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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주의 성경 핵심 난제 연구
하나님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가
성경핵심난제연구
기사입력: 2014/03/05 [11:12]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이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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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퍼하지 말고,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언의 일부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죽음을 필연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운명은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태어날 때부터 운명은 타고 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운명을 필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초인간적인 힘(신)에 의해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종교마다 운명에 대한 해석 달라


운명에 대한 관념은 형이상학적 경향과 종교적·도덕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인간의 운명을 예정적으로 생각하는 종교는 기독교와 유교다. 기독교에서는 예정을 선택과 유기의 두 부분으로 나눈다. “하나님은 인류의 얼마를 예수 안에서 구원하기로 작정하고, 인류의 얼마는 간과하기로 작정하여 그들의 죄를 벌하기로 결정한다.”고 정의한다. 선택할 자와 유기할 자가 이미 결정돼 있다는 얘기다.
 
예수는 제자가 ‘어떤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라고 묻자,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다’(마 19:26)고 답했다. 인간의 모든 일은 하나님에게 달렸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공자도 “죽고 사는 것은 명에 있고, 부자와 귀하게 되는 것은 하늘에 있다.”고 말했다. 명심보감 ‘순명편’에는 “세상의 모든 일은 분수가 이미 정해져 있거늘, 세상 사람들이 부질없이 스스로 바쁘다.”고 적고 있다.

이와는 달리, 불교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조종하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이 업력(業力)의 영향은 받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석가는 법구경에서 “자기만이 자기의 주인이다. 자기 이외에 누가 따로 주인이 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자기를 잘 다스린다면 얻기 힘든 주인을 얻으리라.”고 역설했다. 인간 스스로 자기 업의 창조자임을 강조한 대목이다.

그렇다. 운명은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운명이 신에 의해, 타력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인간의 삶은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은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 되는가를 소상히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후 당신의 영을 넣어주었고, 만물을 다스리라는 축복까지 내린 후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간곡히 타일렀다. 그러나 인간 시조가 하나님의 말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자, 하나님은 저주하고 에덴동산에서 쫓아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타이르고 주의를 주었지만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또한 아담의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주의를 주었지만, 가인이 아벨을 쳐 죽이자 그를 저주했다.
 
하나님도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왜 그랬을까. 자연이 하나님처럼 자존하듯, 사람도 스스로의 지혜와 노력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로봇이 아닌 자율적인 존재(창 2:17)로 지었다. 성경 속의 하나님은 세속의 부모와 다르지 않다. 부모는 자식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타이르며 스스로 깨닫기를 바랄 뿐, 자식의 손과 발을 묶어 놓지는 못한다. 선으로 가든 악으로 가든 그것은 자식이 결정한다. 운명은 인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 샤갈作 ‘손가락이 7개인 자화상’     © 매일종교신문

“운명은 자신에 달렸다”가 대세

우리의 생각은 우리를 이끌어가는 길잡이다. 생각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생각은 방향성을 띤다. 뱀의 몸통과 꼬리가 머리가 가는 방향을 따라가듯 인간은 생각에 따라 행동한다. 설혹 신이나 업(業, 전세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서 받는 응보)이 인간의 운명에 간여한다고 하더라도 선택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다.

인간에게는 육체에서 오는 생각이 있고, 영혼에서 오는 생각이 있다. 이 두 생각을 분별할 줄 알아야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다. 육체중심, 나 중심한 생각은 사심(邪心)에서 오고, 영혼중심, 타인중심의 생각은 본심에서 온다. 그러므로 생각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사심에서는 자신의 영혼을 위하고, 남을 위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사심은 악의 근본이다. 이러한 자기의 실상을 바로 알아야 바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생각은 에너지다. 좋은 생각은 선의 기운을 만들어내고, 나쁜 생각은 악의 기운을 토해낸다.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생각이 사람을 선화시키고, 악화시킨다. 비유컨대 생각은 씨고, 마음은 밭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은 선한 생각이든 악한 생각이든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몸을 통해 행동하게 한다. 마음은 생각의 결정에 따르고, 육체는 마음의 결정에 따를 뿐이다. 생각은 프로그램이고, 몸은 기계에 불과하다. 생각이 창조와 파괴를 결정하고, 삶과 죽음을 결정한다.

인간은 자주적인 존재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게끔 되어 있다. 결과 또한 자신이 책임지게 된다. 늘 생각의 흐름을 관찰해야 한다. 매사에 올바른 생각과 판단, 실천이 뒤따라야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키 워드는 하나님이 넣어준 본성인 양심에 있다. 다른 그 어떤 것에 의존하면 인간의 정체성을 잃고 자기 인생을 못 산다.

대개 사람들은 종교나 신(마귀나 잡신)에 의존해 살려고 한다. 종교마다 자기 종교의 가르침이 옳다고 강조하며, 자기 종교에 귀의하기를 원한다. 잡신들 또한 사람을 이용해 자기 의지를 실현하려고 한다. 종교지도자 중에는 스스로 창조주 하나님이니, 성인이니 사칭하며 사람의 마음을 빼앗고, 예지와 치유 능력을 보여주며 자기 사람으로 끌어들인 뒤 욕망의 도구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이 같은 행위는 자연 법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능멸하는 사악한 짓이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 외의 다른 신은 악신으로 규정한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가장 큰 죄악으로 규정했다. 창조주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준 양심대로 살라고 가르치고 있다.


생각과 행실 고치면 운명도 바뀌어


명리학(命理學)에서 사주팔자는 선천적인 명운과 후천적인 신운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명운은 내 운명이 가야 할 길, 신운은 성향이나 현실에서 바꿔야 할 길로서 내 사주팔자의 득이 되는 것과 해가 되는 것을 말하고, 득이 되는 길을 제시한다. 작명가들 또한 이에 준해 작명한다. 무당이나 점쟁이들은 신의 힘을 빌려 사람의 액운을 물리치고 운명을 바꿀 ‘굿’을 하거나 의식을 행한다.

사람은 타고난 천성도 무시할 수 없고, 환경과 교육도 무시할 수 없다. 사람은 선한 자와 악한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로 인해 결정된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본능적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같은 환경에서도 유혹을 이겨내고 군자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

예수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 3:3)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넣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들어올 수 없다. 누군가에 매여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노예가 되기를 자청하는 것이 된다. ‘우상숭배하지 말라’ ‘무당과 점쟁이를 멀리하라’ 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중히 여기고, 무엇 때문에 사는가.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이 운명을 좌우한다. 욕심은 파괴적인 악의 기운이며 만고의 근원이다. 욕심은 마음을 흐리게 하여 악화시키고, 마음의 질서를 파괴한다. 사람은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마음공부를 하려면 먹고, 자고, 입고, 즐기는 본능적인 쾌락을 멀리해야 한다. 육체 생활은 최저로, 정신생활은 최고로 해야 한다. 정신은 썩고 육체만 번지르르하면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되 죽은 자(눅 9:60)이다.

자신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한 번 먹은 마음(계획)은 반드시 실천에 옮기고, 이를 어길 시 그에 합당한 벌을 가한 후 다시 실천하는 철저한 자기 관리가 요구된다. 자신을 길들이지 않고,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면 망나니나  폐인이 되고 만다. 남을 교육시키기 전에 자신부터 닦아야 한다. 사람에게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다. 내가 나를 꾸짖고, 타이르며, 삿된 생각을 주저앉힐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본능의 욕구를 극복해 진정한 자기 몸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나의 운명이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지 않고,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 운명은 내가 만들어 가야 한다. 삿된 마음과 그릇된 행실을 고치면 얼마든지 좋은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 예수는 먼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안을 깨끗이 하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지고 행실도 깨끗하게 된다(마 23:26)며 속사람의 단속을 당부했다. 하나님은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출 33:19)이다. 행복한 삶을 누리고 대자유를 얻으려거든 하나님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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