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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기 목사(크리스천치유상담연구원 원장)의 명설교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7/25 [21:03]
하나님은 생명력의 원천

정태기 목사(크리스천치유상담연구원 원장)의 명설교

하나님은 생명력의 원천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7/25 [21:03]

내게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내치지 않고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과 확신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나는 기억할 수 없지만 내가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어머니는 아프면 자주 외가 집에 가 몸조리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회복해서 집에 돌아오기까지 때로는 두 달, 어느 때는 다섯 달까지 걸렸습니다. 그 기간 동안 어머니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했던 나는 집에 남아 있어야 했고, 그 상처는 야뇨증으로 찾아왔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거의 매일 밤 오줌을 쌌기에 일어나보면 잠자리는 흥건히 젖어 있습니다. 이것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는 행사였습니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바지를 벗습니다. 그때쯤 어머니는 아침밥을 짓기 위해 검은 가마솥에 불을 때고 있습니다. 나는 문을 빼꼼히 열고 부스스 눈을 비비며 당연할 일이라는 듯 어머니에게 바지를 건네줍니다. 어머니는 불을 때시다가 빙그레 웃으시며 부지깽이로 젖은 바지를 받아서 가마솥 뚜껑 위에 올려두고, 그렇게 올려놓은 바지는 밥이 고슬고슬 익을 때면 깨끗이 마릅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문을 열고는 아무 말 없이 마른 바지를 건네주십니다. 나는 어머니가 건네 준 그 바지를 주섬주섬 입고는 마을도 놀러 가고, 학교에도 갑니다. 어머니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내 바지만은 까만 물을 입혔습니다. 까만 바지는 오줌을 싸도 자국이 안 남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에 잘못 느낀 적 없어    

나는 오랜 후에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보통 어머니는 “몇 살인데 오줌도 못 가리냐”며 야단을 칩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꾸지람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몇 날을 오줌을 싸도 어머니는 한 번도 나무라지 않고 묵묵히 바지를 말려서 나에게 주셨습니다. 빙그레 웃으시며 젖은 바지를 받으시는 어머니에게서 ‘나를 거부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잘못을 저질러서 미안하다는 생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사랑이 나중에 나로 하여금 하나님 사랑을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내가 실수를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 나를 내치지 않는다는 굳건한 믿음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릴 적 동네아이들과 어울려 집에서 물건을 몰래 빼내 엿을 사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목화를 많이 재배했기에 목화를 따서 창조에 가득 쌓아둡니다. 어머니는 들에 일하러 가셨고, 나는 동네 엿장수 꾐에 빠져서 곳간에 쥐가 들락거리듯 열심히 목화를 창고에서 퍼 날랐습니다. 창고의 반을 퍼다 날랐는데도 기껏 나에게 돌아온 것은 돌아온 것은 손가락만한 엿 두 가락이 전부였습니다. 나는 달고 맛있는 엿 값이 그렇게 비싼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머니가 목화창고를 보는 데 한 쪽이 텅 빈 것입니다. 형님은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기에 어머니는 내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절대 아무 말도 안 하십니다.

남편 빼앗긴 어머니는 밤이면 언제나 조용히 물레를 돌리십니다. 그렇기에 내가 어머니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시간은 유일하게 이 물레를 돌리시는 시간입니다. 늦가을부터 겨울이 나기까지 나는 누워 물레를 돌리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물레를 돌리다 마시고 손을 내 가슴에 올리시며 물었습니다. “목화 누구 갔다 줬니? 쌀 갖다 주고 목화 가져올게.”

나는 소리를 꽥 지르며 안 했다고 오리발을 내밉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무 소리 안하고 다시 물레를 돌리십니다. 그런데 내가 잠이 들만 하면 다시 살포시 묻는 것입니다.

“목화, 누구 갔다 줬니? 에미가 쌀이랑 바꿔올게.”

그렇게 하기를 여러 차례, 나는 할 수 없이 엿장수 이름을 댔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내가 가져다 준 목화가 마루에 가득 쌓여져 있었습니다. 내가 한 짓은 나쁜 짓입니다. 어머니는 엄히 꾸짖으셨어야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스승인 오츠 박사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통해 하나님사랑 배워    

“너의 어머니의 교육방법은 잘못된 것이야. 하지만 어머니가 네 죄를 추궁하지 않았던 그 사랑이 하나님은 네 편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어머니는 믿음이 있는 분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부모는 시간, 공간에 구애됨 없이 자식들에게 생명력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모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분을 만날 수는 있습니다. 그 분이 부모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깊게 사랑과 존경으로 엉켜있으면 자식은 지치지 않고 건강하고 힘 있게 살 수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에게 준 땅에서 너의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장 12절)

이 말씀은 부모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 존경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생명력을 얻으리라 하는 말씀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큰 틀은 바로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따를 수 있는 틀이 마련됩니다. 분명 하나님은 당신의 뜨거운 사랑의 모델을 어머니의 마음속에 심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중요한 것입니다.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 사랑을 전혀 모르고 산 사람들은 아무리 하나님을 많이 불러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확신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반면에 반격하고 무서운 부모에게 자란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 때문에 혼나지 않기 위해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나는 36살까지 부모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도, 어머니의 사랑의 행위도 분노로 짜증으로 받아 넘겼습니다. 내가 목포에서 중학교 다닐 때, 어머니는 학교 앞으로 맛있는 것이 생기면 이 아들이 생각나 머리에 이고 찾아 왔습니다. 길을 잘 모르는 어머니로서는 작은 자취방을 찾아오기 보다는 도시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학교로 찾아오기가 쉬웠습니다.

그러나 나는 검정고무신에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바닷바람에 새까맣게 그을린 초라해 보이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창피하다고 몰아세우고 제발 찾아오지 말라고 닦달해 보아도 어머니는 ‘너 보고 자파서’라는 답변으로 빙그레 웃기만 하였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에야 어머니의 이러한 사랑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음을 알았습니다.

“네가 상담을 하면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너의 어머니에게서 온 거야. 너의 어머니의 사랑이,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너는 가장 위대한 사람 한 분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너의 어머니야.”    

어머니는 하나님사랑의 모델    

스승 오츠 박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철없는 마음에 부끄러웠던 어머니의 행동이 생명을 치유할 수 있는 원천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어머니가 누구입니까? 어머니는 하나님의 마음을, 사랑을, 뜻을 우리 마음에 전달해주는 모델입니다.

남극의 펭귄은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은 자신의 배 가죽으로 알을 덮어 부화시키며 새끼가 얼어 죽지 않도록 발 위에서 내려놓지 않고 품어 키웁니다. 어미펭귄은 바다로 나가 먹이를 잡아와서 새끼를 먹이는데 어미 펭귄이 늦게 오면 추위와 배고픔으로 아빠와 새끼 펭귄이 죽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바다표범은 물고기 사냥을 마친 어미펭귄을 덮쳐 날개와 배를 물어뜯었습니다. 어미 펭귄은 결사적으로 몸부림칩니다. 날갯죽지가 찢겨 나가고서야 바다표범의 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어미펭귄은 동료들이 돌아간 그 길을 절뚝거리며 걷다가 얼음 위에 배를 깔고 미끄러지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어미펭귄이 지나간 흰 얼음 위에는 선혈이 붉은 꽃처럼 피어났습니다. 펭귄이 기진한 몸을 이끌고 찾아간 곳은 자신의 새끼가 기다리는 곳이었습니다. 새끼를 본 어미펭귄은 입을 벌려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대하면서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상처 입은 어미펭귄이 필사적으로 살아 돌아온 이유는 새끼 때문이었습니다. 자식을 살리고자, 자식에게 먹이를 주고자하는 어미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어미이기에 할 수 있는, 어미이기에 품을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이 어미의 사랑의 힘입니다. 바로 부모는 이런 분들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이런 분입니다.    

정태기 목사(크리스천치유상담연구원 원장ㆍ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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