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극락과 지옥도 마음이 만드는 것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10/07 [07:10]
사나소 이야기

극락과 지옥도 마음이 만드는 것

사나소 이야기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10/07 [07:10]

▲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지장보살. 석가가 죽은 뒤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이 출현하기까지 일체의 중생을 구제하도록 의뢰 받은 보살이다.     ©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란 세속적인 표현으로 본다면 천국이나 천상세계, 극락에 가 있는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져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구원받은 자신에 대한 안도감을 느끼고 기쁨에 잠기게 될까? 그 정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천국이나 천상세계에 갈 자격이 있는 것인가?
 
불교의 지장보살은 지옥에 머물기를 원한다.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중생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다면 결코 성불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옥을 떠나지도 않을 것이라는 원(願)을 세운 것이다. 지옥에 가야 지옥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는 불교의 대승적 판단이 여기서 돋보인다.
 
‘지옥에 머물기를 원한 지장보살’은 석가모니의 직제자 신통제일 목련존자라 하기도 하고 중국 구화산에서 법을 편 신라왕자 김교각이라고도 한다. 목련존자의 경우 처음으로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어 아라한들에게 공양함으로써 아귀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던 자신의 어머니를 구한 인물이며, 김교각 스님은 중국 당나라 때 구화산에 은거하며 많은 기이한 행적을 남겼는데, 99세에 대중을 모아 작별을 고하고는 가부좌를 틀고 함(函) 안에 들어가 죽었다. 3년 후 함을 열고 보니 안색이 갓 태어난 아기 같았고 골절이 원활히 움직여 마치 금으로 된 사슬처럼 흔들렸다고 한다. 그가 지옥 왕으로서의 김지장(金地藏)이란 이름을 따로 얻은 연유이기도 하다.
 
지장보살은 이불(二佛), 즉 석가모니 부처님과 미래에 출세할 미륵부처님 사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현세에 지옥 중생을 모두 구하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운 분이다.
 
지장보살이 지옥 중생을 구한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중국 송나라 때 연수(延壽)선사가 편집하여 만든 ‘종경록(宗鏡錄)’에는 ‘찬령기(纂靈記)’를 인용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행동이 올바르지 못한 왕씨 성 가진 어느 사람이 병으로 죽어, 지옥사자 두 명에게 끌려 지옥으로 가게 되었으나 다행히도 그는 지옥 문 앞에서 스님 한 분을 만났다. 그 스님이 바로 지장보살이었다. 그를 측은히 여긴 지장보살은 그에게 하나의 게송(偈頌)을 알려주며 이를 암송하도록 했다.
 
내용은 이렇다.
 
‘세상에 계시는 모든 부처를
중생이 분명히 알고자 하면
법계의 성품을 관해야 한다.
모두 다 마음이 만들었음을’
 
지장보살은 왕씨에게 이 게송을 외울 수만 있으면 지옥의 고통을 타파할 수 있다고 했다. 왕씨는 이를 열심히 외고 염라대왕 앞에 나가게 되었다.
 
염라대왕이 ‘이 사람에게는 무슨 공덕이 있는가?’라고 지옥사자에게 물었다.
 
사자는 ‘오직 하나의 사구게송(四句偈頌)만을 받아 지녔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염라대왕은 그가 암송하는 이 게송과 지장보살에 대한 설명을 들은 다음, 그에게 지옥에서 나가도록 했다.
 
왕씨는 죽은 후 사흘 만에 소생했으나 신기하게도 이 게송을 기억했고, 가족과 친지 이웃에게 이 게송을 가르쳐 준 것은 물론이며 선행의 공덕을 알고 실천해 나갔다.
 
왕씨는 그 뒤 이 게송이 화엄경 야마천궁에서 한량없이 많은 보살들이 운집하였을 때 설해진 각림보살의 게송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뜻은 ‘지옥도 마음이 만들어 낸 것임을 밝혀서 마음이 만들어 낸 부처나 지옥이 본래 공함’을 알려주는 것임도 알았다.
 
이 이야기를 인용한 종경록은 ‘그러므로 만약 이 마음을 관한다면, 곧바로 지옥의 고통을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옥을 타파할 뿐만 아니라 십법계(十法界)를 일시에 타파하는 것이다.’라는 해설을 붙이고 있다. 불교의 저승, 지옥관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극락과 지옥도 마음이 만드는 것’이란 불교적 지옥관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옛날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무사가 큰 스님을 찾아 “극락과 지옥이 어디 있는가?”하고 물었다. 큰 스님 답하시되 “그것들이 어디 있느냐는 걱정을 다 하다니, 참으로 모자란 무사로군.”
 
이 말에 화가 난 무사가 칼을 빼 휘두르자 큰 스님은 칼을 피하면서 “바로 그곳이 지옥이니라.”했다.
 
무사는 이 말에 깨달은 바 있어 스님에게 자신의 모자람에 대한 용서를 비니, 스님 이르시기를 “그래 바로 그곳이 극락이니라.”
 
현대에 들어 일신교 쪽에서는 지옥개념을 속속 바꾸고 있다.
 
1996년 초 영국 성공회에서 지옥에 대한 기독교 전통관을 부정한다는 발표를 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고통과 징벌의 불구덩이’로 묘사한 기독교의 전통적 견해는 잘못된 것이며 지옥은 다만 ‘신이 함께 하지 않는 총체적 부정과 무(無)의 상태’라고 정의를 바꾼 것이다.
 
성공회 교리위원회는 ‘가학적으로 표현된’ 전통적 지옥관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심리적 상흔을 남겼으며 신을 학대를 즐기는 괴물로 만들었다고 비판하고 천국도 흔히 말하는 ‘영원한 정지상태의 완벽한 곳’이 아니라 ‘신의 삶에 끝없이 동참하는 것’이라고 덧 붙였다.
 
21세기에는 분명 저승의 모습도 변해 갈 것이라는 조짐을 여기서 본다.
 
가톨릭에서도 ‘세례 못 받고 죽은 아기들의 영혼이 가는 곳’으로 알려진 림보(limbo) 퇴출의 검토를 마쳤다. 한다.(2006년 10월)
 
‘경계’ ‘변방’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림보는 예전에는 고성소(古聖所), 지금은 ‘저승’으로 번역된다. 천국과 지옥 중간단계로 알려진 연옥과 함께 중세부터 가톨릭 신학자들은 구약의 의인들이 그리스도가 구원할 때까지 기다리던 곳, 또는 세례 받지 못하고 원죄만 있는 채로 죽은 유아들이 머무는 곳이 림보라고 믿어 왔다. 2005년 12월 교황청 산하 국제 신학위원회는 ‘세례 받지 않고 죽은 유아들의 운명’과 관련한 보고서를 내고 ‘림보는 하나의 가설이지 교리는 아니다.’라는 내용을 교황에게 보고했다.
 
국제 신학위원회가 림보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게 된 이유는 유아사망률이 높은 아프리카를 비롯해 미처 세례 받지 못하고 죽는 아기들의 수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저승 이미지는 변하기 시작했고, 지옥의 모습도 바뀔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그러나 그 변화마저도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임을 지장보살께서 이미 가르쳐 주신바 있다. 그리고 ‘지옥으로 가자.’고.
  • 도배방지 이미지

많이 본 기사
1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