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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둔天山遯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10/28 [07:25]
세상이 나와 서로 맞지 않아서

천산둔天山遯

세상이 나와 서로 맞지 않아서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10/28 [07:25]

둔은 은둔의 뜻이다. 주위의 소인들이 성가시게 굴어서 뒤로 물러나는 형상이다. 하늘 아래 산이 있는 것이 둔 괘이다. 하늘은 넓고 무한하며 산은 높으나 유한하니 소인을 멀리하되 미워하지 않으면서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하면 된다[君子 遠小人 不惡而嚴]. 나아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물러나는 것이 곧 나아가는 것이 된다. 괘의 구성상 중심 효와 둘째 효가 서로 잘 응하고 있어 아직은 헤쳐 나갈 의지가 있으나 아래의 음효가 세게 육박하면서 올라오고 있어 비록 자기주장이 옳다고 하더라도 앞장서지 말 것이며 상대가 소인이라도 겨루어 볼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몸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때를 보아 진정으로 물러날 때 물러나는 것이다[遯之時義 大矣哉].
 
❋옛날 은둔자들의 이야기다. 중국 요임금 시대의 소보와 허유라는 자가 있었다. 요가 어느 날 허유에게 천자의 자리를 맡아 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허유는 친구인 소보에게 그 말을 전했더니 소보는 더러운 말이라고 흐르는 시냇물에 가서 자기의 귀를 씻었다고 한다. 이들은 그 시대의 은둔자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퇴계선생이 벼슬자리를 열 한번이나 사양했고 호가 퇴계(退溪)인 것도 깨끗한 물이 흐르는 시냇물이 있는 곳으로 물러난다는 뜻이다.
❋遯숨을 둔, 嚴엄할 엄, 退물러날 퇴, 溪시내 계
 
처음 얻은 음효 “도망가다 꼬리가 밟힌다”
 
도망을 가다가 꼬리가 밟혀 붙잡히는 형국이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편이 낫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지못해 물러나니 위태롭다[遯尾 厲]. 더 나아가지 말라고 했다[勿用有攸往]. 물러날 때를 알지 못해 불명예스럽게 물러났으니 당분간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尾꼬리 미, 厲힘쓸 려, 攸바 유(所와 같은 뜻)
 
둘째 음효 “황소 가죽처럼 굳센 의지로 물러난다”
 
황소가죽으로 매어둔다 하니 물러나고자 하는 의지가 황소가죽처럼 견고하게 확고하다는 뜻이다. 어떠한 방법과 조건으로도 그 말을 당해낼 수 없다.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執之用 黃牛之革 莫之勝說]. 이 효는 위의 중심 효와 상응이 되어 중정한 도리로 서로 결속하니 소가죽으로 잡아 맨 것 같다. 적절한 때에 아름답게 물러나려면 이처럼 강한 의지와 신념이 필요하다[執用黃牛 固志也]. 그래야 갖가지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執잡을 집, 革가죽 혁, 莫없을 막, 勝이길 승
 
셋째 양효 “가족들 돌보느라 큰 일은 못한다.”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물러나야하는데 뜻대로 안되니 속이 썩어 병이 난다. 이왕에 아랫사람들과 인연을 맺었으니 그들을 잘 돌보라는 것이다[係遯 畜臣妾 吉]. 가족이나 보호하면서 평범하게 살아야 하고 세상에 나가 큰일을 할 수는 없다[畜臣妾 不可大事也].
❋係매일 계, 畜기를 축
 
넷째 양효 “좋은 사람 두고도 제 갈 길로 떠나
 
강한 결단력이 있어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자기의 뜻을 펼쳐야 한다. 그래서 이 어지러운 세상을 미련 없이 떠난다. 좋아하는 여자가 붙잡아도 제 갈 길을 가는 대장부의 당당한 둔(遯)의 행동이다. 이 효를 얻은 자가 소인이라면 그렇게 하지 못하여 앞길이 막힌다[好遯 君子 吉 小人 否].
 
중심 양효 “물러날 때를 알고 물러나는 아름다운 은둔”
 
아름답게 물러난다는 것은 때를 잘 알아서 물러난다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어 벼슬자리를 마다하고 자신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니 아름답게 세상을 피해가는 것이다[嘉遯 貞 吉]. 더 큰 뜻을 이루기 위하여 더 큰 사랑을 품고 떠나는 것이다.
❋嘉아름다울 가
 
위 양효 “여유롭게 훨훨 떠난다
 
소인이 권력을 쥐고 흔드는 세상을 미련 없이 떠난다. 아무런 구속도 없이 초연하게 멀리 떠나니 오히려 마음이 풍요롭기까지 한다[肥遯 无不利].
❋肥살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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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속세가 싫어서 은둔하는 것이어서 예전에는 주로 산 속으로 피해 들어갔다. 당나라 이태백(李太白)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에도 은둔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問余何事栖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내게 물었다 무슨 일로 청산에 사느냐고
웃으며 대답하진 않으나 마음은 절로 한가롭다
복숭아 꽃잎이 흐르는 물에 가득히 흘러가니
여긴 별천지요 인간세상 아니로세
 
처음 효는 꼬리가 밟힐 위험이 있으니 가만히 있으라 했고, 둘째 효는 중도를 지켜 굳건히 하라 했고, 셋째 효는 처자식들에게 매인 몸이니 가족을 돌보며 머물러라 했다. 사효와 오효 상효 윗괘의 세 효는 제각기 좋아서[好遯] 아름답게[嘉遯] 여유롭게[肥遯] 은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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