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21세기 무속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7/18 [11:45]
장정태 박사의 지상강좌

21세기 무속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장정태 박사의 지상강좌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7/18 [11:45]

▲ 장정태 박사(삼국유사연구원장)가 7월 17일 대우재단빌딩에서 개최한 한국고서학회의 월례발표회에서 ‘21세기 무속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매일종교신문


강의를 시작하며-문상은 가지 않지만 ‘시달림’ ‘천도제’ 하는 것은 결국 ‘돈’
    

임홍순 교수님께서 저를 소개해주셨듯 저는 1991년 12월 7일 삼국유사 전문연구기관인 ‘삼국유사연구원’을 설립운영중입니다. 학위논문 역시 “한국불교와 민간신앙 습합-삼국유사를 중심으로-”입니다.     

이번 발표가 제 전공인 삼국유사가 아닌 무속을 선택한 이유는 삼국유사는 여러 선생님들이 접하기 쉬운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비해 무속은 접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고서학회 성격과 다르지만 과감하고 무식하게 선택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하나 고민이 생겼습니다.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할 것인가….    

무속의 특징은 빙의라고 합니다. 무속용어로 ‘제적이 아니다’ ‘제 정신이 아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행동’ 라고 하는데 ‘그분이 오시면’ 시간을 넘길수도 있고 당장 그만둘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현대용어로는 지름신이 강림하셨다고 합니다. 빙의현상이 일어난 무속인들의 행동은 ‘할아버지’ ‘장군님’이라는 각자의 몸주신에게 핑계를 됩니다. 무속인들은 각자 몸에 신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부모 형제 상을 당해도 문상을 가지 않습니다. 설령 간다해도 신위를 향해 절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신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고 깨끗한 몸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는 일 조차 삼갑니다. 그런데 천도제는 합니다. 상호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불교계 승려들이 신자들이 돌아가시면 문상가는 일을 꺼리면서 ‘시달림’은 열심히 하는 모습과 같이 말입니다.

결론은 문상을 가면 돈을 쓰지만 ‘천도제’ ‘시달림’은 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브라질 국민에게 충격을 준 월드컵 축구, 지난 서울에서 치러진 경기에 이어 거리문화라는 새로운 우리 문화를 체험했습니다. 높은 건물 옥상에 설치된 네모난 전광판 앞에 모인 사람들의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굿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굿 판에 굿상도 네모난 상입니다. 그 앞에 무당이 공수를 주고 그를 바라보면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 긴 한숨과 아쉬움 그 모두 굿판과 거리 응원 모습이 너무 흡사했습니다. 
    

춤을 춘다는 독특한 무속만의 의례를 굿
    

무당의 무(巫)는 “긴 소매의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工) 양옆에 두명의 사람(人 人)이 있는 모습이다.

혹자는 두명을 말하는데 남녀를 상징하고,춤을 추는 모습을 하는 것은 춤을 추는 행위를 하는것이 무당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정의를 한다.

무당은 글자에서 알 수 있듯 하늘과 땅,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중간자, 사제의 역활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다만 다른 종교 사제들과 다르게 춤이란 의례를 통해 사람들에게 접근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아울러 또 다른 점은 미래에 대한 일반인들의 궁금증을 신에 이름으로 대리자가 되어 들려준다는 것이다.    

춤을 춘다는 독특한 무속만의 의례를 굿이라고 한다. 굿은 재가집(신도 집)에서 치뤄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몇년전 부터 기도가 잘되는 영험한 곳,인적이 드믄 곳에서 치뤄지고 있으며 그런 시설물을 흔히 굿당이라고 한다. 대다수 굿당은 사찰에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사, **암 식으로 표기를 하고 일부는 정식종단에 사찰 등록이 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사암연합회등 지역내 불교행사에 당당하게 참석하기도 한다. 과거에도 일부 무속인들은 창건주 보살이란 이름으로 개인사찰을 꾸며놓고 스님을 고용하고 운영했다. 이처럼 직접 승려행세는 하지 않았다.정식 서류상 사찰의 형식을 갖춘 경우 주인은 주지스님이 되는것이다. 유발승, 교림 여기서 조금 발전을 하면 독자적인 종단을 창종 종정스님이 되고 신년법어는 물론 봉축법어도 내리고 있어 외형적으로 완벽한 불교의 한 종파로 행세한다. 교학적으로는 불교와 전혀 인연 없는 분이 하루아침에 대종사에 법계를 받고 금란가사를 입는 경우도 있다.
    

굿당 운영하는 당주는 사장님, 무속인들은 삼촌,조카,이모… 
    

굿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흔히 당주라고 부르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편하게 사장님이라고 한다. 이곳 사람을 무속인들은 삼촌,조카,이모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굿을 하는 무당에 입장에서는 잠시 굿을 하는 동안 장소를 제공받는 형식을 취하는데 방마다 홋수가 있어 언듯보게 되면 숙박업소 같다. 사실 숙박업처럼 운영한다. 하루 방을 빌리는데 얼마 하는 식이다. 그리고 저녁에 굿을 시작하면 적어도 다음날 오전 중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원칙이다. 여관운영 방식과 같다.    

다만 다르다면 식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여인숙, 여관에서 아침에 떠나는 객을 위해 아침을 제공하기도 했으니 그런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굿을 하는 무당의 굿 판에 가면 한참 신명이 오른 무속인 이라도 반갑게 인사를 한다. 식사전후라면 식사를 했는지 손으로 밥 퍼먹는 시늉을 하고 먹고 왔다는 눈짓을 보내면 차라도 한잔 하라는 손짓을 한다. 그리고 바쁜 로 미리 자리를 떠난다면 손으로 전화 는 모습을 하며 다음에 만날 약속을 한다. 굿이 진행되는 시간에도 무속인들은 참으로 바쁘게 일을 한다. 오고가는 사람 한사람 한사람 챙겨야 하니, 굿은 무속인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 중 악사가 있다. 격정적인 순간 망아적 상태로 인도하는 그들 역시 그렇다. 장구를 치고 피리를 불다.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고 차도 마시고, 과일도 먹는다. 그리고 옆 사람과 잡담을 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처음보는 사람은 그런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장엄하고 성스러운 어딘가 모르게 상대를 위압하는 분위기를 인위적인 조작으로 연출하는 기존 종교에서는 도저히 상상을 할 수없는 분위기, 그러나 무속에서는 가능하다. 아니 이상하게 보는 그들을 도리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그 곳 정서다.
    

제도권 종교와 무속의 가장 큰 차이는 위엄을 만들지 않는 다는 것
    

굿을 하는 무당은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다. 불사거리에서는 목에 108염주를 걸고 홍가사를 걸치고 바라를 치며 승복을 입는다. 장군거리에서는 위엄을 갖춘 장군에 복장을 한다. 굿 청에 처음온 사람이라도 대충 무슨 거리(굿이 이루어 지는가)하는지 눈짐작으로 알 수 있다.

장군 복장을 한 무속인은 여무가 되었던 남무가 되던 그 순간 장군이 되어 호령을 하게 된다.     

제도권 종교와 무속의 가장 큰 차이는 인위적인 조작을 통해 위엄을 만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조명등 하나 빛의 각도를 이용 연출을 하고, 도들 보다 높은 단상을 통해 하염없이 내려보며 상대(신자)를 제압하려는 행위도 과거의 선배 성직자들의 무용담을 들려주며 자기 과시도 할 줄 모르는 것이 무속의 사제다. 그러나 뜻 글자인 한자를 통해 무속인은 오래전부터 성직자 그것도 하늘의 위엄을 통해 신탁을 전하는 대리자였다.    

* 이하 150매 분량의 무속론과 실태에 관한 강연은 추후 매일종교신문 인터넷신문과 '매일종교신문 newsclip'에 연재합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많이 본 기사
1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