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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현 취재수첩●서소문 천주교 순교성지와 약현성당
오늘의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기사입력: 2014/07/29 [14:13]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황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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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순교자 현양탑: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순교성지 조성 사업을 본격화한 서소문공원 천주교성지의 화강암으로 제작된 세 개의 탑은 마치 조선시대 죄인의 목에 걸린 형틀이다. 탑 아래쪽에는 유리로 막혀 있고 물이 흐르고 있었다.     © 매일종교신문
▲ 약현 성당: 본래 1887년 수렛골(현 순화동)에서 한옥 공소로 출발했다.1891년 10월 건축을 시작하여 1892년 완공했다. 1898년 종현에 완공된 명동성당보다 6년이나 먼저 건립된 한국 최초의 고딕양식 벽돌 성당이다.     ©
▲ 미사: 서울시 중림동 약현성당 신자들이 서소문공원의 ‘서소문순교성지’에서 미사를 올리고 있다.     © 매일종교신문
▲ 인연과 갈등: 닥종의 인형으로 이웃 간의 신앙적 갈등을 표현한 작품이다.     © 매일종교신문
한국 천주교회가 세계인으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은 유례(類例)가 없는 자생적인 교회라는 사실이며, 신앙을 지키고 전하기 위해 모진 박해를 이겨낸 순교 전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교구 내 순교 성지 중에서도 서소문 순교성지가 103위 성인 가운데 정하상, 유진길, 남종삼 등 지도자급 평신도 순교 성인 44위을 탄생시킨 한국 최초의 곳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돌아온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 동안 한국을 방문하신다. 이 기간인 16일은 서소문 순교성지에서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식에 이어 18일은 명동 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갖는다. 그동안 순교자 현양탑의 관리를 맡게 된 중림동 약현성당 신자들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미약하나마 현양탑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서 서소문 공원이라는 대중적인 공간에서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을 하였다. 지역 주민들에게 순교자 현양탑의 가치를 인식시키고자 자주 기도회를 갖기도 하였다. 서소문 순교성지 순례자의 안내를 해왔던 김쌍수(62세, 010-5097-0371) 관리인으로부터 서소문 순교성지에 대한 애환을 들었다.
 
제3 사형장 서소문 밖 사거리
“서소문”은 서울의 여러 성문 중 광희문과 더불어 시체의 운반이 허용된 곳이다. 제1사형장 새남터와 제2의 사형장 당고개는 특색 있게, 또는 보다 장엄한 형률을 갖추어 사형수만을 취급하였다. 그 밖에 일반 죄인은 모두 이 서소문 밖 사거리에서 참수하였다. 조선시대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자, 의금부나 포도청에 붙잡힌 천주교 신자 중 배교(背敎)하지 않은 자들을 이곳으로 이동하여 학살하였으며, 옥사한 자들의 시체를 내다 버리어 시체가 산적해 있었다 한다.

그때 신자들의 참형은 십자가에 팔과 머리털을 잡아매고 발밑에는 발판을 놓아 발이 있게 한 다음 가파른 언덕 위 서소문에 이르면 회자수(劊子手)는 갑자기 발판을 빼버리고 우차꾼은 소를 몰아 곤두박질해서 언덕을 내려가게 했다. 길은 울퉁불퉁하고 돌이 많으므로 우차는 마구 뛰어올라 양팔과 머리털로 밖에 매달려 있지 않은 자의 몸은 격심한 반동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언덕 아래에는 형장이 있었다. 군사들이 신자들을 십자가에서 끌어내려 옷을 벗긴 다음 회자수가 머리를 붙잡아 나무토막 위에 대놓고 그 목을 베였다.
 
한국 최대의 평신도 순교지
“새남터” 성지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주축으로 한국 교회의 발전을 위해 공헌을 한 성직자들의 순교지라 한다면, “서소문 밖 사거리” 성지는 자발적인 노력으로 교회를 세우고 신앙을 실천했던 평신도들의 순교지라 할 수 있다.
 
“신유박해” 때, 이 땅의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베드로를 비롯하여 정약용, 최창현, 강완숙 등 초기교회의 대표적인 평신도 지도자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다. 이어 “기해박해” 때 한국 최초의 신학생이며 조선 교구 설정의 주역인 정하상을 비롯하여 유진길, 김제준, 정정혜, 현경련 등 무수한 평신도들이 이곳에서 참수·순교됐다. 이때 순교의 화관을 받은 순교자 가운데 41위가 시복 시성의 칭호를 받았다.

병인박해는 혹독했다. 승지 남종삼을 비롯하여 3위의 순교자들도 시복·시성의 칭호를 받게 되면서 한국 천주교회의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 성인이 탄생 되었으며, 27위의 하느님의 종으로 시복 시성을 청원한 명실상부한 한국 최대의 성지로 거듭 낳다. 한국 천주교회가 세계 교회사적으로 경이의 대상이 되는 것은 평신도들의 학문적인 연구로 신앙을 찾아 자발적인 노력으로 교회를 세운 것과 박해를 무릅쓰면서까지 천주를 증거하고 실천하였던 기적적인 교회 창립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천주교회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평신도 지도자들과 무수한 신앙인들이 권력자들의 폭력 앞에서도 천주께 대한 신앙을 굳세게 증거하며 순교의 피를 뿌린 서소문 밖 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의 신앙과 위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정신적인 보고라 할 수 있으며, 새로운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 가꾸고 보존하고 연구해야 할 심정의 산 고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소문 밖 성지 조성과 관리에 대한 발자취
“서소문 밖” 순교 성지의 조성과 관리는 1958년에 와서 범교회적으로 나타났다. 당시 경향 잡지사를 맡고 있었던 윤형중 신부는 병인박해 100주년(1966년)을 앞두고 경향잡지를 통해 순교자 기념관을 건립하자고 주장함으로서 일제 때 시도하려다 좌절되었던 순교자 현양회를 재건했다.
일부의 종교나 교파들은 속화되고 분열되어 가는데, 천주교의 교세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나무는 열매를 보고서 참을 알아보는 가….

1977년 서울시에서 염천교와 경의선 철로 변의 서울 수산 시장이었던 곳에 서소문 공원으로 조성하게 됨에 중림동 약현 본당(사적 제 252호)은 이곳이 “서소문 밖” 사거리와 가장 근접한 지역이라는 점을 깨닫고 이 공원 안에 순교 기념비를 1984년 12월 22일 건립했다. 따라서 서소문 공원 내 현양탑 주변을 국가가 사적지로 지정하여 보호가 필요하며, 103위 순교자 넋을 좀더 위로할 수 있다면 ‘서소문순교공원’의 명칭이 어떠한지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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