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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손양원 목사의 설교
기도하는 사람이 되자(눅 11:1-13, 살전 5:17)
기사입력: 2014/04/05 [07:26]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최정미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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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1902~1950) 목사는 1938년 평양신학교 졸업 후 소록도 나병환자들의 수용소인 애양원교회에 부임, 1940년 신사참배 거부로 여수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8·15광복으로 출옥했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으로 동인, 동신 두 아들을 폭도들에 의해 잃었으나, 가해자들의 구명을 탄원하여 양자로 삼음으로써 세상을 감복시켰다. 6·25전쟁 때 나환자들과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군에 의해 총살당했다. <편집자주>

▲ 애양원의 교인들과 기념촬영한 손양원 목사(앞줄 가운데).     ©

  
기도란 하국(何國)에나 하인(何人)이라도 하기는 하나 진정한 기도란 기도의 주인이신 주께서 가르치신 대로 하는 기도만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기도는 오직 기독교에서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신령적 동물(神靈的 動物)이기 때문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아니 영적 인간은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는 것처럼, 새가 공기를 떠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에는 사이비(似而非)한 기도가 있으니 인간적 기도인데 그것은 위급(危急)할 때에만 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란 신, 인간(神, 人間))의 교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 유무(罪有無), 사업(事業)의 성패(成敗), 감정(感情)의 희비(喜悲)를 불고(不顧)하고 해야 할 것은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도로서 성취하며 인생의 진가는 기도 유무(有無)에 관계됩니다.

 

구해서 얻어 쓰는 것이 인생

 

하나님께서 주시기는 주실 것이로되 약속하신 말씀이 있으니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하시었고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삼 대의(三 大義)가 있으니 즉
첫째, 영교하게 하기 위함이요
둘째, 구해서 쓰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함이요
셋째, 귀한 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에서 과연 부족한 것도 많고, 죄악도 맹렬하고, 구할 일도 하도 많은데, 어찌 탄식만 하겠느냐! 불만한 것에 탄식하는 자 많으나 간구하는 이 드물고, 죄악이 넘침에 겁내는 이 있으나 이길 능력 주시라고 기도하는 이 적고, 사업 계획을 세우는 이 많되 완성하여 주시기를 진정하게 믿으며 구하는 이 적습니다.

옛날부터 유명한 기독 인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모든 일의 방법은 별것이 아니라 모두가 구하므로 주시어서 얻은 것에 불과합니다.     

신자(神子)이신 예수께서도 재세 시(在世時)에 잡수시기를 잊고 주무시기를 잊으시면서 구하시는 생활을 하셨는데 우리들이랴!     

사백오십 명을 단신으로 이겨낸 엘리야도 기도로써 했고, 천병만마(千兵萬馬)를 홍해 속에 몰아넣은 모세도 기도로 이루었습니다. 만나를 주신 것도,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된 것도 기도에서였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도 기도였으니 믿지 못함은 기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고아원의 대 성공자로 알려진 죠지 뮬러는 기도로써 이 일을 이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 중에 대죄는 기도하지 않는 죄입니다. 개인적으로 기독자의 성패가 기도에 있고 기독교의 흥망이 기도에 있으니 실로 기도 여하에 좌우된 주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대의 기도를 하시었습니다. 

    
기도 안하는 것이 죄 되는 이유 

    
(1) 불순종의 죄가 됩니다.
기도는 자유가 아니라 임무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대사(二大事)가 있나니 '하라'와 '말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라'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이 죄요, '말라'하는 것을 하는 것이 죄가 됩니다. 성경에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고 항상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까지 해서 명령하신 것인데 이를 행하지 않는다면 벌써 죄인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내가 하겠다는 자만죄(自慢罪)가 되는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떤 무엇을 이루어 주시기를 고대하는 것인데 기도가 없다면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요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이기 때문에 마치 탕자와 같은 자입니다. 만사 만행에 기도는 머리가 되어야 하고 꼬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기도하지 않는 자는 자만죄에 빠지게 됩니다.     

저 유명한 자연주의자 룻소는 그의 종교관에서 이런 의미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다른 진리를 믿음과 같이 신을 잘 믿는다. 왜냐하면 신과 불신은 이 세계에서 내 뜻을 가지고 지배키 어려운 까닭이고 내 이성이 동요됨을 따라 내 신앙이 장구히 휴지(休止)키 불능한 연고니라. 나는 신과 더불어 말하고 그의 신적 본질로써 나의 모든 능력을 침범(侵犯)한다. 저의 은혜를 기다리고 그 은사를 감사한다. 그러나 나는 신에게 기도하지 아니한다. 내가 저에게 무엇을 원하겠느냐? 나를 위하여 일의 진행을 변할 수 있겠느냐? 나를 위하여 기적을 행하시겠느냐? 완전무결하신 저의 지혜로 건설되고 저의 섭리로 말미암아 유지되는 질서를 사랑할 처신인데 도리어 질서를 어지럽게 되기를 원할 것이냐? 이러한 조폭(粗暴)한 기원(祈願)은 상찬보다도 벌함이 당연하다. 자애(慈愛)하시며 선하신 신이시여, 내가 당신을 신뢰하는 바이오니 당신의 의지대로 성취코자 함이 나의 무상한 소원이외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일견 신앙적인듯 하나 실은 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월신교(超越新橋)라는 파의 사상을 벗어나지 못한 감이 있는 것입니다.     

(3)하나님과의 절교의 죄가 됩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기도의 줄을 놓으러 오셨습니다. 즉 신과 인간 사이에 연결하고 교제하게 하려고 오셨는데 기도하지 않으면 이것이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결코 자기 소원성취를 구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영적 교제까지 나가야 합니다. 기도는 그래서 영적 호흡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교(靈交) 없으면 벌써 죽은 자입니다.     

에덴동산이 좋았던 것도 하나님과 사귀는 곳이었기 때문이고 천당이 좋다는 것도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는 까닭인 것입니다.     

(4) 향상심(向上心)이 없는 자가 됩니다.
기도해야 영적 생명이 자라는데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영적 생명이 자랄 수 있겠는가? 믿음 없다고 탄식하는 이도 있으나 탄식만 하지 말고 기도하라.

영적 생명이 자라갈수록 기도가 더욱 많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힘 얻도록 기도해야 하고 기도의 힘 잃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에 취해서 사는 자 되자 

    
나의 안락은 기도에 있습니다.
나는 기도로 살다가 기도로 마치려고 합니다.
하루의 모든 생활 중 제일 가치 있는 시간도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시간과 장소의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바빠서 기도 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 자여, 어느 것이 더 급하며 더 요긴한 사건인지 생각해 보라.
일 중에서 제일 큰일은 기도하는 일이며, 죄 중에 가장 두려운 죄는 기도 안하는 죄입니다. 

모든 일에 원동력은 기도이어야 하며, 모든 죄악이 발생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가 있어도, 실패를 했더라도 슬퍼도 쉬지 말고 기도하면 그 모든 문제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니 기도에 취해서 삽시다.     

과연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 교제이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되는 길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손입니다. 우리는 나를 잊고 기도에 힘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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