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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찬의 ‘기도’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2/18 [13:20]
영(嶺) 마루의 바위가 되게 하소서

황금찬의 ‘기도’

영(嶺) 마루의 바위가 되게 하소서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2/18 [13:20]

기 도

내게 눈을 없이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늦가을 버섯 같은 귀도
지금은 있어서 오히려 불행합니다.

― 주체 못할 사연詞緣일 바에는
차라리 벙어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바람, 불어오고
다시 바람 불어가는 어느 영嶺 마루에
의연히 앉아 있는
바위처럼 되고자 원願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느니
천국이 저의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느니」
⋯⋯주여?⋯⋯

이제는 체온이 자꾸 식어 갑니다.
이러다가 그대로 의식을
모를 것 같습니다.


주여!
당신의 마지막 기도처럼⋯⋯
아, 돌이고자 원합니다. 
(-<기도> 전문) 

영嶺 마루의 바위가 되게 하소서


기도는 절대자를 향한 간구이자 기원이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한 절대자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도는 마치 탯줄과 같아 소통의 역할을 한다. 광대무변한 우주와 변화무쌍한 자연으로 상징되는 절대자 앞에 인간은 한낱 촛불이나 낙엽과 같은 극히 미세한 존재로 항상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나 물질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으면서도 결국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지닌 채 돌아서야 하는  일이나 불가항력적인 운명이 얼마나 많은가. 기도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식하고 절대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청원이자 간구인 것이다.

위에 인용한 황금찬의 작품은 시적화자가 절대자 앞에 간구하는 기원의 동기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성서 구절인「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느니/ 천국이 저의 것이요」나「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느니」와 같은 구절의 등장으로 보아 절대자 혹은 그리스도와의 관계 회복을 기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예수의 복음 전파로, 인간에게 세상의 속된 것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세계를 소망하라는 말씀이다.

따라서 시인은 세상의 모든 속된 것을 버린다. 심지어 자신의 유한한 육체마저 과감하게 포기한다. 절대자 하나님과 관계를 위해서는 ‘눈’도 ‘귀’도 오히려 “있어서 오히려 불행”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고백한다. 자신 감당하지 못한 바에는 차라리 ‘벙어리’가 되게 하여 달라고 간구한다. 이는 자신의 육체적인 감각이 절대자를 향한 믿음과 신뢰 앞에 누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유한한 육신을 저버리면서 시인이 간구하는 것은 “바람, 불어오고/ 다시 바람 불어가는 어느 영嶺 마루에/ 의연히 앉아 있는/ 바위처럼 되고자 원願”할 뿐이다. 바람은 결국, 시련을 의미하고, ‘영嶺 마루’는 넓은 세상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영화로운 높은 산을 뜻한다. 이런 시련과 영화가 오고가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화자가 간구하는 것은 단지 ‘바위’로 상징된 변함없는 믿음이다. 바위는 동양적 개념으로 소나무나 대나무와 같이 일편단심 충절을 의미한다. 바위는 성서적인 개념으로는 반석과 동일하다. 반석은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모세의 반석 이타二打가 그리스도의 불신을 가져왔고, 그렇게도 소망하는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입성하지 못한 채 광야에서 유리방황하게 된다. 시적화자가 바위가 되겠다는 신념은 자신이 결코 반석인 그리스도가 되겠다는 과분한 욕망이 아닌, 그리스도를 향한 불변의 믿음을 강조한 동양적 의지의 표상인 것이다.

결국 시적화자가 언제까지나 바람 부는 ‘영嶺 마루’의 바위가 되겠다는 결의는 결국 절대자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 충절의 의지로 변함없는 한 생애의 삶을 살고자 간구하는 기도인 것이다.

작가소개 : 강원도 속초 출생. <현대문학>에 시 「여운」으로 등단. 일본 유학 중 귀국, 강릉과 서울에서 교편생활. 60년대 시동인지 <시단> 동인으로 활동. 시집으로 <현장>(1965) 외 <나비제>(1983) 등 30여 권 상재. 초기에는 서정성을 바탕으로 자연과 현실에 대한 성찰의 시를 썼으나 뒤에는 내면적인 종교시에 관심을 가졌다. 시문학상, 월탄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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