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뉴스종합범종교가톨릭개신교불교민족종교해외종교이슬람생활 종교인의 성경 분석탐방 기획
전체기사 Trend & View 마음을 비춰보는 포토에세이 종교지도자 칼럼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편집  2020.08.11 [22:04]
이길연의 종교 시 산책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안내데스크
신문사소개
광고안내
저작권문의
구독신청
불편신고
독자투고
제휴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 보호정책
기사제보
이길연의 종교 시 산책
천상병의 ‘하나님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소박한 창조관의 형상화
기사입력: 2014/11/28 [11:22]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이길연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하나님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천 상 병
 
하나님이 탄생하기 전의 우주는
완전한 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가 결정하여
유가 됐을 것이고
그 처음의 유가 하나님이었을 것이다.
 
우주에서
제일 처음으로 유가 되신 하나님은
친구가 친구를 찾는다고
대우주의 별과 별을
창조하셨을 것이다.
 
빛과 천체와 그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흙으로 인간을 빚으시고
만물을 태어나시게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전문)
 
소박한 창조관의 형상화


천상병 시인하면 우리는 ‘기인’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기인이란 남다르게 독특하거나 기발한 언행을 일삼는 사람을 지칭한다. 천상병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시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한 후 그 여파로 평생을 불구가 되어 한 생애를 살았던 시인이다.
 
아울러 평생 가난과 고통 가운데 생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진무구한 시심만은 살아 있어 작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를 기인이라 부르는 것은 기인으로써의 다양한 언행이나 사건보다도 오히려 불우한 환경 가운데 작품을 썼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의 기인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작품 말기에 이르면서 천진난만할 정도로 단순한 어조로 기독교적 작품을 구사했는데, 특히 하느님을 예찬하는 시를 많이 썼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깊이 스며든 그의 작품 가운데에는 우주를 지배하는 하느님과 그 섭리에 감사하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 시에서 하느님은 대우주에 비견되는데, 그는 절대자를 향한 무궁한 외경심과 찬양 속에서도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에 관한 순진한 호기심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어찌 생겼을까?/ 대우주의 정기가 모여서/ 되신 분이 아니실까 싶다.// 대우주는 넓다./ 너무나 크다.// 그 큰 우주의 정기가 결합하여/ 우리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니옵니까?”(-<하나님은 어찌 생겼을까?> 전문) 라는 작품에서 엿볼 수 있듯이 우선, 제목부터 호기심 가득한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 하는 물음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시는 1연의 “대우주의 정기가 모여서/ 되신 분이 아니실까 싶다.”는 구절이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상상하고 있다면, 2연과 3연 “대우주는 넓다./ 너무나 크다.// 그 큰 우주의 정기가 결합하여/ 우리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니옵니까?”는 그 대답을 스스로 확신하는 의미에서 하나님께 반문하고 있다. ‘대우주는 넓’고 ‘너무나 크다’는 시인의 생각은 ‘그 큰 우주의 정기가 결합하여’ 우리 하나님이 되신 걸로 결론짓는다. 너무나 넓고 큰 우주의 정기가 결합한 우리 하나님의 존재는 시인에게 그야말로 대단한 존재이며 경이로운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의 신관에 기대어 생각해 보면, 하느님은 ‘대우주의 정기’가 결합하여 하느님이 되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이와 같은 논리는 어떤 과학적 사고력에 의존하여 결론에 도달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는 그 어떤 과학이나 철학적 근거, 나아가 세계관적인 가치관에 근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주의 깊게 살피고자 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의 천진무구한 순수함이다. 그에게 있어 이와 같이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을 제외한다면 무엇을 가지고 그를 천상병답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 것인가.
 
위의 인용시는 앞서 인용한 <하나님은 어찌 생겼을까?>와 비슷한 제목과 내용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이 시는 앞의 시에서 ‘우주의 정기가 결합하여’ 우리 하나님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상적인 생각을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하나님은 완전한 ‘무’에서 ‘제일 처음으로 유’가 되고 ‘친구가 친구를 찾는다’며 하느님 ‘별과 별을’ 창조한다고 일컫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빚으시고 만물을 태어나시게 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어찌 보면 성서의 창조설을 일반화하여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성서에서는 자존하시는 하나님이 피조물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며 내적으로 향유된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성서에 준한 인간 창조설에 관해서도 소박하게나마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길연·시인·문학평론가)
ⓒ 매일종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광고
광고
  안내데스크신문사소개광고안내저작권문의구독신청불편신고독자투고제휴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 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범 종교의 진정성을 두루 살펴 보고 이해함으로써 각 종교와 사회의 화평과 상생, 조화를 이룬다.
회장 이옥용 /발행-편집인 신민형 / 양형모 상임고문 / 편집국장 이부평 / 청소년보호책임자 강은나
우) 140-846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70번지 (83길 21)
대표 전화: 02-703-8267 | 팩스: 02-3211-4419 인터넷 매일종교신문
등록번호:서울 (아)01319(범종교신문 등록 2009년 9월 1일,2013년 6월 15일 제호변경)
기사제보 : minhyung-s@hanmail.net
Copyright ⓒ 2009-2013 매일종교신문. All rights reserved.