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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7/31 [10:25]
도시 속의 현대인 자연을 희구하다

이승하의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

도시 속의 현대인 자연을 희구하다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7/31 [10:25]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
이 승 하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것도 있으리
그저 막막하여 눈앞이 캄캄할 때
더듬어 만질 무엇 하나 보이지 않을 때
간절히 원하면 하늘이 알아듣고 땅이 귀담아들어
이루어지는 것도 있으리
 
한파리漢岥里의 여인 희명希明은
다섯 살 난 제 아이 눈이 멀자
분황사 좌전左殿에 있는 천수관음千手觀音 벽화 앞에 데려갔다 한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을 가진 천수관음 앞에서 노래 따라 부르게 해
눈을 뜨게 했다는데
 
누이야
네가 종일 멍청히 바라보는 벽은 온통 흰색
그 사이 검은 쇠창살
쇠창살 사이로 보이는 토막 난 하늘
먹장구름 보이는 날 너는 우울해하고
보름달 뜨는 날 너는 울부짖지
번개 치는 날은 베게 껴안고 흐느껴 울고
이 병원이 도대체 몇 번째 병원이냐
네 목구멍으로 넘어간
알약의 수는 도대체 몇 만개냐
설화의 시대에 사람은
동굴 속에서 태어나 들판에서 죽었는데
누이야 너는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살다가
흰 시트 위에서 죽겠지
 
두 눈이 없는 제게 눈을 주신다면
그 자비로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 캄캄절벽 기막힌 밤에
태풍이 오려는지 천둥이 친다만
이 오래비가 취하여 가슴 치며,
고래고래 고함치며 부르는 노래
너 따라 부를 수 있겠니
(-<도천수관음가> 전문)
 
도시 속의 현대인 자연을 희구하다
 
이승하의 인용시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는 어찌 보면 불교시와 같은 생각이 든다. 특히, 작품 제2절에 등장하는 도천수관음가, 분황사, 좌전, 희명과 같은 시어를 염두에 둔다면 영락없는 불교시다. 그러나 여기서 종교시 혹은 불교시라는 개념을 떠나 작품에 담겨있는 내용이 절대자에 간구하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일단 종교시로 간주한다.
 
인용시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즉, 사연이 내재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각 연에 따라 크게 4단계 구조로 이뤄졌다. 우선 1단계는 서두 부분으로, 간절한 소망을 간구한다면 그 내용이 이루진다는 희구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 2단계는 향가에 등장하는 도천수관음가의 등장이다. 여기서는 향가에 담겨진 설화를 등장시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제3단계는 앞을 볼 수 없는 화자의 누이가 병원에 갇혀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마지막은 눈을 뜰 수 있다면 천수관음에게 소리쳐 희구하겠다는 내용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파리 희명 즉, 눈 뜨기를 간구하는 여인은 다섯 살 난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가 분황사 천수관음 벽화를 보고 노래를 불러 눈을 뜨게 했다. 화자의 누이 역시 앞을 보지 못하는 눈 먼 상태이지만 오히려 설화의 시대보다 더 불행한 삶을 영위한다. 현대 의학에 의지한 환자는 몇 번인가 병원을 옮겨야 했고 아직도 병원에 갇혀 있는 상태로 몇 만 개 알약을 먹어야 했으며, 결국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어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보름달 뜨는 저녁이면 마치 한 마리 짐승처럼 울부짖고, 번개 치는 날이면 베게를 껴안고 흐느껴 우는 누이동생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화자의 누이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이다. 설화에 등장하는 희명 여인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 같이 간구할 수 있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화자는 천수관음의 자비로 눈을 뜰 수 있다면 태풍이 오고 천둥이 친다 해도 가슴 치며 희구의 노래를 부르겠거늘 그러나 병원에 있는 누이는 그렇지 못함을 소리 질러 통곡하고 있는 것이다.
 
실명된 누이의 작품 배경을 생각하면, 이는 단순히 작품 가운데 한정된 것이 아닌 결국,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어찌 보면 도시의 쇠창살에 갇혀 온통 흰색의 벽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현대인이 아닌가. 쇠창살 사이로 보이는 토막 난 하늘을 바라보며, 먹장구름 보이는 날 우울해하고 보름달 뜨는 날 한 마리 짐승으로 돌변하는 것이 결국 현대인의 자화상인 것이다.
 
병원에서 태어나 결국 병원 장례식장에서 세상을 하직하는 현대인은 차라리 목숨 다하는 날까지 들판에서 활동하다 죽어가는 설화 속의 옛사람들보다 훨씬 불행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결국 현대인은 누이동생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 또한 이 감옥 같은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고래고래 고함이라도 질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상황이다.
이 길 연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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