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뉴스종합포커스범종교가톨릭개신교불교민족종교해외종교이슬람다문화 사회탐방 기획
전체기사 Trend & View 마음을 비춰보는 포토에세이 종교지도자 칼럼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편집  2022.01.25 [19:56]
이 승주의 성경 핵심 난제 연구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안내데스크
신문사소개
광고안내
저작권문의
구독신청
불편신고
독자투고
제휴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 보호정책
기사제보
이 승주의 성경 핵심 난제 연구
삶은 영적자아완성을 위해 주어졌다
성경난제연구
기사입력: 2014/10/16 [03:3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이승주 논설위원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육신을 지닌 인간은 삶의 에너지가 제로가 되면 늦가을 낙엽 떨어지듯 죽음을 맞는다. 자연의 섭리는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으며,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행복의 길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고통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제 목숨을 끊고, 악인은 남의 생명을 죽인다. 이는 인간의 삶에 주어진 책무를 알지 못함에서 빚어진 비극이다. 자연의 섭리에는 역리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생명의 시작이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것이라면, 그 생명의 마침인 죽음 또한 인간이 간여할 부분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성령으로 창조된 생명을 끊는 행위는 하나님의 형상과 성령을 파괴하는 죄악이며, 자신의 존재목적을 저버리는 행위이다.


인간은 영적으로 죽었다
 
인터넷에는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가’라는 물음이 많다. 어떤 사람이 “죽음 이후를 정복했다. 이를 공개하면 거대한 폭풍이 불 것이다.”는 글을 올려놓았는데, 이에 대해 “혹시 보셨다면, 다시 가서 사진 몇 장만 찍어다 주세요.”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사람들은 육신의 죽음 이후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막연하게 죽은 후에는 환생한다, 혹은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 돌아가 영생한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할 때 육체 속에 불멸의 영혼을 깃들게 하였다(창 2:7)는 것이다. 전도서(3:21, 12:7)에는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고 말한다. 예수도 십자가에 매달려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기 직전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눅 23:46)는 말을 남겼다. 구약성경 사무엘서에는 사후세계가 존재함을 입증하는 사건이 있다.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한 사울이 하나님께 그 대책을 물었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애가 탄 사울은 하나님이 금하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이미 죽은 사무엘 선지자의 영을 불러내어 해결책을 물었으나, 나타난 사무엘은 사울을 책망하며 하나님이 진노하고 계심을 전해주었다(삼상 28:3-19). 신약성경에는 십자가 죽음을 예감한 예수가 높은 산에 올라가서 오래 전 죽은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대화를 나눴다(마 17:3)는 기록도 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죽음은 자연스런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형벌(창 2:17)로 보고 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죽음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죽음은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이고, 심판(롬 1:32)이며, 저주(갈 3:13)라고 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죽음을 경고했고, 인간의 범죄 직후 죽음이 부과됐다(창 2:17)는 것이다. 죄는 죽음을 낳고(약 1:15),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는 등 성경에는 이런 구절들이 많다.
 
성경이 말하는 죄로 인한 죽음은 영적(靈的)인 죽음이다. 예수는 부친의 장례를 치르러 가겠다는 제자에게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에게 맡기라’(눅 9:60, 마 8:22)고 단호히 말했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사람을 죽은 자로 규정했다. 예수의 제자 사도 요한도 예수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요한은 사데 교회 사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고 질타했다. 하나님이 넣어준 생령(生靈)이 죄로 인해 죽었음을 말하며, 이는 곧 인간이 하나님을 잃어버렸음을 의미한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살았다면, 하나님을 닮은 산 영[生靈]의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다.’(막 12:27)는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을 때 비로소 산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요, 그것은 곧 하나님을 찾는데 있음을 시사한다.
 
삶은 영을 살리기 위한 것
 
죽음은 육체의 삶의 끝인 동시에 영혼의 삶의 시작이다. 따라서 인간은 죽음을 맞기 전에 육적 유기체의 영역에서 영적 무기체의 영역으로 갈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식물이 아무리 무성하게 자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듯이 사람도 육신이 건강하고 아름다워도 영이 선으로 영글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쭉정이 영이 어디로 가겠는가. 성경을 보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삼상 6:7) 즉, 육체속의 영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예수는 “그의 열매로 그를 안다”고 하면서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으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불에 던져진다”(마 7:15~20)고 경고한다.
 
사람은 죽음을 맞기 전에 사람의 열매인 영혼을 여물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경적으로 보면 인간은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된다. 그렇다면 육체의식을 다 빼내고 영혼을 맑고 깨끗하게 정화시키지 않으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육기(肉氣)와 물기(物氣)는 영질(靈質)로 되어 있는 영을 혼탁하게 하고 어둡게 만드는 불순물이다. 세상에 미련을 두고 근심하고 걱정하며, 악습에 젖어 육적,물적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은 영에게 치명적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준 선한 본성 외에 마귀의 타락성이 들어가 있어서 선한 마음도 있고 악한 마음도 있다. 악한 마음과 안 좋은 마음을 안 써먹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다. 선한 사람은 선한 마음만 써먹고 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마음만 써 먹고 산다. 그러니 문제를 먼데서 찾을 게 아니라 자기 마음 안에서 찾아야 한다. 어느 마음을 써먹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준 본성인 선한 마음을 써먹느냐, 마귀가 준 타락성인 악한 마음을 써먹느냐는 자기 마음에 달렸다. 나쁜 마음을 많이 써먹으면 나쁜 마음이 주체가 되니 나쁜 사람이 되고, 선한 마음을 많이 써먹으면 선한 마음이 주인이 되니 선한 사람이 된다. 자기 마음이 자기 영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자기의 선한 마음을 잘 기르지 않으면 영이 살지 못한다.
 
하나님 경외하고 사람 사랑해야
 
하나님에게서 오는 선의 기운인 생기(生氣)가 사람의 영을 살린다. 성경은 선의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어둠, 곧 죽음 속에 있으며(요일 1:5), 사랑하지 않은 사람 또한 죽음 가운데 머물러 있고(요일 3:14), 미움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없다(요일 3:15)고 정의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모르고, 선을 행하지 않으며,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육신은 살아 있지만 영혼은 죽은 사람(계 3:1)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며, 선을 행하고 사랑하는 삶이 영을 살리는 길임을 제시한다. 세상을 얻는다 해도 자기 영을 살리지 않으면 아무 유익함이 없는 것이다(막 3:35~37).
 
삶속에서 외면적,물질적 가치만 추구하면 허망한 삶을 살게 되고, 내면의 자기 영적 자아성숙에 가치를 두는 삶은 영원한 삶이 된다. 성경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마 7:13~14)고 말하면서,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눅 12:15)고 가르친다. 누가복음은 거지 나사로는 천국으로 가고,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 받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지옥이 어디에 있을까? 불안한 마음, 근심과 걱정하는 마음, 남을 멸시·천대하고 시기·질투하는 마음, 더 많이 얻고자, 더 높게 되려고 눈이 멀어 있는 사람의 마음이 곧 지옥이다. 이런 사람의 영은 신령한 영이 아니라 죽은 영이다. 하나님을 마음 안에 모시고 살면 마음이 천국이고, 영이 생기를 얻는다. 천국을 먼저 자기 마음에 이루어야 한다. 천국은 저절로 되어지고,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바로 보자. 나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느냐, 마귀의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느냐?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기 마음의 안테나가 대한민국 방송을 수신하게 되어져 있느냐, 북한 방송을 수신하게 되어져 있느냐? 마음의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한다.
 
‘구원’이라는 말은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바꾼다.’는 말이고, ‘죄인을 죄 없는 사람으로 바꾼다.’는 말이다. 정신과 마음이 바꿔져야 구원을 받는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세속적인 삶이 다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50세 전후로 부와 명성을 내던지고 하나님에게 귀의했다. 그는 이러한 말을 남겼다. “물질적이고 동물적인 것만 추구하는 삶처럼 나쁜 것은 없으며, 영혼을 살찌우려는 행위보다 본인 자신과 타인에게 더 유익한 일은 없다.”
 
삶은 인간에게 부여된 운명이며, 인간은 이 권리를 행사하며 자신의 영을 살리는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하나님을 지성으로 섬길 때 가능하다.
 
ⓒ 매일종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배너
광고
광고
  안내데스크신문사소개광고안내저작권문의구독신청불편신고독자투고제휴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 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범 종교의 진정성을 두루 살펴 보고 이해함으로써 각 종교와 사회의 화평과 상생, 조화를 이룬다.
회장 이옥용 /발행-편집인 신민형 / 편집국장 이광열 / 청소년보호책임자 강은나
우) 04316 서울시 용산구 백범로77길 61-31, 401호 (원효로1가)
대표 전화: 02-703-8267 | 팩스: 02-3211-4419 인터넷 매일종교신문
등록번호:서울 (아)01319(범종교신문 등록 2009년 9월 1일,2013년 6월 15일 제호변경)
기사제보 : minhyung-s@hanmail.net
Copyright ⓒ 2009-2013 매일종교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