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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의 ‘절대고독’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9/01 [14:58]
신과의 결별, 자유의지를 향한 절정

김현승의 ‘절대고독’

신과의 결별, 자유의지를 향한 절정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9/01 [14:58]

김현승의 ‘절대고독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눈을 비비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영원의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나는 내게로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뜻한 체온을 새로이 느낀다.
이 체온으로 나는 내게서 끝나는
나의 영원을 외로이 내 가슴에 품어 준다.
 
그리고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내 손끝에서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내고 만다.
 
아름다운 영원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도 없는 나의 손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나의 시와 함께
 
신과의 결별, 자유의지를 향한 절정
 
김현승은 우리의 문학사, 특히 기독교문학사 가운데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기존의 기독교시 혹은 신앙시의 경우 절대자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그리고 기독교 신앙에 관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김현승 역시 이와 같은 종교적 맥락에 놓여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으나 이에 관한 표현이나 접근 방법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현승은 1913년, 평양의 장로교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기독교 신앙과 문화를 접하고 성장함으로써 그의 시세계 역시 기독교 정신이 본질적으로 중심축에 놓여 있다. 이와 같이 그의 시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에 대해 그가 50대에 이르러 회의하게 되며 그 결과 ‘고독’ 모티브의 시가 드러나게 된다. 고독이라는 시적 개성을 드러내면서 기독교적인 형이상학적 시인으로 한국시사에 특이한 개성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인용시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발표된 작품으로, 신의 절대주권을 부정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각시킨 차원의 작품으로 이와 같은 성향에서 절정을 보이는 시이다. 시적화자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원한 신의 세계에 안주하는 것이다. 신의 세계는 한계를 설정할 수 없는 영원을 전제로 하지만, 작품 가운데서는 ‘영원의 끝’을 만진다는 설정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영원을 부인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잠이 깬다’라는 표현 역시 이와 같은 자유의지의 연장선상에게 강조되고 있다.
또한 화자는 자신의 손끝에서 만지는 영원의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뜻한 체온 느낀다. 별이 상징하는 영원성은 빛을 잃지만 대신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행위는 추상적인 이상보다 현실성을 확보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체온이란 상징은 영원을 표상하는 신앙의 세계가 아닌 자유의지가 부각된 실존의 현실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영원이 상징하는 신의 세계는 단지 ‘내 가슴에 품어’ 봄으로 매듭짓는 것이다.
그리고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은 결국 그동안 신과 함께했던 언어를 지칭하는 세계로, 이제는 자신이 손수 날려 보낸다는 행위로 말미암아 신과는 상관없는 상태의 인간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자신에게서 끝나는 영원을 손끝에서 티끌처럼 날려 보내는 행위로 말미암아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자신의 손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물게 하는 행위로 연결된다.
김윤식의 지적과 같이 김현승의 절대고독은 신과 결별한 인간 자유의지로 신으로부터의 분명한 독립을 표명한 것이다. 이 시는 김현승의 고백대로 신의 무한성이나 영원성이 실재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고 무한이나 영원도 결국은 화자의 생명과 끝난다는 무신론적 세계관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약력으로 볼 때, 그는 결국 말기에 가면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신앙으로 다시 귀의하여 기독적인 신앙시의 작품을 구사하게 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무신론적인 세계관의 작품 역시 그의 전체 기독교적인 신앙시 가운데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길 연(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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