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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어디에 이루어야 하는가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1/17 [10:41]
성경핵심난제연구

천국은 어디에 이루어야 하는가

성경핵심난제연구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1/17 [10:41]
▲ 미켈란젤로作 ‘최후의 심판’     ©


미국의 뉴스위크지 종교특파원 리사 밀러는 최근 그의 저서에서 “천국은 피의 역사가 만들어낸 구조물”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천국이 ‘빛으로 가득찬 황홀한 장소’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망언이나 다름없다. 밀러가 펴낸 책이름은 ‘천국-사후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속적 매혹’이다. 이 책에서 밀러는 자신의 주장을 조목조목 정리해 나간다.


천국은 신과 천사들이 사는 곳이었다. 사람이 죽어서 그곳에 간다는 개념은 애초에 없었다. 인간의 부족한 부분을 하늘(천국)에 투사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65년 고대 유대인들에 의해서였다. 유대인들은 여러 가지 요인들을 결합해 ‘신이 살고 있고, 올바르게 산 인간도 죽으면 가는 곳’으로 천국의 개념을 설정했다.


그런데, 천국의 개념이 좀 더 완벽하게 정립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외세의 침략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스인들의 침략으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고원으로 쫓겨나 떠돌게 됐고, 낯선 땅에서 유골조차 수습할 수 없게 되자 예언자 다니엘이 나와 “순교한 유대인들은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라며 힘을 북돋워줬다. 이로부터 1세기가 채 안 돼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천국을 믿게 됐고 이 믿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 천국의 개념은 수세기 동안 시대와 지역을 흘러 다니며 통제와 위협수단으로 변주됐다. 교황청은 천국을 빌미로 면죄부를 팔았고,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에게는 천국이 ‘현생에 규율을 강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자유를 꿈꾸던 미국 흑인 노예들에게 천국은 ‘처음이 나중 되고, 나중이 처음 되는 곳’이었다. 성에 굶주린 사회에 사는 이슬람 자살폭탄 테러범들에게 천국은 ‘72명의 처녀들과 성교하는’ 이상향으로 그려졌다. 이쯤 되면, 천국이 ‘피의 역사가 만들어낸 구조물’이라는 밀러의 주장이 그렇게 망언만은 아닌 듯 싶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사람 절반 이상이 그 존재를 믿고 있는 천국이란 대체 무얼까. 누구보다도 천국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남긴 예수의 발언에서 그 윤곽이나마 살펴보자.


천국, 종교의 통제수단으로 변주돼


예수는 세상에 처음으로 자신을 드러낼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4:17)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상에 올라 설교할 때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마 5:3)이라고 했다. 또 ‘어린 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마 18:3)고 했고, ‘천국은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시작 된다’(눅 17:21)고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천국을 이뤄야 지상에 천국이 오고, 천국인이 되어야 천상천국에 들어간다(눅 17:21)는 말이었다. 예수는 ‘천하를 얻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속에 천국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마 6:26)고 가르쳤다.


그는 격앙된 어조로 천국을 말하기도 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뺏는다’,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3~15). 이러한 발언은 예수가 당시 유대인들에 대해 크게 실망했음을 보여준다. 


예수는 자신의 십자가 처형이 임박할 무렵, 천국을 이루려고 왔으나(마 4:17) 끝내 이루지 못한다(마 27:46)며 한(恨)의 일단을 피력한다. 예수는 또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돼야 천국이 온다’(마 24:14)는 말과 함께 천국문 열쇠를 베드로에게 맡기면서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마 16:19)는 말을 남기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가 천국건설의 뜻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가 이루려 했던 천국에 대해 어설프게나마 눈을 뜰 수 있다.


예수의 천국은 사후세계에 맞춰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현실세계에,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 여기’에 ‘우리 마음’에 맞춰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 각자의 변화였다. 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한 마음을 갖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람 창조 당시 하나님의 뜻과도 일치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이들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따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간곡히 충고했다. 이 말은 하나님과 짝하여 하나님 닮은 선한 사람이 되라(창 4:7)는 것이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마귀의 주관을 받아 악인으로 전락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이 따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셨지만 사람에게 자유를 주었다. 하나님은 선(마 19:17)이요, 사랑(요일 4:16)이기 때문이다. 자유가 없는 선은 선이 아니며, 사랑도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면서 스스로 깨달아 하나님을 닮은 선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창 3:11) 것이다.


기독교도 포커스 잘못 맞춰 천국 요원


하나님의 사람창조에 대한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세상 만물을 모두 다스리라는 엄청난 축복(창 1:28)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자 에덴동산에서 쫓아냈고(창 3:24), 당신의 선으로 지은 사람이 마귀의 악에 전염되어 그 생각이 항상 악하게 되자 사람 지었음을 한탄했다(창 6:5~6).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산산이 깨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가만히 두면 영영 마귀의 종이 되고 만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뜻을 이루리라 다짐하고(사 48:11), 인간 구원에 나선다.


하나님의 소원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사 28:23) 하나님을 닮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은 것은 모두 선한 것(딤전 4:4)이었다. 하나님의 목적은 선한 사람과 선한 세상(천국)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삶의 지침으로 내려준 ‘십계명’이나 예수의 ‘산상수훈’도 하나님을 닮은 선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목적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었다(고전 3:16).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이 하나님처럼 선해지고(요삼 1:11), 거룩해져야 한다. 마음이 선으로 부활(요 5:29)돼야 가능하다. 하나님은 종교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선한 자의 하나님’(대하 19:11)이라고 말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떡에 관해서도 말하지 않았고(마 16:11), 재물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마 19:16~21). 오로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외쳤던 것이다.


천국은 한마디로 사람의 본성회복이 아닐까. 사람들 각자가 하나님이 주신 본성대로 산다면 세상에 악이 존재할 수 없다. 남을 해코지 하지 않고, 이웃이 서로 도우며 화목하게 사는 세상, 이것이 바로 예수가 이루려던 천국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진리는 이웃종교에서도 발견된다. 불교인들의 수행목적은 ‘성불(成佛)하는 것’이다. 중생의 탁한 마음을 부처의 맑은 마음으로 바꾸라는 의미다. 그래서 ‘마음 밖에서 길을 찾지 말라’고 가르쳐 왔다. 불교에서도 사람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짚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인류의 난문제는 모두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행복과 불행, 천국과 지옥도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기독교가 사람의 마음속에 이것을 정확하게 심어주지 않는 한 하나님의 나라는 영영 이 땅에 발붙일 수 없다. 천국에 갈 자도 없다.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유지를 받든다며, 2000여 년 동안 세계 방방곡곡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렸다. 세계 기독교 인구는 2010년 22억 9천만 명으로 조사됐다. 세계인구의 33.2%를 차지하는 숫자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만 해도 1200만 명에 달해 전체 인구의 25%에 육박한다. 그러나 세상은 어떤가. 하나님이 바라는 천국은 요원하기만하다. 오히려 사람들은 더욱 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지금 지구촌은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다. ‘사람이 죽어야 지구가 산다’는 자조의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의 메시지가 하나님이나 예수의 뜻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천국’은 하나님이 주신 ‘본성회복’


인류가 염원하는 천국은 실현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포커스가 잘못 맞춰져 있을 뿐이다. 기독교의 외형적인 세 불리기는 모래 위에 집짓기(마 7:26)이고, 무덤에 회칠하는 것(마 23:37)으로 외도에 다름 아니다. 모든 역량을 사람의 본성회복에 맞춰야 한다.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롬 12:9), 선한 일을 도모하고(롬 12:17), 이웃을 기쁘게 하며,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롬 15:2) 일에 매달려야 한다. 선을 가르치는 자가 되어(딛 2:3), 선을 행하며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벧전 3:17) 임을 명심해야 한다. 어느 종교보다도 인류구원과 천국을 표방해온 기독교가 그 해법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의 마음속에 천국을 이루지 않으면 그 어디에도 천국은 없다. 천국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며, 지상에서 먼저 이뤄져야 천상에서도 이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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