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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과 추기경, ‘종교적’과 ‘정치적’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8/29 [23:11]
화해자· 중재자로서의 종교인 자세는?

교황과 추기경, ‘종교적’과 ‘정치적’

화해자· 중재자로서의 종교인 자세는?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8/29 [23:11]
◈ 세월호 사건을 놓고 프란치스코 교황과 염수정 추기경의 행보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교황은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며 방한기간(8월 14~18일) 내내 세월호 유족을 만나 진정어린 위로를 표했습니다. 한편 염추기경은 교황의 방한 행사가 잘 마무리된 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아픔을 해결할 때 누가 그 아픔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면서 "유족도 어느 선에서 양보해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 이러한 교황과 추기경의 발언이 엇갈린 행보라는 비판 세력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특히 세월호 유가족 주장과 특별법에 찬성입장을 가진 편에서의 신랄한 비판은 극단적입니다. 이들은 SNS에서 교황에겐 더할 나위없는 찬사를 보내는 반면 추기경에게는 입에 담지 못할 욕까지 퍼붓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까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습니다(過猶不及). 그러면 자기 논리와 입맛에 맞춰 상대의 진정성을 아예 배제하고 곡해하기 십상입니다.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 상호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집니다. 서로의 주의·주장이 ‘절대정의’로서 무장될 뿐입니다..


◈ 교황이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한 것은 고통을 가진 사람을 위로하는데 모범을 보인다는 것이었지 그들과 편을 같이해 투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 해결사가 아닌 중재자 · 화해자로서의 자세를 가졌을 뿐입니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극단적이고 일방적인 불의나 폭력, 테러 등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야 진정한 종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기의 이념과 신념에 따른 주의· 주장이 각자의 ‘절대정의’로서 반반으로 대립할 때는 중재자· 화해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교황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 “침략으로 이용 당하고 노예가 됐지만, 인간적인 품위를 잃지 않았다”며 높이 평가한 것 역시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치유였지 한일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은 것이라고 봅니다. 교황은 ‘일본’을 지적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칫 자신의 발언이 한일간의 분란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배려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한반도 남북 대치 상황 등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남북한이 같은 언어를 쓰니 희망이 있다”는 긍정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민감한 북한의 인권문제 등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 ‘대단히 정치적’이란 비판을 받는 추기경도 논란의 발단이 된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적 논리에 빠지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예수님도 난처한 질문을 받으면 '하느님 것은 하느님에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고만 말씀하셨다"며 교황과 같이 해결사 아닌 중재자, 화해자로서의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유족도 어느 선에서 양보’해야 한다는 발언이 나왔다고 봅니다. 극단적인 주의· 주장으로 무장된 사람들에겐 이러한 말조차 용납할 수 없는 ‘정치적’ 발언이 된 셈입니다.


실상 정부와 일본, 북한을 직접 지적하지 않은 교황의 행보야말로 고도의 ‘정치적, 외교적’ 자세였음을 엿보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상처를 안 입히며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맡기는 ‘정치적, 외교적’ 테크닉과 배려였습니다. 진심으로 갈등과 분란을 해소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외교적’ 행보가 높은 경지의 ‘종교적’ 자세란 생각도 하게 됩니다.

◈ 추기경과 교황 모두 해결사 아닌 화해자· 중재자로서의 종교인 자세를 가졌다고 믿습니다. 제가 추기경을 두둔한다고 ‘절대정의’로 무장된 극단적인 진영의 비판이 저한테 쏟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며 평생 살아온 성직자에게 자신의 진영논리에 몰입된 사람들이 쏟아붓는 욕설에서 우리사회의 총체적 불화와 비뚤어짐을 읽게 됩니다. 자신의 주의·주장에 거슬리면 용납못하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개인, 정당, 단체, 사회, 국가간에 그런 대립이 만연됐습니다.


화해와 용서를 내세우는 종교 간에도 서로의 교리와 규범이 배치될 때는 용납못합니다. 교황 방한시 개신교 일각에서 교황과 가톨릭에 대한 폄훼할동을 극렬하게 펼친 것이 그 일례일 것입니다. ‘땅밟기 기도’나 가자지구를 놓고 벌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전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화해자· 중재자가 아닌 교리·율법에 기준한 해결사의 입장에서 나섰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 종교가 분쟁의 중심에 서선 안된다고 믿습니다. '하느님 것은 하느님에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며 중재자·화해자 역할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절대정의’라고 여기는 이념과 교의에 몰입되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일시적으로는 어느 한편의 지탄을 받더라도 화해와 용서, 사랑과 자비를 앞세우는 종교가 먼저 지향에야 할 가치라고 봅니다. 그래야 사회가 순화되리라 믿습니다. 비록 종교가 사회행태와 같은 현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종교가 모범을 보일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종교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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