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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종교의 귀신관
귀신현상과 귀신담론-믿는 만큼 경험한다
기사입력: 2014/01/28 [15:1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이종목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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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종교의 귀신론’은 지난 2009년 ‘모들 아카데미’가 종교문화연구원, 한신대 신학대학원 신학연구소와 함께 개최한 "오늘 우리에게 귀신은 무엇인가- 여러 종교의 귀신론"이란 강좌 및 심포지엄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이 심포지엄은 ‘귀신’을 지성의 공론장으로 끌어낸 획기적인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체계적이고 학술적인 귀신론으로 귀감이 되기에 매일종교신문의 'FOCUS 특집시리즈'의 일환으로 세계종교의 죽음관, 자살관, 신의 명칭, 장례문화에 이어 정리해 놓는다. 이 내용은 ‘우리에게 귀신은 무엇인가’(모시는사람들·사진)라는 제목으로 출판이 되었다. (편집자 주)


 
귀신현상과 귀신담론
믿는 만큼 경험한다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종교현상은 영, 혼 등에 기반한 넓은 의미의 ‘귀신’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귀신이란 일단 몸을 지탱해주는 것이면서도 몸이 사라진 이후에도 지속되는 어떤 실체를 의미한다. 넋, 영, 혼 등 관련 개념과 언어가 뒤섞여 통용되고 있지만, 전 세계 종교들의 원형은 대부분 이런 귀신 현상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일반적 의미의 귀신, 구체적으로 말하면 ‘귀’는 의도하지 않은 경험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신앙의 대상은 아니다. 이는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종교의례를 통해 다스려  져야 할 대상이다. 귀(鬼)가 한국인의 신앙 행위와 종교체험 그리고 민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럴 때 귀(鬼)는 탈자연적 괴이(怪異)의 존재(마귀)로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이(神異)의 존재(신령神靈)와는 구분된다. 한마디로 ‘귀’가 무당과 같은 사제에 의해 다스려져야 할 탈자연적 존재라면 신령은 신앙과 의존의 대상인 것이다.

영과 혼도 구분해야 한다. 영혼(靈魂)의 한자 ‘영(靈)’은 삼라만상에 깃든 정기를 총칭한 말이고 ‘혼(魂)’은 죽은 뒤 육체와 분리되어 하늘로 올라간다고 여겨지는 물질 너머의 어떤 실재를 일컫는 말이다.

영혼(靈魂)이 그렇듯이 귀신(鬼神) 역시 ‘귀’와 ‘신’의 합성어이다. 중생은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나니 이를 일러서 귀라고 한다. 살과 뼈는 아래에서 썩어가고 음으로 흙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 기(氣)는 위로 높이 올라가서 백물의 정(精)이 되나니 이것이 신(神)의 두드러짐이다. ‘예기’에 따르면, 흙으로 돌아간 인간, 그것이 백골로서의 ‘귀’라면, 하늘로 올라간 기(氣)가 결국 ‘신’이 된다.

귀신 현상을 다루는 주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신’이라기보다는 사실상 ‘귀’이다.
귀(鬼)는 탈자연적 괴이(怪異)의 존재 - 마귀(魔鬼) - 이다.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이(神異)의 존재 - 신령(神靈) - 와는 구분된다.

서양의 경우, 귀신에 해당하는 존재의 유래는 다소 다르다. 한국을 위시한 동아시아에서의 귀신은 지상에 떠도는 음(陰)의 혼(魂), 즉 ‘귀’의 영역, 신격화한 자연적 신령, 인간과 관계를 맺기도 하는 신령계에 있다면, 그리스도교를 배경으로 하는 서양의 경우는 demon(악령), devil(악마) 등이 동양에서의 귀신의 역할을 한다.

성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악령 혹은 악마가 ‘사탄’이다. ‘사탄’은 고대 페르시아 종교의 악신, 즉 ‘앙그라 마이뉴’의 다른 이름이다. 

상이한 세계관 속에서 발생한 devil이나 demon 등이 한국 그리스도교에 오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가령 이들은 우리말로는 악마, 악령, 악귀, 그리고 귀신 등으로 번역하는데, 사실 악, 마, 귀, 영 등에 대한 이해가 본래 달랐던 한국어로 번역되는 순간 이들의 세계관은 서로 뒤섞일 수밖에 없다. 가령 devil이나 demon을 ‘악마’로 번역하는 순간, 그 ‘마’는 인도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해서 나온 불교의 어두운 실재, 즉 붓다의 깨달음을 방해했던 마라(Mara)의 한자식 표현 내지 세계관과 뒤섞인다.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원초적인 종교형태가 있다면 조상숭배이다. 조상숭배는,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이 신적 존재가 된다고 전제할 때, 그리고 그 존재가 후손과 교감할 수 있다고 믿어질 때 성립된다. 물론 가령 혼이 하나의 실체로서 지속되는지, 지속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얼마 동안 어디서 지속되는지 등등 그에 대한 이해의 내용, 정도, 양상은 다르다.

그러면서도 이들 간에는 공통점도 있는데, 혼이든 신이든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의 경험ㆍ생각ㆍ신념과 연결되어 있거나, 일정 부분 그 반영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어울리도록 현실을 해석하면서 신의 세계를 긍정해왔고 늘 함께 해왔다. 그런 점에서 종교는 일단 인간의 ‘해석’과 관련된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영혼의 존재에 대한 상상은 인간 스스로에 대한 성찰 내지 역사내적 상상과 관련되어 있다. 내세관에도 역사내적 상상이 반영되어 있다. 물론 그 역사내적 상상에도 역사 너머에 대한 오랫동안의 집단적 신념체계가 반영되어 있기에, 그것은 역사 내적이면서도 역사 초월적 세계를 지향하는 동인이 된다.


영혼도 몸의 성장과 함께 성장하고 변화와 함께 변화한다. 게다가 내 몸이 이른바 ‘사대(四大)’ - 땅(양분), 물(수분), 불(태양), 바람(산소) -, 즉 여러 요소들의 상호 작용의 결과이듯이, 나의 영혼도 나에게만 속한 단일한 개체가 아니다. 나의 영혼도 관계적이고 과정적이다. 영혼이 거하는 장소는 나의 몸속이기보다는, ‘상상하는 나’와 ‘상상되는 나’의 ‘사이’(between)이다. 영혼은 ‘상상되는 나’의 차원이기도 하지만, 그 상상되는 나가 상상하는 나의 연장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상상하는 나와 상상되는 나의 어느 한 쪽에 거주하지 않는다. 그 ‘사이’가 영혼의 집인 것이다.

정신 현상이 다양한 사물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벌어지는 몸의 현상이라면, 귀신 현상도 인간의 정신 내지 의식 현상과 관계있는 어떤 것이다. 그리고 귀신 현상은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누군가 귀신을 보았다고 증언하고, 누군가 그 증언을 듣고 긍정한다면, 귀신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에 강력하게 현존한다. 그 ‘사이’에 이미 자신의 집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귀신은 관계망 속에 있고, 담론 속에 있다. 귀신은 없지 않고 있다. ‘허상’이 아니라 귀신 담론의 질서를 따르는 이에게는 ‘실상’이다. 종교적인 표현을 쓰자면, 믿는 이에게 귀신은 ‘실상’이다. 귀신은 그 믿음 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귀신 담론은 없었던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귀신은 극복되어야 할 부정적 대상이기만 하기보다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유연하게 공존하며 변화되어야 할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이찬수 목사․ 종교문화연구원장)


기독교의 귀신론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마귀는 마귀다”


기독교의 귀신론은 ‘신론(神論)’을 이야기한다. 귀신과 친숙한 우리나라 무속의 경우 인간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신이 죽은 자들의 영이지만 기독교에서는 신과 별도로 악령을 구분한다. 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악한 영인 악령을 선택할 것인가가 인간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고 보고 있다. 귀신 혹은 영들의 세계야말로 궁극적으로 실체의 세계고, 인간의 영역은 고작해야 ‘선택’에 달려있다. 따라서 ‘악이 어디에서 출현했는가’에 대한 문제는 기독교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이자 숙제이다.

무속적 세계관과는 달리, 기독교적 세계관은 하나님과 마귀의 대립을 통해 악령을 설정한다. 한국의 무속과는 달리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마귀는 마귀다. 곧 선은 선이며 악은 악인 것이다.

정통 기독교에서는 유대 신명기 학파의 기본적인 전제, 곧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4-5)를 따르고 있다. 유일한 여호와, 곧 다른 신이 없이 오직 여호와만이 신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오직 그만 사랑하라는 것이다.

신이 유일하다면 악은 어디서 출발했는가 하는 점이 대두된다. 바로 여기에서 후기 유대사상의 중심주제인 ‘천사론’이 등장한다. 후기 유대사상에서는 이 악의 위계가 나타나게 되는데, 루시퍼를 정점으로 한 타락한 천사가 악령이 되며, 하나님에게 반대한 이 악령들이 악의 근원이라는 해소점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루시퍼를 정점으로 한 타락한 천사는 악령이 되어 인간의 모든 고통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이들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가 죄를 저질렀고, 죽음과 질병이 인간에게 들어왔다. 그리고 사탄의 활동으로 지상의 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이 투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이 땅으로 내려온 하나님이 된다. 그런데 예수의 사후에도 악은 계속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이 ‘악’의 시각에서 볼 때에, 비로소 ‘재림’의 사상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헬레니즘 하에서 기독교가 탄생하면서 나타난 영지주의는 초월적 신을 상정하고, 이에 열등한 창조신을 설정하며, 세상의 물질은 악한 것, 이를 초월한 영적인 것은 선한 것이라는 이분법이 등장하게 된다.

기독교가 말하는 귀신은 ‘타락한 천사’인 악령이며, 이들은 하나님과 적대적이기도 하나, 때때로 우리가 처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이들이 원인이 되기도 하다. 최후에 악령은 지옥에 갇히게 될 때, 세상은 하나님이 지배하는 절대적인 완성의 시대에 거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신정론, 종말론까지도 포함할 수밖에 없는 기독교의 귀신론 곧 악령론의 결론일 것이다. (최대광 감신대 교수)


무속의 귀신론
“인간에서 분리돼야 할 부정적 존재”


무속에서의 귀신론은 여타 종교보다 복잡하다. 인식론적으로 귀신은 부정적 의미, 부족하거나 결핍된 존재이다. 한국의 ‘전통종교’ 혹은 ‘기층종교’라고 이해되는 무속에서도 귀신은 그와 유사한 관념과 역할을 가지고 있다. 무속에서 보통 귀신이라고 할 때 그 성격은 부정적인 것이며 인간에서 분리돼야 할 존재로 인식된다. 조상숭배의 대상이 되는 혈연적 조상과 정신을 제외하고 온갖 잡귀잡신은 어르거나 달래고 혹은 위협해서 축출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대부분의 무당들은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신령들을 귀신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이들은 정신(正神), 조상, 잡귀잡신 등으로 정확하게 신령들을 구분해 부른다. 한편 하나님이 존재하듯이 귀신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1929년 조선총독부의 이름으로 간행된 무라야마 지쥰의 ‘조선의 귀신’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귀신론과 더불어 조선에 유행하던 다양한 귀신설화 및 귀신의 종류를 소개하고 있는데, ‘무속의 귀신’이라는 항목에서 무당이 신봉하는 신령을 귀신이라 표현해 무속이 귀신신앙으로 오인되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무속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세 가지로 그 존재가 분열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혼과 귀와 넋이 그것이다.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넋은 땅에 돌아가며 귀는 공중에 떠돈다. 이 귀가 일반적으로 신주로서 후손들로부터 모셔진다는 것이다. 이 요소들 중 귀와 넋은 인간과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제사를 받으면 귀와 넋은 만족하여 떠나간다. 넋은 묘지에서 3년 동안 제사를 받고, 귀는 사당에서 4대봉사를 받는다고 여겨진다. 충분한 제사 후 귀는 떠나가 버려 자손과 관계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넋과 귀가 정당한 위안을 못 받는 경우는 응집되어 귀신이 되는 것이다.

근래 들어 우리는 한국문화의 핵심 혹은 한국인의 종교심성의 기층으로서 무속이라는 좀 더 긍정적인 무속 이미지를 동시에 접할 수 있다. 민족문화 및 민중문화에 대한 관심의 붐과 함께 여러 무속제의들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하며, 많은 신학자 및 종교운동가들은 토착화 혹은 종교간의 대화모임을 통해 무속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무속이 가지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이미지는 소수 관심 있는 종교인이나 지식인 계층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무속을 긍정적으로 연구했던 학자들조차 무속의 원형적 모습의 복원에 관심을 기울였던 관계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무속을 받아들이는 해석틀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무당을 통해서는 문제의 원인과 그 해결이 신속하게 응답이 이루어지는 데 반해서 그리스도교는 너무 느려서 신도들이 답답하게 여긴다’는 보고도 있다. 무속에서 이해되는 귀신이란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으로’ 종교의 의미론적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무속의 중심상징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동규(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교), 정순덕(무녀))


불교의 귀신론
鬼 ,餓鬼, 魔, 神 모두가 교화 대상


근본적으로 귀(鬼)와 신(神)은 다른 존재이며 귀는 아귀의 줄임말로 육도 중생 중의 하나로 공포스럽고 기괴한 모습을 하고 염라왕계에 살고 있다. 신은 여러 가지 능력을 지닌 특별한 존재이기는 하나 기독교의 개념처럼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고 정령과 비슷한 존재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불교의 귀신에 관한 개념 및 사고는 일정한 틀이 있는 게 아니다.

귀신이 있다고 해도 그들이 설사 수행과 존재들의 평화로운 삶을 방해하는 못된 일을 한다고 해도 그들은 없애야 할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상태를 좋은 것으로 바꿔야 할 존재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지관보행전홍결(止觀輔行傳弘決) 권2(대정장 46,p.195c)에서는 귀신이 없다고 보는 이를 나무란다. 인도의 고승 마명(A.D. 100~160?)은 대승기신론(대정장 46,p.582b)에서 “선근의 힘이 없으면 모든 마구니와 귀신들에 의하여 어지럽게 된다. 이 경우 오직 마음뿐임을 생각하면 경계가 곧 없어져 뇌란(惱亂)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귀신의 존재는 믿으면 있고 믿지 않으면 없다고 보아도 되는 신념의 문제로 등장한다. 귀신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느냐, 즉 개념에 따라 의식과 믿음도 달라지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초기 불교 교학으로 보면 아귀가 등장한다. 다음 생으로 태어날 힘을 가지지 못한 존재로, 배고픈 귀신이라는 뜻이다. 입에 먹을 것을 가져가기만 하면 음식이 불로 변해 입과 목구멍 등을 데이고 마는 아귀는 괴로움을 받는 존재로 언급된다. 죽은 뒤 다른 존재로 생유하기 전에 머무는 단계인 중유, 그 귀신을 일컫는 ‘중음신(中陰神)’도 넓은 의미에서의 귀신이다.

불교는 교단적으로 귀신을 정리하거나 귀신들의 왕 또는 마귀나 마왕을 처단하는 등의 독단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율장에 그들이 산다고 하는 풀과 나무를 함부로 베거나 불태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참으로 요즘의 우리에게도 좋은 교훈으로 작용한다. 즉 낮은 수준의 존재가 귀신이므로 우리 스스로 수행을 통해 존재의 위상을 업그레이드 하듯이 그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귀신의 존재를 과장하거나 조상 또는 가족의 영혼이 제대로 천도되지 못했다는 것을 강조하여 마음이 굳세지 못한 이들에게 엉뚱한 경험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조상님에 대한 천도재는 앞으로 추모법회로 그 의미를 높여서 지내야 할 것이며 본래 재(齋.uposadha)의 의미를 살려야 한다. 그리고 마음의 병 또는 귀신과 관련되었다고 하는 이들에 대해서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는 경우에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것이 못 된다는 것 또한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내가 따르고 있는 종교 또는 내가 무엇이든지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자긍심은 좋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법현스님․ 태고종열린선원 원장․ KCRP종교간 대화위원)


유교의 귀신관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해야 한다”


귀신에 대한 유교적 견해는 하나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실로 다양하다. 그러나 공자와 주자의 귀신관은 휴머니즘을 기초로 하되 신비한 귀신 현상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인식론적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편적 진리, 혹은 ‘하나의 이(理)’에 대한 경건함을 전제로 해야만 제사에서 귀신의 감격(感格)과 같은 신비한 현상의 경험이 비로소 설명 가능하게 된다.

공자의 “산 사람도 잘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기겠느냐? 삶도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느냐?(未能事人, 焉能事鬼? 未知生, 焉知死? 논어「선진」)” 는 말은 인간의 죽음과 그 이후에 잔존하는 어떤 것으로서의 귀신에 대한 그의 휴머니즘적이고 현세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귀신보다는 현재 살아 있는 인간, 그리고 곧 다가올 죽음보다는 지금 당장의 삶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라는 그의 견해는 이후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줄곧 많은 사람들의 표준적인 지침으로 간주되었다. 귀신에 관한 그의 또 다른 유명한 언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 해야 한다(敬鬼神而遠之. 논어「옹야」).”

여기서 공자는 악귀(惡鬼) 같은 오늘날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귀신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허구적인 것으로서 배척했다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공자는 제사지낼 때 항상 “귀신이 있는 것처럼 지내야 한다(논어 「팔일」).”고 말할 정도로 종교적 의례에 있어 극도로 경건함을 유지하였다. 공자는 상당히 종교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제자 재아(宰我)가 공자에게 “저는 귀신이라는 말을 들어 보기는 했습니다만,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묻자 공자는 다음처럼 대답했다. “기(氣)란 신(神)이 왕성한 것이고, 백(魄)이란 귀(鬼)가 왕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귀와 신을 합하여 말해야만 지극한 가르침이다. 여러 생물은 반드시 죽고,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니, 이를 일러 귀라고 한다. ‘인간에 있어’ 뼈와 살은 아래로 스러지고, 음(陰)은 들판의 흙이 된다. 그 기는 위로 발현하여 날아가서, 환히 빛나고 향기가 서려 올라 ‘기분’을 오싹하게 하니, 이것이 만물의 정(精)이고 신의 드러남이다.”

여기서 공자는 귀신을 하나의 실체적인 어떤 것으로서 말한 것이 아니라, 당시 일종의 유물론적인 사상인 기(氣)의 음양론(陰陽論)에 의거하여 설명하고 있다.

유교는 과학을 배척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철학에 도입했다. 귀신에 대한 설명도 이와 같은 과학적 기초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理)에 대한 신념이라는 입장, 달리 말하면 인식론적 입장은 객관적 실재에 관심을 두는 종교와 과학의 대립을 지양하고 종합할 수 있는 유일한 입장이라고 여겨진다. (김우형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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