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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대 칼럼●불상태운 스님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10/13 [13:42]
융합시대를 넘어 통섭시대의 각성

임종대 칼럼●불상태운 스님

융합시대를 넘어 통섭시대의 각성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10/13 [13:42]

▲ 임종대 미래문화사 회장     ©매일종교신문
“벼슬 과거가 어디 부처 과거만 하겠습니까?”
이 한마디에 유생(儒生)인 단하(丹霞, 739~824)가 귀가 번적 틔어 20여일을 걸어서 강서의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스님을 찾아갔다. 단하가 개원사(開元寺)를 찾아 마조스님을 배웠더니 ‘나는 능력이 모자라니 호남의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1) 화상을 스승으로 모시도록 하시오.’하며 돌려보냈다. 그는 즉시 15일여를 걸어서 석두화상을 찾아갔는데 첫마디가 상상외였다.
 
“방앗간에 가서 일이나 해라.”
3년여를 부엌일을 거들던 어느 날 석두화상이 대중들에게 절 마당 풀을 뽑도록 했다. 이 때 단하는 대야에 물을 떠놓고 석두스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석두가 웃으면서 단하의 머리를 깎아주었다. 그리고 석두스님이 말을 하려하자 그는 귀를 막고 뛰쳐나가 버렸다.
 
그 길로 강서의 마조를 찾아간 단하가 문수전(文殊殿)으로 들어가더니 법당 마루 중앙에 모셔져 있는 문수보살상의 목을 타고 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대중들이 기겁을 하고 마조스님에게 달려가 알렸다. 마조가 단하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말했다.
 
“이런 자식 놈을 보았나, 천연덕스럽기도 하구나!”
단하가 문수보살 목에서 얼른 내려와 마조스님께 큰절을 올렸다.
“저에게 법명(法名)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법명이라니! 어허.”
“저에게 천연(天然)이라는 법명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후 단하는 천연이라는 법명을 쓰기 시작했으며 주유천하(舟遊天下)하면서 교화(敎化)의 길을 걸었다. 교화를 하는 동안 부처를 우상화하는가 하면 형식에 매이는 경향을 목격하자 경계하기 시작했다. 또 당시 사회적으로는 당(唐) 현종(玄宗)이 35세나 연하인 양귀비(楊貴妃)에게 정신이 팔려 정치는 부패일로를 치닫고 있는 때였다.
 
그 무렵 단하가 낙양(洛陽)의 혜림사(慧林寺)를 찾아 눈비를 맞으며 들어섰다. 남루한 옷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원주(院主)와 마주했다. 절밥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객사(客舍)에 들어섰다. 싸늘한 찬바람이 산사를 휩쓰는데 방바닥은 더욱 싸늘했다. 떨리는 몸을 의지할 데 없던 단하는 ‘사람 섬길 줄도 모르면서 부처만 섬기면 무슨 소용인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법당에 안치된 목불이 눈에 들어왔다. 단하는 목불을 끌어 앉고 부엌으로 나와 도끼로 잘게 쪼개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불길이 활활 타오르자 젖은 옷을 말릴 겸 아궁이에 바짝 다가섰다. 온 몸에 따뜻한 온기가 퍼져오면서 움츠렸던 어깨를 펴는데 그 때 원주가 나타났다. 아궁이에 타는 불을 보고 법당에 목불이 없어진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원주가 단하에게 큰소리로 꾸짖었다.
 
“당신도 스님이 아니요. 그런데 어찌하여 모셔야 할 목불을 태운단 말이오.”
원주는 눈을 치켜뜨면서 단하에게 수백 생을 씻어도 씻을 수 없는 대죄고 지옥엘 가도 가장 고통스런 지옥엘 가야 마땅하다고 성토해댔다. 그런데도 단하는 부지깽이로 나무토막을 밀어 넣고는 숯불을 뒤적이면서 말했다.
“왜 사리가 안 보이지?”
이 말에 원주가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목불에서 어떻게 사리가 나온단 말이오?”
단하가 원주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되받아 말했다.
“사리가 안 나올 바엔 나무토막이지 무슨 부처란 말이요. 나머지 부처불도 태워버릴까 보다.”
 
이 말에 원주는 숨이 막힐 듯이 놀라면서 단하를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단하는 상징은 어디까지나 상징이지 더 이상 빠져드는 것은 선승(禪僧)의 길이 아니라고 대중에게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흔히 교단이 발전하다 보면 의식과 절차가 복잡해지면서 정례화되고 형식이 조금씩 덧 씌워지면서 괘도를 벗어나게 된다.
 
단하는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들이 그 시대상황과 타협하면서 격식이 굳어져 가는 것을 보고 정도의 길로 인도하는 행동을 옮긴 것이다. 단하의 이런 행동을 단하소불(丹霞燒佛)이라 하는데 이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조주(趙州, 778~897)스님의 삼전어(三轉語)도 올바른 신앙의 태도가 무엇인가를 직시하게 하는 경계의 말이다 “금불(金佛)은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 토불(土佛)은 물길을 건너지 못하며, 목불(木佛)은 불길을 건너지 못한다.” 이는 금불이 용광로를 건너면 녹아버리고, 토불이 물길을 건너며 풀어져 버리며, 목불이 불길을 건너면 타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하가 목불을 태워버린 것은 진실한 깨달음을 밖에서 구하지 말고 내부인 마음 가운데서 도적을 화살로 잡듯 공안을 세워 깨달음을 열라는 말이다. 보리(菩提)의 씨는 마음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어 녹아버리거나 풀어져 버리거나 타버리지 않고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신 속에 있는 보석보다 값진 것을 자기 탐구를 통해 모색하라는 경고의 목탁이요 깊은 자기 성찰을 말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바라볼 때 과거 어느 시대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융합의 시대를 넘어 통섭(統攝)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는 새로운 국면 전환으로 단하소불과 같은 창조적인 각성이 요구되기에 제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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