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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도 돈은…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9/18 [13:39]
사나소 이야기

저승에서도 돈은…

사나소 이야기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9/18 [13:39]

‘무소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꾸미려 애써왔던 법정스님의 ‘무소유’. 하지만 세상은 쉽게 무소유를 받아들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생전 스님의 저서가 스님의 유언에 따라 절판되면서 이미 출간된 스님의 책들이 경매에 나오고,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현상을 보며 ‘무소유’의 아이러니를 실감하게 했다.
 
경제적인 동물이 될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소유’와 그를 상징 하는 ‘돈’은 오랜 옛날부터 그것이 전혀 필요 없어 보이는 세상, 저승에 까지 그 필요성을 인정하려 해 왔다.
 
동서양 저승 이야기에는 어디나 저승에서 쓸 ‘돈’의 용도가 나온다.
먼저 중국 지옥에서의 ‘돈’ 이야기를 알아보자.
 
종교학자 앤 S 굿리치가 쓴 ‘중국지옥 Chinese Hells'에는 옛 중국의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소개돼 있다. 중국에서 지옥 입구가 있다고 알려진 산동지방의 태산과 사천 성 풍도 가운데 풍도 쪽 이야기다.
 
옛날, 풍도 가까운 산골짜기에 지옥으로 연결되었다는 우물이 하나있어 그 마을 사람들은 이 우물 안에 '지옥에 내는 세금'에 해당하는 돈을 정기적으로 바치고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아프거나 다른 불운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 마을에 원님이 새로 부임해 온다. 그는 우물과 ‘지옥에 대한 세금’ 이야기를 듣고는 이를 그만 두도록 금지시켰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항의해 말하기를 ‘지옥왕의 허락 없이는 감히 이를 그만두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새로 부임해 온 원님은 마을 사람들을 설득시키려면 ‘우물 밑에 있다.’는 그 지옥 왕을 찾아가 담판을 벌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이를 곧 실행에 옮겼다. 그는 단단한 줄 하나를 잡고 우물 아래로 내려갔다. 처음에는 캄캄하던 우물 속이 아래로 내려가자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고 여러 건물도 나타나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음을 알았다.
 
그곳에 닿으니 지옥 관리가 나타나 ‘당신은 바깥세상의 관리인 것 같은데 아래와 위 세상이 엄연히 갈라져 있거늘 무슨 일로 왔는가?’하고 물었다. 고을 원은 ‘우리가 지옥에 내는 세금 때문에 왔다.’ 전하고 그곳 왕을 만나 담판을 하게 된다.
 
원님이 “풍도는 몇 년 동안 흉년으로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어 지옥 세금을 낼 수 없다.”고 하자 지옥 왕이 이르기를 “너는 정말 올바른 관리로구나. 지옥 세금을 생각해 낸 쪽은 그쪽의 어리석은 성직자들이지 우리가 아니다.”라는 것이 아닌가. 이승의 돈이 저승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이야기다.
 
그렇다 해도 수많은 중국의 기괴 담에는 저승에서도 돈이 먹혀든다는 이야기가 더 많다. 지옥 왕 보다 이승 성직자들의 주장이 더 잘 먹혀드는 모양이다.
 
10세기 宋나라 때 편집된 중국 역대소설선집인 ‘태평광기(太平廣記)’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를 보자.
 
중국 양양 땅에 이여라는 사람이 괴질로 죽자 아내가 죽은 남편 곁에서 밤샘을 하고 있었다. 그날 밤이 깊어 가는데 갑자기 시체가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아내가 팔에 끼고 있는 금팔찌를 더듬어 만지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아내는 그 뜻이 무엇인지 알아채고는 재빨리 팔찌를 벗겨 죽은 남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새벽이 되자 송장의 가슴이 조금씩 따뜻해지더니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하룻밤 만에 되살아난 남편이 아내에게 전해준 말은 이렇다.
 
저승사자에게 끌려가다 살펴보니 일행 중에 뇌물을 주고 풀려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그도 사자에게 ‘아내의 금팔찌를 주겠다.’ 하고 팔찌를 전해주니 풀어 놓아 주었다는 것이다.
 
‘저승길 노잣돈’이란 우리말도 있듯이 저승에서도 돈이 요긴하게 쓰인다는 것은 동서양 어디서나 이렇게 주장돼 온 이야기다.
 
조선시대 빼어난 여류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시 ‘죽은 아들을 곡함’에는 ‘묘지에 명멸하는 도깨비불들 지전을 던지며 너의 혼을 부르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지전은 종이를 돈 모양으로 오린 것으로 장례식 때 흔히 저승길 노잣돈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옛날에 진짜 돈을 쓰던 것이 후세에 오면서 이처럼 돈 흉내만 내는 것으로 변했을 것이다.
 
현대 소설에 속하는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수전노 스쿠르지는 친구의 장례식 준비과정에서 저승 노잣돈으로 관속의 친구 양 눈 위에 얹어 둔 동전까지 꺼내 주머니에 넣는다. 수전노이므로 친구의 저승 노잣돈도 아까웠던 것이다. 그때 쓴 돈은 진짜였으므로 19세기까지도 서양에서 저승 노잣돈으로 진짜 돈이 쓰였다고 보아야 하나? 서양에서 죽은 이의 입안 또는 눈 위, 손 안에 동전을 쥐어 주는 것은 그리스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아직 이를 행하는 곳이 적지 않게 남아 있는 모양이다. 후대에 오면서 상징적으로 지전인 가짜 돈을 쓰게 된 동양과 비교가 된다.
 
저승으로 건너가는 스틱스 강 뱃사공 카론에게 돈이 없어 뱃삯을 내지 못하면 저승으로도 가지 못하고 이 땅에 유령으로 남아야 한다 했으니 저승으로 넘어가는 뱃삯으로라도 동전 몇 개는 가져가야 한다?
 
하기야 카론이라 해도 힘에는 당하지 못했던지 죽은 자도 아닌 산 사람으로서의 헤라클래스가 배를 태워 달라는데 거절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는 하는 수 없이 저승으로 건네주었고 그 죄로 지옥 왕 하데스에게 단단히 벌을 받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옥 입구는 아니나 ‘죽은 자의 거리’를 만들어 놓고 염라대왕이 발행했다는 ‘국제지부호조(國際地府護照, International Hell Passport)’, 이른바 ‘저승여권’까지 팔며 재미보고 있는 도시도 여럿 있다. 말레이시아의 고도(古都) 말라카도 그 가운데 하나다.
 
말라카에는 ‘죽은 자를 위한 거리’가 있어 이곳에서 죽은 자들이 쓸 수 있는 물건들을 판다. ‘죽은 사람들도 이승에서처럼 생활을 한다.’는 믿음이 이런 장사를 가능케 하고 있다.
 
화폐, 신용카드는 물론 의복, 자동차, 카메라, 냉장고 등 없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모두 진품이 아니다. 짝퉁도 아니다. 그냥 종이로 만들어 태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를 사서 제사 때 불에 태우면 그 물건들이 죽은 이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아직까지 종이로 지전을 만들어 태워 저승 노잣돈으로 쓰게 하는 경우가 있다. 저승사자에게 바치는 일종의 도로비나 가이드비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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