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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1/26 [09:17]
식민지시대 현실과 이상의 극복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

식민지시대 현실과 이상의 극복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1/26 [09:17]

또 다른 고향
 
- 윤 동 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드려다 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짓는다.


어둠을 짓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쫒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식민지시대 현실과 이상의 극복



윤동주는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에 관한 평가는 저항 시인으로 혹은 순수 서정시인으로 규정짓는가 하면 기독교 시인으로 평가하는 등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다만 그가 기독교를 믿는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며 명동소학교, 숭실중학교, 연희전문과 같은 미션계 학교를 다니면서 일찍부터 기독교 신앙을 하였고, 그의 시 역시 경건한 신앙심과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시세계에 나타난 기독교 신앙시를 대상으로 살펴보면 원죄 의식과 부활 의식이 주조를 이루고 있음도 사실이다.


위의 인용시 역시 식민지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를 기독교인의 윤리적 근간이 되고 있는 죄인 의식과 속죄 의식에 연원을 대고 있다. 이 시는 현실과 이상 또는 현실적인 자아와 이상적인 시적자아로 분리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원화는 결국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시인의 문학적인 처방일 수도 있다. 그가 처한 현실은 일제강점기라는 감옥과 같은 현실이다. 이런 감옥과 같은 서슬 퍼런 현실을 개인적으로 벗어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작품 가운데서는 이와 같은 현실적인 상황을 시적 이미지를 통해 나타내고 있으며 이 또한 자신만의 문학적 구원일 수 있다.


우선 작품 가운데는 고향에 돌아온 시적 자아와 더불어 같이 따라 온 ‘내 백골’이 있다. 그리고 ‘쫒기우는 사람’처럼 ‘또 다른 고향’으로 가야할 시적 자아가 있는가 하면 몰래 떼어놓고 가야할 ‘백골’이 있다. 이처럼 이원화된 자아와 백골은 물론 긍정적인 자아와 부정적인 자아이다. 긍정적인 자아는 신앙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적 자아이다. 반면 백골은 자신의 이원화된 부정적인 자아로서 식민지 현실에 갇혀있는 모습이자 기독교 의식 가운데 타락하여 원죄를 짊어진 자아의 모습이다.


시적화자가 처해진 공간 역시 ‘또 다른 고향’으로 표상되는 이상적인 세계와 식민지 현실로 표상되는 ‘어둔 방’이 있다. 현재 시적화자가 찾아와 누운 고향은 진정한 고향의 공간이 아니다. 자신이 출생한 고향은 이미 식민지 공간이자 이미 타인에 의해 지배 받는 타락한 공간이다. 이는 성서의 창조신화를 근거로 한 이상향 에덴과 맞닿아 있다. 에덴에서 추방당한 인류는 언젠가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는 고로, 본향한 끊임없는 시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처해있는 곳은 ‘어둔 방’이지만 ‘우주로 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둠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드려다 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에서 드러나듯이 식민지 공간이자 타락한 현실 공간에서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드려다 보는 것도 진정한 ‘나’인지 혹은 타락한 세계의 나 ‘백골’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는 자아의식의 갈등과 분열을 보여주는 구절이기도 하다. 백골이 풍화작용한다는 표현은 역시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본연의 세상이 아닌 타락한 세계에서의 일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작품 가운데 이채로운 것은 어둠을 짓는 ‘개’의 존재이다. 다른 작품 가운데서의 ‘개’의 문학적 표현은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 시각이 많다. 그러나 이 작품 가운데서의 개는 이상적이자 지조 높은 존재로 부정적 현실인 식민지 공간이면서 타락한 세계를 꾸짖고 감시하는 긍정적 기능을 감당하고 있다. 나아가 시적자아와 더불어 본향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을 향해 같이 갈 동반자이기도 하다.


결국 이 작품은 현실과 이상 가운데 빚어지는 갈등을 기독교 사상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시의식이 내재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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