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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령, 한국 귀신 이야기(1)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10/23 [11:55]
사나소 이야기

한국 유령, 한국 귀신 이야기(1)

사나소 이야기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10/23 [11:55]
어느 나라인들 그렇지 않았을까마는 옛 한국에도 귀신 유령이 많아 이승에서 이름 난 것만도 열 손가락을 몇 번 폈다 오므렸다 세어 보아야 할 정도로 많다. 시인 백석의 시, ‘마을은 맨천 귀신이 돼서’에 등장하는 귀신만 해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다.
 
그의 시를 한번 보자.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귀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 귀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뚜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퉁이로 달아 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안으로 가면 뒤울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귀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빠져나와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당귀신
나는 고만 질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마라 내 발 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귀신
마을은 온데 간데 귀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이 시에 나오는 귀신 말고도 이승에서 이름 얻은 귀신은 훨씬 많다.
 
▲ 공포영화 속 한국의 귀신 모습     ©
 
그러면 그 귀신들 이야기 해 보자.

한국에서 기록된 이야기 가운데 가장 오래전 알려진 귀신이야기는 아마 삼국유사에 나오는 비형랑(鼻荊郞)이야기일 것이다. 비형랑은 귀신과 과부 사이에 태어나 귀신을 마음대로 부릴 줄 알았던 사람귀신(?)이다.
 
아버지는 신라 임금 가운데 가장 음탕하여 즉위 4년에 임금 자리에서 쫓겨났던 진지왕(眞智王)의 영혼이고 어머니는 자색이 빼어나 임금까지도 넋을 잃게 할 정도였던 미녀 도화랑이었다.

진지왕은 왕위에 있을 때 그녀에게 반해 궁중으로 불러들여 함부로 상관하려했으나 이미 결혼한 몸인 도화랑은 ‘두 남편 섬기지 않겠으니 차라리 죽여 달라.’고 버티었다. 이에 진지왕이 ‘남편이 없어지면 되겠느냐?’고 묻자 도화랑이 ‘그때라면’이라고 답했다.
 
그 후 진지왕은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 죽고, 그 뒤 2년 후 도화랑의 남편도 죽었다. 그런데 남편이 죽고 나서 열흘쯤 뒤 한밤중에 진지왕이 도화랑의 방을 찾아왔다. 사람 아닌 귀신의 신분으로.
 
귀신이 ‘네가 예전에 남편이 없다면 괜찮다 했으니 이제는 어떠냐?’고 도화랑에게 묻자, 도화랑이 부모와 상의한 후 그와 함께 거하기로 했다. 진지왕이 그 집에 7일간 머물렀는데, 그동안 언제나 오색구름이 지붕을 덮고 향기가 방안에 가득 찼다고 한다. 이때 임신하여 낳은 아이가 비형랑이다.
 
당시 진평왕이 이 소식을 듣고 그를 데려다 궁중에서 기르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벼슬에는 도무지 뜻이 없는지 밤마다 성 밖으로 나가 서쪽에 있는 황천(荒川)에서 귀신들을 불러 모아 놀기만 했다.

이런 사실을 안 진평왕이 그를 불러 ‘네가 귀신들과 논다고 하니 그들을 시켜 신원사 북쪽에 있는 개천에 다리를 놓아라.’고 명했다.
 
명령을 받은 비형랑은 곧 귀신들을 불러 모아 돌을 다듬어 하룻밤 만에 다리 하나를 거뜬히 만들어 놓았다. 그 뿐 아니라 또 길달(吉達)이라는 귀신을 추천해 나라의 정사를 돕도록 해 주었다.

비형랑은 이처럼 귀신을 마음대로 부릴 줄 알아 이후 신라인들은 귀신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그 이름으로 이를 퇴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참 뒤인 조선시대 귀신이야기 하나 해 보자.
 
이 땅 최초의 러브스토리인 ‘춘향전’이 세상에 나오기 얼마 전, 당시 사람들에겐 이 같은 남녀간 러브스토리에 대한 욕구는 있었으나 이야기에 산 사람을 등장시키기에는 아직 민망스러움이 있었던가 보다.

한국 문학사 최초의 한문소설로 알려진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에는 주인공들이 모두 귀신과 사랑을 나눈다.
 
요즘으로 치자면 단편소설 5편으로 한 권이 되는 ‘금오신화’이야기 가운데 염라국 또는 용궁을 다녀 온 이야기 두 편을 뺀 나머지 세 편은 모두 주인공이 귀신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만복사저포기’는 남원에 사는 양생이란 가난한 노총각 이야기다.

양생이 어느 날 만복사라는 퇴락한 절의 불당에서 부처님께 ‘아름다운 배필 한 사람을 점지해 달라.’ 열심히 빌고 난 다음 불좌 뒤에 숨어 쉬고 있었다. 기도가 통했음인가 얼마 있지 않아 과연 아름다운 아가씨 한 사람이 불당으로 들어와 부처님 전에 향을 사르고 세 번 절을 올린다음 ‘아! 인생이 박명하다고는 하나.........’ 어쩌고 하면서 탄식하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그녀의 기도 역시 ‘부처님 꽃다운 배필을 점지해 주소서.’ 그런 내용이었다.

퇴락한 절 만복사의 낡은 행랑에서 그날 밤 두 사람은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고 이튿날 그녀가 거처하고 있다는 산골짜기 ‘다북쑥 덮이고 고목 우거진 곳의 초당’으로 가 살게 된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그녀가 양생에게 말하기를 ‘이곳의 사흘은 인간세의 3년과 같습니다. 가연을 맺은 지 오래되었사오니 당신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 운운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인간사로 돌아 온 양생. 그는 그녀가 시킨 대로 보련사라는 사찰로 가서 죽은 딸의 3년 상을 치르는 양반부부를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게 된다. 물론 그들의 딸이 양생에게 일러 준 여러 증거까지 보여줌으로써 그가 그들의 사위되었음을 알린다.
 
양반부부의 재산을 모두 물려받은 양생은 그녀를 위해 늘 재를 올려주었는데. 어느 날 그녀가 허공에서 그를 불러 말하기를 ‘당신 은덕으로 나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으니 당신은 당신의 길을 닦아.......’ 하며 또 다시 이별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후 양생은 다시 장가들지도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식으로 소설은 끝난다.
 
‘이생규장전’은 죽은 아내의 혼령과 다시 가연을 맺어 살아 온 이야기며, ‘취유부벽정기’는 아예 시공을 넘어 조선조인이 고조선 때 기씨녀와 만나 정분을 나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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