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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같은 신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10/27 [07:18]
역사 그분이야기●이슬람의 탄생과 혼란①

알라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같은 신

역사 그분이야기●이슬람의 탄생과 혼란①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10/27 [07:18]

아라비아반도에 셈족 계통의 아랍인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유목생활을 하고 다신교를 믿고 있었다. AD 570년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출생한다. 그는 출생 2개월 후 아버지가 죽고, 6살 때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다. 어린 마호메트는 작은아버지 아부타레부 집에서 자라게 된다. 이때 메카에는 크고 웅장한 카바 신전이 있었다.
 
이 신전에는 여러 신을 모셔 놓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신으로 모셔진 것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검은 돌이었다. 어린 마호메트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 검은 돌에 예배하는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신전 문지기로 일하는 작은 아버지에게 “저 돌이 정말 신인가요?” 하고 물었다. 작은 아버지는 “저 돌은 아라비아에서 제일 큰 신으로 무슨 소원이든지 기도하면 들어 준단다”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어린 마호메트는 이런 것은 헛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마호메트가 12살 때 처음으로 작은아버지를 따라 대상(캐러밴)에 참여하여 시리아 국경까지 여행을 한다.
 
이후 여러 차례 여행을 하면서 유대인들의 신과 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듣게 되었다. 그가 청년이 되었을 때 메카시에 카디자라는 부자 미망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죽은 남편을 대신해서 재산을 관리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녀의 조카 튜지마가 친구 마호메트를 추천했다. 그때 마호메트는 25세였다. 관리인으로 들어간 마호메트는 대상을 이끌고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여러 종교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그동안 카디자는 마호메트에게 호감을 갖게 되어 이들 두 사람은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다. 그러나 마호메트는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또한 마호메트는 메카에서 좀 떨어진 헤라라고 하는 산의 동굴에서 금식을 하면서 인생의 진리를 찾으려고 노력을 계속했다. 그는 신에 대한 진리를 찾으려고 애쓰는 가운데 특히 여행 중 알게 된 그리스도교에 관심이 모아지자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 그분은 인간들에게 자비로운 사랑의 신이다”라고 생각을 하게 된 그는 알라신을 생각해 냈다. 알라신은 아라비아 사람들이 믿고 있는 신들 중의 하나로 신전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은 알라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같은 신이다.

 세력 확산, “지중해가 이슬람의 바라로
 
“그렇다. 알라야말로 정말 신이다.” 그는 동굴에서 스스로 진리를 찾아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마호메트에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오! 그대 신의 예언자여”라고 부르는데 동굴 안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이에 정신이 번쩍 든 마호메트는 “나는 알라의 예언자다”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의 나이 40세 때의 일이다. 그는 아내와 친척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신에 대한 설교를 했다. 그는 차츰 메카 사람들을 신도로 만들어 나아갔다. 신도의 수가 늘어나고 교세가 확장되자 이에 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도 한지 13년째 메카북쪽 400km 있는 곳 야트브라라는 도시에서 신자들이 찾아왔다.
 
“우리에게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오”라고 하여 이들을 따라 전도여행을 막 떠나려고 하는 순간 신도 한사람이 급히 달려와 “검은 돌을 믿는 사람들이 군대까지 동원하여 이리로 오고 있으니 어서 도망치라”고 하는 것이었다. 마호메트는 제자 아브베크르와 단둘에서 어두운 밤 메카를 탈출하여 야트브라로 갔다. 이때의 도피의 해를 이슬람에서는 ‘헤지라’라고 하여 그들의 기원을 삼고 있다. 622년의 일이다. 그리고 이야트브라시는 그 후부터 ‘메디나’라고 하여 ‘메카’와 함께 이슬람의 성지가 되었다. 그 후 마호메트는 전도를 위해 성전(聖戰)을 시작했다.
 
“코란이냐, 칼이냐, 곡물이냐” 이 성전 수행의 사명감에 불타는 이슬람군대는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나아갔다. 마호메트는 632년 죽는다. 그러나 그의 군대는 주변 지역을 계속 점령하면서 전진과 정복을 계속한다. ‘이슬람의 집’이라는 명장 왈리드가 이끄는 군대가 634년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를 점령한다. 이때 동로마군은 전멸 당하고 만다. 시리아의 영토가 이슬람의 영토가 된 것은 636년의 일이다. 이슬람은 사산조 페르샤와 메소포타미아를 641년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 튀니지, 키프로스를 642년에 정복하고, 655년에는 동로마제국의 군대를 지중해에서 궤멸시키고, 695년에 카르타고를 정복하고, 700년에는 북아프리카에서 대서양 연안까지 진출한다. 711년에는 이슬람의 군대가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한다. 이렇게 점령한 나라들이 이후 1492년 1월 2일 그라나다가 멸망할 때까지 이슬람의 영토와 문화권에 들어갔다. 이후 이슬람군은 720년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크왕국까지 침공을 계속하면서 그 위세를 과시한다.
 
그러나 프랑크의 메로빙거 왕조의 궁재 카를 마르텔에게 격퇴 당한다. 이들 이슬람의 영향으로 유럽은 동방과의 교역이 봉쇄되어 생존의 위기를 맞게 된다. 750년 이슬람의 우마이야 왕조(661~750)가 무너지고 압바스 왕조(750~1258)는 (아랍제국으로부터 이슬람제국으로 전환) 이후부터 아라비아인의 결속력이 약화되고 비 아라비아계의 이슬람교도의 세력이 두각을 나타냈다. 마침내 지중해가 이슬람의 바다가 된 것이다.
 
‘모세5경’의 내용을 경전으로
 
이로 인해 유럽 각국은 동방진출이나 동방무역이 불가능해져서 상인층이 몰락하고 도시경제가 피폐해지고 장원농업에 의한 봉건사회 강화의 계기가 되었고, 동로마를 통한 예루살렘으로의 성지순례도 순탄치 않게 된 것이다. 이슬람교 경전에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인 예수, 노아, 모세, 아브라함이 등장하는 것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아라비아인들이 믿는 알라신의 유사함을 발견하고 스스로 “진리를 찾았다”고 고백했듯이 기독교와 비슷한 점이 많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의 첫 다섯 책인 오경(모세5경)의 내용을 경전으로 믿고 받아들인다. 유럽에서는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마호메트교, 한국에서는 이슬람교 또는 회교, 중국에서는 위구르족을 통해 전래되었다하여 회회(回回敎), 또는 청진교(凊眞敎)라 한다.
 
이슬람(Islam)-‘알라의 뜻과 명령에 자발적으로 순종 
   
이슬람은 삶의 완전한 방식이다. 알라는 사람들에게 그의 창조와 존재의 목적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사람의 최종적인 운명, 모든 창조물 중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설명하며, 특별히 지옥의 불을 피할 수 있는 의미 있고 균형 잡힌 삶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죽음 이후 천국에서 사람들의 선행에 대하여 상급을 내린다. 이슬람의 의미는 ‘자발적으로 알라의 뜻과 명령에 순종한다’이다.
 
수니파와 시아파-“성직자 인정 여부의 차이
 
‘수니’는 전통을 의미하는 “순나”에서 나온 말이다. 마호메트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하게 추종한다. 현재 테러를 벌이는 이슬람주의자들은 대부분 수니파이다. 수니파는 아랍국가들에 폭넓게 거주한다. 마호메트를 이은 지도자들은 모두 인정한다. 수니파에는 성직자가 없다. 예배는 이슬람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이 인도한다.
 
‘시아’는 분파라는 뜻으로 마호메트 사위인 알리만을 정통 후계자로 인정한다. 수니파와는 정치적 견해 차이에서 시작됐지만 나중에 시아파는 신비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수피즘의 영향을 받았다.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국가이다. 수니파나 시아파나 교리상의 차이는 없다. 다만 형식적으로 보면 성직자의 인정 여부가 차이가 있다. 시아파에는 성직자가 있다. 가장 높은 성직자는 이란에서 볼 수 있듯이 ‘아야톨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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