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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주의 성경 핵심 난제 연구
‘하지 말라’는 苦言‧ ‘하라’는 유혹…기로에 선 인간
성경핵심난제연구
기사입력: 2014/10/08 [16:15]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이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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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지 않으면 불행도 불만족도 없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ques Lacan, 1901-1981)의 ‘욕망이론’에 의하면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은 다름 아닌 욕망이다. 삶이 곧 욕망이라는 말과 같다. 욕망의 조절이 행복의 관건인 셈이다. 그러나 욕망은 욕심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리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좇아간다. ‘욕망이난망(欲忘而難忘‧잊고자 하여도 잊기 어려운)’이 아니랴!
 
성경에 욕망의 말로(末路)가 잘 나타나 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공격하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신 당부했다. 여리고 성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바친 물건이니 그 어떤 것도 가질 생각을 하지 말라고. 그런데 유다 지파의 아간이 외투 한 벌, 은 이백 세겔, 금덩어리 하나를 숨겼다. 하나님은 진노했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전투에서 패하였다. 그 죄가 누구에게 있는지 제비를 뽑았는데 아간이 뽑혔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간과 그 가족과 모든 소유물을 골짜기로 끌고 가 돌로 치고 불살랐다. 그곳이 유명한 아골 골짜기이다.
 
욕심은 맹목적이다. 인간을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고 파멸의 길로 끌고 간다. 욕심을 품으면 불가사의 한 힘에 붙잡혀 식물인간처럼 되어 불의를 행하고 만다.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
 
사람에게는 선과 악의 두 마음이 존재하는 바, 그 중간에서 곤고한 삶을 영위한다. 그 원인이 성경에 나와 있다. 하나님이 인간 시조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따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마귀가 나타나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 어서 따먹으라’고 유혹한다. 인간 시조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고, 결과는 참담했다.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휘둘리는 사악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현대 인간도 하나님과 마귀, 선과 악의 기로에 서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아버지이며 사람에게 복을 주는 분이다(창 1:28). 반면 마귀는 사람에게 화를 주는 악의 화신이다. 마귀는 인간 시조에게 “하나님처럼 되라”고 유혹하여 타락시키고, 자신은 세상의 신, 세상의 임금이 되어 사람을 주무르고 있다. 예수를 시험한 대목을 눈여겨보자.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을 떡이 되게 하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욕심은 마귀에게서 받은 마음이다. 마귀는 본래 천사였으나 욕심을 품고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다. 욕심에서는 결코 남을 위하는 선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욕심은 자기만 좋으려는 그릇된 마음이기에 상대를 좋게 해 줄 리가 만무하다. 위해 주는 척하며 속이고 이용하려고 한다. 때문에 마귀는 신기루를 미끼로 사용한다. 세상의 부모도 자식이 자신보다 잘 되기를 바라거늘,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이 그것이 가당찮은 일이 아니고선 거부했겠는가. 마귀는 바랄 수 없는 것을 꺼내놓고 유혹한다. 욕심을 양껏 부리라는 것이다. 종국에는 타락시켜 자기의 종으로 삼기 위함이다.
 
마귀는 어떻게 사람을 관리할까. 내적으로는 욕망에 불을 질러 욕심을 일으키고, 외적으로는 물질만능 문화를 만들어 의식화시켜서 동물인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마귀는 사람들을 가라지로 만드는 원수다(마 13:39).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을 얻지 못하게 방해한다(눅 8:12).
마귀는 사람을 자신을 닮게 하여 자기 자식으로 만들려고 한다. 세상의 좋고 많고 크고 높은 것은 다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사람들이 ‘된 사람’ 보다 ‘난 사람’을 지향하는 것도 마귀로부터 악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마귀는 자기만이 최고가 되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돈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살라고 한다. 비유하면 소나 양 같은 초식 동물이 아닌, 사자나 호랑이 같은 육식 동물이 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릇된 인생관에 물들어 욕심쟁이가 되고, 맹수화 되어가고 있다.
 
마귀와 세상이 하는 일 반대로 해야
 
마귀는 적극적이고 반강제적이다. 유혹도 강하다. 한 번 걸려들면 질병처럼 끈질기게 불의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쾌락과 돈, 권력의 늪에 빠뜨리고 증오심을 불어넣어 폭력을 휘두르게 만든다. 사람들은 치밀고 올라오는 악의 기운[魔力]을 다스리기 어렵다. ‘걸신(乞神), 색마(色魔), 돈 귀신, 마(魔)가 끼었다’ 는 말은 인간의 배후에 악의 주체가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죄를 짓고 벌을 받게 될 때에 이르러서야 한탄하곤 하는데, 이는 우리가 온전한 정신으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사람들은 마귀의 영향을 받으며 곤고하게 살고 있으면서도 그 원인을 모른다. 인간의 비극이다.
 
사람에게 마귀의 마음[욕심]이 침투하면 비행기를 타고 높은 하늘을 날며 하늘 위에서 살려는 불량기가 생긴다. 돈‧권력과 학력,명예,외모 등 외면적인 것들을 가치의 기준으로 삼게 되고, 이것들을 많이 소유한 사람을 부러워하며 너도나도 그 뒤를 따라간다. 마치 죽음으로 가는 행렬을 보는 것 같다. 사람들은 갈수록 심성이 거칠어지고 영악해지고 있다. 마귀가 의도한 대로 살벌한 동물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마귀는 인간의 원수인 동시에 하나님의 원수다. 하나님이 세운 선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지상에 자기의 왕국을 건설하여 영영세세토록 왕 노릇 하려고 한다.
 
선이 지속적이지 못하고, 적극적이지 못한 채 맥을 못 쓰고 악에게 밀리고 있다. 선은 배우기도 힘들지만, 악은 배우지 않는데도 쉽게 물든다. 선은 미온적이지만, 악의 유혹은 강하고 끈질기다. 악이 선보다 더 번성하는 것 같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삶의 지침으로 십계명을 주어 마귀를 따라가지 말며, 남을 해롭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볼 때 외모로 보지 않는다(신 10:17). 마귀나 세상과 반대로 살라고 한다. 마귀와 그 무리는 높아지려고 안달한다. 하나님이 바라는 사람은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다(마 18:4).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마 20:6)고 말씀 하신다. 첫째가 되려고 하면 맨 마지막이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라고 한다. 사람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가르친다. 높은 곳보다 낮은 곳을, 큰 것보다 작은 것을, 많은 것보다 적은 것에 만족하라고 타이른다. 자존심보다는 겸손을, 최고보다는 평범함을 추구하며, 거짓을 버리고 진실 되게 살라고 말씀한다. 몸뚱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면 마음은 쭉정이가 된다. 사람의 드러난 육체는 껍데기이고, 드러나지 않은 영혼이 진짜 알맹이라고 훈육한다. 하나님 닮은 사람이 알곡이라는 것이다.
 
義와 사랑 행하는 자가 ‘하나님 자녀’
 
세상의 모든 종교가 인격성장과 사랑, 자비에 포커스를 맞추고 정진한다면, 언젠가는 한 길로 접어들어 종교 간의 싸움도 종식되고, 세상에는 평화와 행복의 기운이 무르익을 것이다. 윤리를 떠난 종교는 사람에게 무의미하다. 기독교는 하나님에게 복종하고 예배하며 이를 윤리와 철학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 기독교가 진정 고등종교요 사랑의 종교라면, 이를 생활 속에서 입증해야 옳다. 예수 닮기에 힘쓰고, 이웃사랑에 전력투구하는 것이 기독교 정신의 본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종교의 난제는 자기중심에서 생긴다. 이웃과 소통하지 못하고 세속에 쉽게 물드는 것도 자기만족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독선이 되어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싸움을 일으킨다. 이율배반적이다. 세상 사람들을 신 앞으로, 선으로 이끌고 가야할 종교가 오히려 세상 따라 하기에 바쁘다. 죽은 자들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마 8:22).
 
자기중심이 곧 욕심이고, 욕심은 경쟁을 낳는다. ‘선의의 경쟁’이란 있을 수 없다. 마귀의 욕심이 이를 방관하지 않는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심을 채우라고 부추기고, 세상의 시스템 또한 이에서 벗어날 수 없게끔 욱조인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패배자가 되는 것 같다. 종교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가도(假道)를 가는 종교인들이 종교를 부패시킨다.
 
세상에는 남을 괴롭히면서도 기뻐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많다. 종교의 세력 확대와 종교 간의 갈등은 실상 마귀의 욕심에 의한 경쟁심에서 빚어진다. 종교는 신도들을 인격자로 만들고,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랑과 자비의 경쟁에 전력을 쏟는 것이 마땅하다.
 
요한은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부르짖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속옷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라.”고 답했다. 세리의 질문에는 “정해진 세금 이상 받지 말라” 했고, 군인들에게는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거나 속여 빼앗지 말고 봉급으로 만족하라.”고 했다(눅 3:10~14).
 
기독교인은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정의와 사랑을 행하며 당신과 교제하며 살기를 바라신다(미 6:8)는 사실을. 때가 되면 누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누가 마귀의 자녀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의를 행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요일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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