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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우상숭배 배척’ 본질에서 벗어났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3/10 [07:32]
성경핵심난제연구

기독교의 ‘우상숭배 배척’ 본질에서 벗어났다

성경핵심난제연구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3/10 [07:32]

▲ 목 잘린 단군상.     © 매일종교신문
 
세상의 많은 종교 중에서 기독교는 유별나다. 다른 종교의 신과 신앙을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 ‘사랑의 종교’라고 강조하면서도 그 사랑은 성경의 가르침에 합당해야만 한다. 지극히 제한적인 사랑이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우상숭배를 가장 큰 죄로 규정한다. 성경에는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신 13:5), ‘무당을 살려 두지 말라’(출 22:18), ‘다른 신에게 희생 드리는 자를 멸하라’(출 22:20)는 말씀도 있다.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우상숭배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이스라엘민족에게 내려준 십계명에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라.’ ‘어떤 형상이든 만들어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고 당부한다. 즉, 하나님 외의 어떤 신도 숭배해서는 안 되고, 어떤 형상에도 절하거나 섬겨서는 안 된다고 못 박은 것이다.
 
“우상숭배 말라” 하나님의 지상명령
 
출애굽기에서는 이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이 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20:4)고 한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20:23).
 
그러나 믿음이 여린 이스라엘인들은 형상을 원했다. 여로보암이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우리 신’이다(왕상 12:28)고 숭배하자, 하나님이 진노해 그의 자손을 지면에서 끊어 멸망케 하였다(왕상 13:44).
 
철학자 도올 김용옥은 이러한 하나님과 구약성경에 반발하여 ‘하나님은 유대민족의 신’이다 규정하고 ‘구약성경의 폐기’를 주장한다. 그는 “구약성경은 유대인들의 민족 신인 야훼가 유대인들이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믿는 조건으로 애굽의 식민에서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주겠다고 유대인만을 대상으로 한 계약”이라며 “예수의 출현으로 새로운 계약(신약)이 성립된 만큼 구약은 당연히 효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구약성경을 믿는 것은 성황당을 믿는 것과 다름없다”고 힐난했다. 사실상, 인간의 눈으로 보면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지극히 독선적이고 무자비하게 비쳐질 뿐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정신이다.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와 하나님뿐이다. 다른 어떤 형상이나 영적 존재도 숭배 대상이 되지 못한다. 우상숭배는 믿음의 기준을 잃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 됨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되므로 우상숭배는 절대로 행해서는 안 될 중죄다.
 
일부 개신교인 중에는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과 교회가 만든 신조대로 타 종교의 불상이나 단군상을 우상으로 여기며 훼손하기도 하고, 한 뿌리인 천주교의 성모상이나 예수상, 그리고 미사도 우상숭배로 여기고 배척한다. 또한 국기에 배례하고, 죽은 자와 영령에 고개 숙이거나 사진을 놓고 분향하는 것도 우상숭배라며 금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교회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서울의 전망 좋은 집에 사는 신도가 교회 지붕에 있는 십자가의 빨간 불빛을 보면서 항상 감사기도를 드리고 살았는데, 어느 날 공터에 절이 세워지더니 절 표시(卍)가 그려지고, 밤새도록 불을 밝히고 있어 버티칼을 쳐서 밖이 보이지 않게 하였다.’ 이에 대해 ‘사찰이 이사를 가거나 없어질 때까지 기도하는 게 나을 것이다’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라’는 댓글이 달려 실소를 금치 못했다.
 
마귀 명령 좇는 것이 ‘우상숭배’
 
신약성경은 우상숭배 개념을 더 심화시켜 놓았다. 예컨대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을 더 ‘신뢰’하거나 더 ‘사랑’하는 것도 우상숭배에 포함시켰다. 예수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마 6:24)고 말했다. 이는 재물을 절대시 여기는 것도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외적인 형상을 숭배하는 것과 동일시한 것이다. 사도 바울의 “탐심은 우상숭배다”는 말도 예수의 말을 뒷받침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숭배란, ‘하나님 외의 다른 신들과 그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 ‘하나님 보다 사람이나 돈, 쾌락 등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은 왜 이처럼 우상숭배에 대해 단호했던 것일까. 이 문제를 풀어야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원인은 마귀 때문이다. 성경에는 ‘간교’한 뱀인 타락한 천사로 비유돼 있다. 이 천사는 인간 시조에게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당부한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유혹하여 타락시켰다.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 대신 세상의 임금이 되어 인간을 종으로 부리며 악으로 내몰고 있다. 마귀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고 사람을 주관하면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려는 사악한 존재다.
 
마귀는 어떻게 세상의 신, 임금의 자리에 우뚝(?) 섰을까.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가르침과 반대로 가게하고, 그릇된 풍조를 퍼뜨려 사람의 마음을 변질시켰기에 가능했다. 우상을 섬기게 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 것이다. 우상숭배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 돌려 종으로 만들려는 마귀의 술책이요, 계략이다.
 
기독교인들은 불상이나 단군상을 모시는 행위를 우상숭배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위험한 우상은 ‘살아있는 인간’을 숭배하는 것이다. 마귀는 자신과 짝이 맞는 사람에게 침투해 사람을 ‘인류의 태양’이니, ‘천황’이니, ‘하나님’이니, ‘인류의 부모’라고 떠받들게 하는 우상화놀음을 벌이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 대신 인간을 숭배하라는 것이다. 인간이 신의 경지에 올라가려고 하는 것은 타락한 천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의 임금이 되려고 한 것과 다름없다. 인간의 부모인 하나님을 버리고 마귀나 형제를 떠받드는 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할까.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씨인 성령으로 창조된 인간의 영혼을 쭉정이로 만드는 행위다.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금한 것은, 하나님은 천지만물과 인간의 창조주로서 오직 당신만이 인간의 신(사 43:10~11)이기 때문이고, 인간은 하나님의 선의 기운을 받지 않으면 선한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고 다짐한다.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 10: 19~21절)고 말씀하고 있다. 우상숭배는 곧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 것은 아브라함에 대한 믿음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하려고 하자 하나님은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않았으니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하며 감동하였다.
 
이웃종교 탓하기 전 자신을 돌아봐야
 
현대인들은 수많은 우상숭배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갖가지 우상에 현혹되어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대지’의 작가 펄 벅은 현대인들의 3가지 우상으로 돈, 권력, 쾌락을 꼽았다.
 
성경은 우상숭배는 사람들이 하지만 그 배후에는 어둠의 주관자들과 마귀가 조종하고 있다(엡 6:12)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개탄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다.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롬 1:23~25) 성경은 우상숭배자들은 영영한 유황불 못에 떨어질 뿐 아니라, 구원도 없다(계 21:8, 22:15)고 단호하게 밝혀놓았다.
 
우상에 빠지면 우상의 노예가 된다. 하나님을 뒤로 밀치고 하나님 자리에 서려는 마귀가 우리를 주관하기 때문이다. 악당에게 조건이 잡히면 그에게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결국 허상에 모든 것을 바치고, 돈이나 권력, 쾌락에 휘둘리다가 인생을 망치게 된다. 우상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마귀의 유혹이다.
 
우상숭배의 근원을 파헤치면 욕심이 도사리고 있다. 욕심이 우상을 만든다. 사도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곧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 3:5~6)고 권면하고 있다. 마귀가 사람을 주관하는 방법은 물질과 쾌락을 통해서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돈과 쾌락임을 알 수 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오늘날 기독교(개신교)인들이 이웃종교가 모시는 신상(神像)에 대해 이를 질타하거나 파괴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발상이다. 형상에만 치우친 나머지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다. 이보다는 자신의 교회와 자신의 삶에서 우상을 좇는 부분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를 아들이라 말씀하는데도 굳이 예수를 하나님이라 규정하는 것과, 십자가를 받드는 것도 우상숭배가 아닌지 재고해 봐야 한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예수의 가르침을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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