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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기 성균관장 대담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7/18 [22:55]
현대화를 통한 민중에 도움되는 ‘민중유교’로 일어서겠다

서정기 성균관장 대담

현대화를 통한 민중에 도움되는 ‘민중유교’로 일어서겠다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7/18 [22:55]

▲ 7월 14일 성균관 관장실에서 대담을 나누는  서정기 성균관장과 이옥용 발행인     © 황광현 기자
  
■ 대담자 : 서정기 성균관장 vs 이옥용 발행인
■ 사회 : 윤영호 교수
■ 일시장소 : 7월 14일 성균관 관장실 
■ 사진=황광현 사진전문기자 


Intro

 
서정기 성균관장과의 대담은 7월 14일 성균관 관장실에서 1시 30분 동안 ‘유교사상’, ‘현실문제’, 그리고 오늘날 한반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인 ‘남북통일과 평화’에 대한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날에도 서 관장은 치포관(緇布冠)과 심의(深衣) 차림으로 맞아주었으며, 유교사상을 중심으로 현실문제와 남북통일ㆍ평화 등의 문제에 대해 본인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대담자의 질문에 걸림없이 밝혀주었다.


제30대 성균관장에 취임한 서정기 관장은 취임 후 전통문화 창달과 성학(聖學)의 도통(道通) 정립을 통해 1,000만 유림의 본산인 성균관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 애쓰고 있다. 서 관장은 전임 관장의 불미스러운 일로 성균관의 위상에 많은 신뢰를 잃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떨어진 성균관의 위상을 회복하고 오늘날 전통사상으로 치부되는 유교의 현대화를 통한 민중에 도움되는 ‘민중유교’를 표방하며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서 관장은 오늘날 점차적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도덕과 인성을 회복하여 유교가 지향하는 대동세계(大同世界)를 통한 국민(민중)이 행복한 시대를 열기 위해 “오륜사회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유교사상에 대해”

유림의 총본산인 성균관장으로서 생각하는 “유교”(儒敎)는 무엇인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 인간 본성인 ‘인’(仁)을 구현하여 낮은 단계로는 선비와 같은 지식인, 높은 단계로는 군자(君子)와 같은 어진 사람이 되어 성현(聖賢)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그렇게 되며 모든 사람들의 ‘사표’(師表)가 되게 되어 작게는 개인의 수기지학(修己之學), 크게는 가정의 행복, 국가의 안녕, 세계의 평화와 같은 치인지학(治人之學)의 학문을 성취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러한 유교사상이 없어진지 오래되었으며, 하나의 인격수양으로 처세를 하는데 있어 유익하게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금 현재 가장 잘못된 것은 유교를 ‘행동’(行動)으로 실천하려 하지 않고 ‘이론’(理論)으로만 탐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이론유교’에서의 ‘실천유교’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유교의 현대화를 위해 “선비유교”에서 “민중유교”로의 전환을 말씀하셨다. 구체적으로 그 의미와 방안은 무엇인가?

‘유교’의 최초의 기원은 요순(堯舜) 임금에 있다. 한 사람의 성왕(聖王)이 나오면 말을 하지 않고도 민중을 감화(感化)시키어, 모든 백성을 인격자가 되게 하여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지키며 화평한 세상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성왕이 계속해서 나올 수 없다는데 있다. 그래서 걸주(桀紂, 중국 하나라의 ‘걸왕’과 은나라의 ‘주왕’)와 같은 폭군이 등장하게 되었고, 탕왕(湯王)와 무왕(武王)이 협력하여 걸주를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였다. 그런데 이 새로운 나라는 제왕(帝王)이 홀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정승이나 판서와 같은 고급 관료가 관권(官權)을 강화하여 왕권을 견제하면서 지금의 내각의 수반인 총리와 같은 역할을 하며 정치를 하는 나라였다. 그런데 후세에 내려오면서 왕권(王權)과 함께 관권(官權)마저 부패되어 민권(民權)을 보호하는 일종의 안전장치가 사라지게 되어 공자와 맹자와 같은 성인(聖人)들이 나왔는데, 이분들은 모두 필부(匹夫)였다. 초야에서 아무런 관직도 없는 필부가 성인으로서 경종을 울리면서 세상 곳곳 ‘왕권과 관권이 썩어서는 안되며, 왕권과 관권의 본분(本分), 곧 정치(政治)의 본분은 민권을 보호하는데 있다’고 목놓아 외치셨다. 그러나 문제는 초야의 성인도 계속해서 나오지 않는데 있다. 그래서 정자(程子)와 주자(朱子)가 등장하여 "소학(小學)"만 읽은 초급지식인들과 연대ㆍ연합하여 지방장관의 잘못을 중앙정부에 고발하고, 국가의 잘못 역시 상소를 통해서 증언하면서 목숨을 바쳐 민권보호에 앞장섰다. 그러나 ‘봉건주의 시대’가 끝나고 백성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즉 사민(四民)이 평등(四民平等)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초급지식인인 선비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선비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민중으로 들어가 공자와 맹자가 남긴 가르침을 민중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가르치며 주권[민권]이 국민[민중]에게 있음을 알리고 앞장서는 것이 ‘민중유교’(民衆儒敎)이다. 유교는 ‘성왕유교’에서 ‘관료유교’, ‘성인유교’, ‘선비유교’, 그리고 ‘민중유교’로 변화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근본에는 ‘민본’(民本)의 정신이 있다. 즉 백성이 근본인 것이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天]은 백성들의 눈을 통해서 보고 백성들의 귀를 통해서 듣는다. 따라서 백성의 자유ㆍ평등ㆍ행복이 보장되고, 언론과 의사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론정치’(公論政治)가 펼쳐져야 한다. 하늘이 백성을 직접 다스리는 것이며 제왕은 그 하늘의 뜻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대치자(代治者)일 뿐이다. 따라서 유교정치는 물론 모든 정치의 근본은 바로 백성이며, 이것이 바로 ‘왕도정치’(王道政治), ‘대도정치’(大道政治)이다.

유교가 지향하는 대동세계(大同世界)는 어떤 세계인가?

유교는 ‘지성사회’를 추구한다. 유교에서의 지성은 공허한 이론적 탐구를 의미하지 않는다. 유교에서의 지성은 ‘격물치지’(格物致知)로 명명되는데, ‘격물’(格物) 곧 사물(物)에 격(格)해서, ‘치지’(致知) 곧 이치에 이른다. 다른 종교나 사상에서는 관념적인 지식의 탐구로서 학문을 말하지만, 유교는 이러한 학문적 태도를 반대한다. 현장에 직접가서, 그 사물에 직접 이르러서, 사물의 크기ㆍ두께ㆍ색깔ㆍ무게 등을 연구해서 이치를 창출해야한다. 이런 이유에서 유교가 추구하는 지성의 방법은 일종의 경험주의에 가깝다. 그리고 이렇게 경험으로 축적된 자연법칙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반성해야한다. 이 세상을 불성실하게 보면 모두 불성실해 보이고, 성실하게 보면 모두 성실해 보인다. 나 자신부터 성실해야 사물의 성실성을 인정할 수 있으며, 나 자신이 불성실하면 사물의 성실성을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올바르게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해야 사물이 올바르게 보인다. 이렇듯 객관적인 사물의 이치와 주관적인 자기의 마음을 잘 갖추어 인격을 수양해서 가정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세계를 화평하게 하면, 일만 나라가 상부상조하는 복지낙원이 건설된다. 이것이 "대학(大學)"의 8조목인 격물(格物)ㆍ치지(致知)ㆍ성의(誠意)ㆍ정심(正心)ㆍ수신(修身)ㆍ제가(齊家)ㆍ치국(治國)ㆍ평천하(平天下)의 의미이다. ‘대동’(大同)이라는 것은 ‘소이’(小異)를 전제로 한다. 전체적으로는 같지만(大同) 부분적으로는 서로 다르다(小異). 이것이 공산주의와 다른 것이다. 공산주의는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대동’을 추구하지만 ‘소이’, 곧 각자의 각국의 독립된 자유와 권리 등을 인정한다. 이런 이유에서 유교에서는 ‘대동세계’를 ‘인류 낙원의 극치’로 부른다. 대동세계는 “大道之行 天下爲公”이라고 하듯 대도가 행해져 천하가 공변(公變)되어 만민이 행복한 세계이다. 유교에서는 이 공변을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말하는데, 천자ㆍ제후는 “지공무사(至公無私)”, 정승ㆍ판서는 “멸사봉공(滅私奉公)”, 서민은 “선공후사(先公後私)”이다. ‘사(私)’ 보다는 ‘공(公)’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대동세계에는 개인이기주의나 집단이기주의(사회주의)는 발을 붙일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앞서 말한 소이(小異)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개개의 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 대동을 지향하는 것을 “오륜사회주의(五倫社會主義)”로 명명하였다. 즉 국민이 행복한 시대는 오륜사회주의로 가능한 것이다. 
 
유교 사상의 우수성을 말씀하시면서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인 계몽주의ㆍ합리주의와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가 유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미국의 독립선언서도 "대학(大學)"을 참고문헌으로 삼았다고 강조하셨다. 최근에 유교가 서양의 근대문명을 탄생한 르네쌍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연구로 발표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린다. 

유교가 서양에 전파된 시기를 징키스칸이 서양을 지배할 때로 보고 있지만, 실제적인 기록에 따르면 명(明)나라 때로 생각된다. 명나라 때 서양에서 경교(景敎, 기독교의 한 종파인 네스토리우스파가 중국에 전래된 후 붙여진 이름)가 중국에 전래되었고, 그 뒤 서양의 선교사ㆍ탐험가ㆍ여행가 등이 중국을 방문하고 머물렀다. 그들은 중국에 머물면서 유교 경전들을 번역해 가져갔는데, 이 경전이 가장 먼저 전파된 곳은 이탈리아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귀족과 노예가 양극화를 이루었던 중세 암흑기 시대였다. 소수 귀족의 삶은 풍요로웠겠지만, 인생의 바닥을 살았던 다수의 노예들에게 이 시대는 그야말로 고통의 시대였다. 그 때 이들이 유교경전에서 받아들인 것은 바로 자유ㆍ평등ㆍ해방 사상이다. 예컨대 유교에서는 신하가 임금에게 간언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며, 예절을 통한 ‘평등’이 있었으며, 인간의 ‘덕’의 구현을 이상으로 했던 ‘해방’ 사상이 있었다. 이 가운데 수직적 계급시대였던 당시 인간 평등은 가장 혁신적인 사상이었다. 그런데 유교에서 인간 평등은 가장 기본적인 사상 가운데 하나이다. 예절을 실행할 때 예절을 실행하는 실행자는 모두 평등하다. 그런데 예절은 자율적인 규범이다. 즉 자율성(自律性)이 예절의 기본정신인 것이다. 예컨대 유교에서는 부모가 자식에 효도하라고 하지 않으며, 임금이 신하에게 충성을 다하라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경우 타율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孝)와 ‘충’(忠)을 가르치는 스승[師]이 일찍이부터 전문직으로 있어왔던 것이다. 반면 서양종교의 규범들의 상당수는 타율적인 규범이다. 즉 규범의 기본정신이 타율성(他律性)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 혁명의 기초를 확립한 계몽사상가 볼테르(Voltaire)는 동양의 유교사상을 중세 암흑시대의 광명으로 평가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유교사상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과 미국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영국에서는 유교를 받아들이기 전 정치적 도당(徒黨)을 만들어 도당정치를 했는데, 정치와 행정을 분리해 임금은 정치를, 신하는 행정을 담당했던 정치형태를 유교의 문과고시제도를 받아들여 의회내각정치로 실현하였다. 그리고 미국에 있어서도 유교의 평등사상은 노예해방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일찍이 우리나라에서는 관노(官奴)가 1%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노예가 그렇게 많지 않았으며, 일찍이 율곡 선생은 양민종부법(良民從父法, 아버지가 양민이면 어머니가 천민이라도 양민으로 해방)을, 우암 송시열 선생은 양민종모법(良民從母法, 어머니가 양민이면 아버지가 천민이라도 양민으로 해방)을 주장하며 유교의 인간평등사상에 기반해서 노예해방운동을 전개하였다. 나아가 유교는 미국 독립선언서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미국 독립선언서에 "대학(大學)"의 사상이 녹아있다. 이외에도 유교의 기철학(氣哲學)은 칼 막스(Karl Heinrich Marx)의 사상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 좌담 후 포즈를 취한 서정기 관장, 이옥용 발행인과 사회자 윤영호 교수.     © 황광현

“현실문제에 대해”

옛 선비들이 나라에 중대사나 큰 슬픔이 있을 경우 그랬던 것처럼 세월호 대참사 이후 치포관(緇布冠)과 심의(深衣) 차림으로 손님들을 맞으시는 등 일상생활을 하셨다. 그런 모습이 세상적으로 많은 이슈와 함께 회자되었는데, 어떤 생각에서 하셨는가?

‘옷’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상징한다. 관료(官僚)는 관복(官服)을 입어야 하고, 무장(武將)은 군복(軍服)을 입어야 하고, 상주(喪主)는 상복(喪服)을 입어야 하며, 학생은 교복(校服)을 입어야 하며, 노동자는 노동복(勞動服)을 입어야 한다. 1,000만 유림을 대표하는 수장으로써 학자로서의 처신을 해야 한다. 내가 입고 있는 치포관과 심의는 요순 임금 시대 학자들이 입었던 옷이다. 그런데 율곡 선생이 말했듯 학자의 하루 생각은 천하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취임 후 ‘국민행복시대’를 표방하고 있다. 이것은 유교의 애민(愛民), 양민(良民), 호민(好民) 사상과 일치한다. 그런데 국민행복시대에 국가적으로 여러 악재들과 인재들이 일어났으며, 특히 세월호 대참사는 국가가 가지고 있던 문제의 총체적 표현이었다. 세월호 대참사 이후 유림들이 일어나 이러한 난국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군자의 정신을 복원해야한다는 의미에서 치포관과 심의를 입게 되었다.

전임 성균관장의 여러 문제들로 성균관에 대해 불신이 많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성균관장 선거에서 대의원 879명 가운데 85.6%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성균관을 개혁해야한다는 민의(民意)로 보여지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사실이다. 성균관장 선거에 출마한 6명의 후보 가운데 나만 재야에서 활동하던 학자였다. 오후 4시까지 2차 선거까지 가는 열띤 경합 끝에 당선되었다. 그날 나를 지지해주기 위해 재야의 많은 유림들이 참석해주었다.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 대부분의 선거가 ‘돈’과 연관되고 ‘돈’을 많이 가진 자가 이기는데, 이번 성균관장 선거는 ‘돈’이 아닌 ‘글’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청와대에서 열린 종교지도자 간담회에서 “경제제일주의”에서 “도덕제일주의”로 전환되어야 현 정부가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있는 “국민행복시대”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말하였다.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오늘의 정치는 너무 경제를 강조한다. 그야말로 ‘경제제일주의’, ‘경제우선주의’이다. 그렇다보니 공동체의 기본이 되는 관계가 사라지게 되었고, 관계가 사라지자 그 관계 사이의 질서와 도덕이 사라지게 되었다. 모든 것이 현대화되고 시대적 상황이 변하더라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오륜’(五倫)이다. 그리고 이 오륜에 기반한 질서가 확립되고, 그 질서 속에 예와 도덕이 실현될 때 진정한 행복시대가 도래될 수 있다. 아울러 오늘날 정치도 앞서 말한 왕도정치로 회복되어야 한다. 유교에서 정치는 덕(德)으로 다스리는 왕도정치(王道政治)와 물리력으로 다스리는 패도정치(覇道政治)가 있다. 그리고 왕도정치에는 덕치(德治)와 예치(禮治), 패도정치에는 인치(人治)와 법치(法治)가 있다. 현재의 한국 정치는 현재 패도정치 가운데 법치(=법으로 기강을 일으켜 사회 안정을 추구)를 표방하면서 실질적으로 인치(=한 사람의 인기와 권위, 지도력에 의존)에 머물러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법을 지키려 하지만 상류사회가 썩어서 법치가 안 된다. 원전비리와 불량 군수물품 납품 등도 모두 퇴역장성 같은 지도층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패도정치에서 도덕을 기초로 하는 왕도정치로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남북통일과 평화에 대해”

현재 한반도의 통일과 동북아 평화를 두고 많은 내용들이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에 있어 종교의 역할은 무엇이며, 특히 유교가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

유교가 동아시아와 남북통일을 두고 해야 할 일이 있다. 100여년 전 서양 제국주의에 의한 침략이 있을 때 아시아가 단결해서 이를 막아내려 했지만, 정치가들의 이론(異論)과 이견(異見) 때문에 막아내지 못하고 아시아가 몰락했다. 반면 유럽은 공맹체를 형성하였다. 동아시아의 주요 국가인 한국, 중국, 일본이 현재 영토, 방공권, 역사 등을 두고 대립과 갈등을 하고 있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에 유교가 분명히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유교의 이상세계인 대동세계의 정신을 오늘날 회복해야하며, 이것은 오늘날에도 유교문화권으로 규정되는 한국, 중국, 일본의 필수과제이다. 그래서 본인은 ‘동아시아 유교 연합’을 창립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유교는 남북통일에도 지대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정확하지는 않지만 북한에 160여개의 향교가 있다고 한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본격적인 교류를 할 생각이다. 지리적ㆍ이념적 분단이 있지만, 같은 성씨를 공유하고 같은 조상을 모시는 이들이 함께 제사를 지내며 대동정신을 구현한다면, 통일은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다. 유교야말로 통일에 대한 가장 이상적이며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담정리 : 윤영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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