 ‘정통종교’라 할지라도 권력다툼, 세습 등의 분란으로 교인들에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준다면 그게 바로 이단이자 사이비인 것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성전을 가졌다하더라도 신자들의 아픔을 다듬어주지 못하면 이단이며 신자들에겐 법의 심판보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라면서 자신들은 소송에 휩싸여 있으면 사이비인 것입니다.
 
◈ 창조주 신의 뜻은 창조주 신과 사람과 만물 모두에게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 뜻에 충실하지 않으면 이단이고 사이비인 것입니다. 내가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옳지 못한 사이비, 이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단과 사이비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치유능력 등 교주의 신격화, 시한부 심판설, 반사회적 반윤리적 교리, 기성종교에 대한 적개심이나 증오심 유발, 무분별한 교리의 혼합 등이 사이비, 이단의 대표적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통교리에 충실한 전통종교임을 내세우거나, 이단과 사이비가 아님을 외부에 알리려 하는 행동이 창조주 신의 눈으로는 부질없는 짓일 것입니다.
 
무슨 종교, 교파냐가 아니라 어떤 종교, 어떤 교파냐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 블로거가 올린 글로 ‘이단과 사이비의 기준’의 맺음말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어느 종교를 믿어도 좋다. 단지 자신의 시야를 좁히지 말자. 자신이 행하는 오류를 보지 못하고, 상대방을 공격하고 상처 주는 일만 하면서 그것이 자신이 믿는 ‘진리’가 시키는 것이라 생각하지 말자. 모두에게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올바른 종교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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